우리 술, 우리 말, 우리 얘기
三戒·三食·三樂·三禁·三禮를 아십니까?
술 마시되 때를 가릴 줄 알아야
안주, 대화, 분위기 함께 즐겨야
정치․종교얘기, 돈자랑 절대 금지
술은 예의범절을 지켜가며 마시는 것이 보기에 좋고 건강에도 좋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주당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 터득한 지혜다. 뒷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막술로 술을 배운 사람과 웃어른에게 배워 마신 사람을 보면 확연히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직장인들이 상사로부터 인정받는 것 중 하나가 주석(酒席)에서 품위를 지키는 일이다. 술 몇 잔만 들어가면 아래위턱 가리지 못하고 주사(酒邪) 부리는 사람을 예쁘게 볼 상사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술자리에선 최소한 어떤 것들을 지켜야할까. 고전으로 내려오는 몇 가지를 추려본다.
◇삼계(三戒)를 경계하라
“유시(酉時)가 되기 전에는 술 마시지 마라.”
일제 강점기시절 나붙었던 금주(禁酒) 포스터 문구다. 유시는 십이시(十二時)의 열째 시, 즉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다. 이십사시(二十四時)로는 열아홉째 시, 오후 5시 반부터 6시 반까지를 말한다.
주당들은 이 유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그렇지만 요즘 그런 것 따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점심 먹으면서 반주로 몇 병의 소주를 비우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낮술을 마시고 술 냄새 풍기며 돌아다니면 비즈니스가 잘 될까? 하기야 주류회사 간부들은 예외일 테다. 점심이건 저녁이건 접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무능력자로 찍힐 수 있다는 속설도 있다.
점잖게 술을 마시려면 ‘삼계’(三戒․3가지를 경계하라)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 첫째가 유시계(酉時戒)다. 이는 ‘술은 저녁 6시경에 마셔라’는 뜻인데, 술을 마시되 때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가 수세계(水洗戒)다. 이는 ‘술 마신 뒤에는 입을 물로 꼭 씻어라’는 뜻이다. 술을 마시되 깨끗하게 마시는 것이 좋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창문도 열리지 않는 전철에 술이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 많이 탄다. 술 마실 줄 아는 사람도 술 냄새 풍기는 것이 달갑지 않은데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들은 오죽하랴 싶다. 셋째가 삼배계(三杯戒)다. ‘술을 마시되 석잔 이상 마시면 안 된다’는 뜻으로 과음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아마 이런 삼배계가 나왔을 당시의 술 도수는 높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요즘이라면 석잔 대신 ‘3병 이상’으로 고쳐야 현실감이 있을 것 같다.
◇삼식(三食)을 먹어라
술을 마시되 안주와 같이 하고, 집에 가서 밥까지 먹으라는 뜻이다.
지나치게 안주발이 센 사람도 있지만 좋은 안주가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고 술만 마시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술을 사는 입장에선 안주발이 센 사람보다 이런 술꾼에 호감이 간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안주를 안 먹고 술만 마시는 사람은 대개 깡마른 경우가 많아 안쓰럽기도 하다. 술을 마시되 안주도 적당히 먹는 것이 몸에 좋다. 안주를 먹으면 그만큼 술을 덜 마시기 때문이다.
옛날 어머니들은 술 마시고 들어온 남편이나 자식에게 밥을 챙겨주는 것이 몸에 좋다고 생각해 밥상을 차려주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술안주가 대개 기름지고 요깃거리도 많아 구태여 귀가해서까지 밥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늦은 저녁에 식사를 하면 비만의 원인도 된다.
◇삼락(三樂)을 즐겨라
술과 안주의 맛을 즐기고, 대화를 즐기며, 운치(분위기)를 즐겨라.
우리는 서양 사람들과 달리 안주가 있어야 술을 마신다. 좋은 안주거리가 있으면 술 생각이 난다. 싱싱한 회도 좋고, 얼큰하게 끓고 있는 찌개라든가 불판 위에 알맞게 구워진 삼겹살을 보면 소주가 생각난다. 통닭을 보면 시원한 생맥주가 떠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안주를 즐기며 술을 마시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에선 공통된 문화다.
오랜만에 만난 벗이라면 그동안 쌓였던 추억을 꺼내 담소를 나눈다든가 가정사와 안부를 묻는 것도 좋고, 문학도라면 시 한수 읊는 멋을 부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권하는 술잔을 거절 말게나/ 봄바람 웃으며 불어오거늘/ 복숭아 오얏나무 구면식이라/ 꽃송이 고개 숙여 우리를 보네/ 여기 저기 푸른 나무 꾀꼬리 울고/ 밝은 달은 황금 술잔 속에 둥글게 떴네/ 어제의 홍안 소년/ 오늘에 백발 성하고…자네 술 마시지 않다니 뉘라 불로장생했던가?’
이태백의 ‘술을 대작하며’라는 시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만나면 이 시가 생각난다. 정말이지 어제의 철없던 홍안(紅顔)소년들이 이제는 손주녀석들 자랑이나 하고 있으니….
◇삼금(三禁)을 실천하라
술자리에선 정치 얘기를 금하고, 종교 얘기도 금하며, 돈(재산) 자랑을 하지마라.
정치 얘기를 하다보면 시작도 끝도 없다. 같은 당을 지지하거나 같은 정치인을 좋아하면 모르되 좋아하는 당과 정치인이 다를 경우 자칫 불상사가 일어난다.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상대가 험담이라도 하면 시비가 붙게 되고,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는 것이 술자리다.
종교 얘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안 하는 것이 좋다. 이는 비단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상대가 믿는 종교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가끔 전철 같은데서 지나친 광신자들이 다른 종교를 헐뜯으며 전도하는 것을 보는데 하루 빨리 근절돼야 한다.
초등학교보다 고등학교나 대학 동창회가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출세한 동창들의 돈 자랑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출세하고 재산을 많이 모은 친구는 자랑하고 싶겠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 삼예(三禮)를 지켜라
술을 적당히 권하고, 말조심하며,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며 마셔라.
술 못하는 사람에게 술잔은 고역이다. 그런데 술꾼들은 술을 잘 못하는 사람에게 짓궂게 술을 권한다. “야, 내 술은 왜 안 받아”하며 술을 강권한다. 이런 것을 술 인심이라고 할까. 술 마시던 사람이 안 마실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어떤 약을 먹는 중이거나 등의 이유가 있다.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습관을 길러두는 것이 좋다. 상대가 술이 약한데 자기 주량만 생각해 마구 술을 시키고 권하는 것은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란 것을 명심하자.
술이 몇 순배 돌아 취하면 말이 많아지고 거칠어진다. 상사에게 반말이 튀어나오고 그동안 품었던 노여움이 폭발하는 자리가 바로 술자리다. 그런 만큼 조심에 또 조심을 해야 한다.
주당들은 △하시(何時․어느 때) △하처(何處․어느 장소) △하인(何人․누구) △하량(何量․얼마나) △원근(遠近․거리) △청탁(淸濁․술의 종류)을 따지지 않는 것을 ‘육불문(六不問)’이라고 해서, 이 6가지를 묻지 않는 걸 미덕으로 삼는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는 만큼 이 또한 시대에 맞게 고쳐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술자리가 동료끼리든지 아니면 비즈니스 자리든지 십불출(十不出)은 되지 말아야 한다. 혹 당신은 이 십불출에 끼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술자리 십불출
하나, 술을 잘 안마시고 안주만 먹는 자.
둘, 남의 술에 제 생색내는 자.
셋, 술잔 잡고 잔소리만 하는 자.
넷, 술 마시다가 딴 좌석에 가는 자.
다섯, 술 마시고 따를 줄 모르는 자.
여섯, 상갓집 술 마시고 노래하는 자.
일곱, 잔칫집 술 마시고 우는 자.
여덟, 남의 술만 마시고 제 술 안 내는 자.
아홉, 남의 술자리에 제 친구 데리고 가는 자.
열, 술자리 모임에 축사 오래 하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