宮에 불려 들어가서도 술 갈증 때문에 도망 나와

東西 酒人列傳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는 얼마든지 있다.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주인열전(酒人列傳)’, 지금 시작한다.

 

 

宮에 불려 들어가서도 술 갈증 때문에 도망 나와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1897)

 

조선 초의 안견, 후기의 김홍도와 함께 조선 화단(畫壇)의 3대 거장 중 한 명이다. 어려서 고아가 된 그는 이응헌(李應憲)의 집에서 심부름하며 살다가, 그 집에서 서화(書畵)를 눈으로 익혀 그림의 이치를 깨쳤다. 한 번도 붓을 잡아보지 않은 그가 하루는 붓을 들어 휘저으니 척척 그림이 돼 주인은 그림에만 전념하도록 했고, 후에 궁으로 들어가 병풍을 그리게 됐다.

술을 무척 좋아해서 잔만 들면 삽시간에 말술을 마시고, 또 몇 달을 계속 취해있을 때도 있었다. 돈이 손에 들어오면 죄다 술집에 맡겨놓고 매일 마셔댔는데, 술값 계산은 하지 않고 술집 주인이 돈이 다 떨어졌다고 하면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궁에 불려 들어가 병풍을 그릴 때에도 술에 갈증이 난 그는 그림도구를 산다는 핑계로 도망 나와 임금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민영환(閔泳煥)이 자기 집에서 그림을 그리도록 하겠다며 데리고 나와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만 술을 주었는데, 마음대로 마시고 싶은 그는 재미있을 리 없었다. 마침내 청지기가 잠든 틈을 타서 옷을 훔쳐 입고 달아나고 말았다. 곧 다시 잡혀 왔지만 임금이 명한 그 병풍은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에는 곱게 화장한 여인에게 술병을 들려 술을 따르게 하고서야 붓을 잡았고, 이내 신이 나서 잘 그렸다고 한다. 40세가 다 되도록 독신으로 지내다 남의 권유로 장가를 들었지만 하룻밤을 지내고는 그만두고 평생을 혼자 지내다 55살에 세상을 떴다.

 

 

폭음․줄담배, 그레타 가르보와의 염문…91세까지 장수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1874~1965)

 

둥글둥글 단단하게 뭉친 체구, 흰색 바바리코트에 중절모, 검은 시가를 입에 문 채 뒤뚱뒤뚱 걸어 다녔던 영국의 전(前) 수상 윈스턴 처칠. 다혈질 성격 탓에 발끈 흥분도 잘했던 그는 남아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필명을 떨쳤고, 제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내각수반으로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끄는데 선봉장 역할을 했다. 전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풍경화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다재다능한 세계적인 영웅이었다.

정치적 명암(明暗)으로 점철됐던 그의 인생은 엄청난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91세까지 장수했는데, 죽기 전날까지 엄청난 양의 담배를 피우고 많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가 하루에 마신 샴페인, 코냑, 위스키의 총량에서 순수 알코올만 추출해보니 180g이나 됐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시고,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댔음에도 그는 보란 듯이 90세 넘게 건강하게 살았다. 영국의 어느 유전학자는 그렇게 술 담배를 즐기고도 건강하게 장수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믿기 어렵다면서, 처칠만이 갖고 있는 어떤 ‘보호 유전자’ 내지 ‘처칠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처칠은 술 못지않게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했다. 한 예로 20세기 최고의 미녀 배우 가운데 한 명이고, 성도착 증세를 가졌으며, ‘신화 속의 배우’로 불린 그레타 가르보와의 염문은 유명하다. 정열적이고 급한 성격의 처칠과 관능적인 육체파 여배우 가르보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은 가히 짐작이 간다.

가르보는 ‘그랜드 호텔’, ‘여왕 그리스타나’, ‘동백꽃 아가씨’, ‘니노츠카’ 등에서 세계 영화사상 기념비적인 농도 짙은 연기를 남겼다. 이 영화에서 가르보는 온갖 칵테일을 즐기며 열연한다. 처칠 못지않게 가르보도 술과 섹스를 즐겼다. 그의 아버지는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술주정뱅이로, 툭하면 아내와 싸우곤 했다고 한다. 가르보는 어머니가 교회 목사와 벌이는 불륜의 정사장면을 여러 차례 보면서 자랐는데, 그녀가 유일하게 성도착 증세를 가진 관능배우였던 것도 사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행실을 보며 자란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가르보는 당대의 명지휘자 스토크프스키 등 숱한 남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세간의 화제를 모으다가 인기 절정의 나이인 36세에 은퇴를 선언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죽을 때까지 은막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데, 역시 85세까지 장수했다.

술과 담배를 즐기고 여성편력이 심했던 처칠, 술과 영화를 위해 살았고 남성편력이 심했던 그레타 가르보. 그러면서도 장수를 누렸던 두 사람은 결국 깊은 관계에까지 이르렀고, 독특한 스타일과 매력의 주인공으로서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