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잘못 배우면 평생 고생이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찾아와 물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굉장한 식물을 심고 있는 중이야.”
“이건 처음 보는 식물인데.”
“이 식물에는 아주 달고 맛있는 열매가 열린다고. 그리고 그 국물을 마시면 아주 행복해지지.”
그러자 악마는 자기도 꼭 동업자로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양, 사자, 원숭이, 돼지를 끌고 와서 그것들을 죽인 후 피를 거름으로 주었다. 포도주는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생겨났다.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와지며, 조금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더 많이 마시면 토하고 뒹굴고 하면서 돼지처럼 추해진다. 이것은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었다.
탈무드에 나오는 ‘술의 기원(起源)’에 대한 이야기다. 주당들 중에는 술을 입에 대면 이른바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이 꽤 많다. 어느 정도 마시고 일어나면(半醉狀態) 뭔가 서운하고 개운치가 않아 동료들이 떠난 자리에 남아서 술을 더 청하거나 2, 3차로 술집을 전전한다. 그러다 보면 탈무드에 나오는 돼지처럼 추해진다.
J. F. 킨트는 “입술과 술잔 사이에는 악마의 손이 넘나든다”고 했고,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함)에도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했다. 하물며 공자도 “술 마시고 취하지 않았을 때와 같이 행동하기 어렵다”고 했다.
술은 적당히 마시고 제동을 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마실 줄만 알지 제동 거는 것을 배우지 않아서인지 술자리에서의 못된 짓들이 연일 신문지면을 더럽히고 있다.
요즘 자동차 기술이 꽤 발달해 빠르기가 웬만한 비행기만큼 되는 자동차도 생겨났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멈추는 기술이 달리는 기술만큼 못하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인지 세계 유수 자동차 메이커들은 제동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주당세계에서도 술 잘 마신다는 평을 듣기 위해서는 많이 마시는 두주불사(斗酒不辭) 보다 차라리 ‘주종불사(酒種不辭)’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소주를 마실 때 어떤 이는 ‘ㅈ’소주를, 또 어떤 사람은 ‘ㅊ’소주만 찾는 사람이 있다. 가령 지방에 출장을 갈 경우 그 지방의 소주 맛을 보는 재미도 있는 법인데 구태여 서울에서 많이 팔리는 소주만 찾는 사람을 보면 멋이 없어 보인다.
이 술 저 술을 마셔보면 독특한 맛들이 있다. 새로 나온 술이 있다면 찾아서 마셔보는 재미도 주당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오직 한 가지 술에만 매달리는 사람을 술꾼이라 할 수 있을까.
흔히 ‘술은 부모한테 배워야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 부모가 술을 잘못 배운 사람이라면 주정뱅이를 대물림하는 꼴이 된다. 이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술이란 분명 위험하고 어려운 것이다. 불도 위험한 것이지만 이것을 잘 사용함으로써 문명을 꽃피웠다. 술도 이와 같이 조심스럽게 잘 다루면 인간의 격이 높아지고, 더 나아가 문화와 정신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술자리에 동석했던 친구를 때려죽이거나 술김에 부모를 살해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부가 하루빨리 나서서 음주문화에 대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교육과 계몽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특히,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는 청소년 시기에 올바른 음주문화를 가르치면 이들이 성년이 돼서도 막가파식으로 술을 마시지는 않을 것이다. 이왕 마시는 술이라면 제대로 알고 마셔야 술탈이 줄어들 것이다. 술을 적당히, 바르게 마시면 이보다 정신건강에 더 좋은 것은 없다. 술이 정신에 미치는 작용은 실로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