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63)

Nightmare(disambiguation)(1781)/ Henry Fuseli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63)

 

 

디오니소스와 얽힌 신화

남태우 교수

디오소스와 관련된 일화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매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신화에서 주신 디오니소스는 인간인 어머니 세멜레에게서 임태되고 아버지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난 올림포스 12신의 자리에 위치한다. 그에 관한 에피소드 중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디오니소스와 미다스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스를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을 거듭한 끝에 포도주를 발명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포도 덩굴을 몸과 머리에 감고 다녔다. 디오니소스는 다른 신들처럼 올림포스에서 살지 않고, 추종자들과 함께 온 세상을 여행하며 살았는데, 특히 사티로스였던 실레노스는 항상 디오니소스와 같이 다니는 절친 이었다. 이 실레노스로 인해 유명한 미다스 왕의 황금손 이야기가 탄생되었다.

어느 날 실레노스는 과음을 한 채 돌아다니다가 들판에서 일하던 프리기아 사람들에게 붙잡힌다. 사람들은 붙잡은 실레노스를 꽃으로 만든 사슬로 묶어서 미다스에게 데려가고, 미다스는 실레노스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알아본다. 미다스는 그를 융숭하게 대접하며 맛있는 술을 내놓았고, 실레노스는 미다스와 그의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답한다. 그렇게 11일이 지나고, 미다스는 실레노스를 디오니소스에게 다시 무사히 데려다 주니, 기분이 좋아진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리지아의 왕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의 스승이면서 양부인 실레노스를 잘 보살펴 준 대가로 디오니소스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는다. 디오니소스가 미다스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미다스는 자신의 손이 닿은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디오니소스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 요청을 승낙했고 미다스는 그 결과에 너무나 만족해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해서 미다스는 그 유명한 마이더스의 손, 즉 무엇이든 만지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는 황금 손을 얻게 된다. 어떻게 보면 미다스는 모든 연금술사들의 꿈을 접대 한 번으로 쟁취한 것이다. 그러나 미다스가 음식을 먹기 위해 손을 대는 순간 음식은 황금으로 변해버렸고, 자신의 부하와 딸마저 황금으로 변하고 말았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닥치는 대로 황금을 양산해내든 미다스는 식사 시간이 되자 갑자기 당황하게 된다. 손뿐만 아니라 입술을 비롯해서 어디든 맨살에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황금으로 바뀌어 버리니 굶어 죽을 지경이 된 것이다. 그의 손에 닿은 딸이 황금으로 변해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다스는 후회하며 디오니소스에게 이 선물을 다시 거둬줄 것을 간청할 수밖에 없었다. 디오니소스는 애초에 미다스를 벌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이 부탁을 들어줬다. 그는 팍톨로스 강으로 가서 몸을 담그면 그 힘이 없어질 것이라고 일러줬고, 미다스가 몸을 담근 뒤부터 팍톨로스 강에서는 사금이 채취되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팍톨루스 강에 몸을 씻으면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라 말하였고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의 말대로 팍톨루스 강에 가서 몸을 씻자 황금으로 변하는 일이 사라졌다. 그 후 미다스는 부와 영화를 싫어하였고 시골에 살면서 들의 신인 판의 숭배자가 되었다.

 

디오니소스와 펜테우스

펜테우스는 테베의 왕이자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의 조카였다. 그는 자기 사촌이 신이 되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디오니소스 일당이 테베에 도착하자, 그를 사기꾼으로 매도해버렸다. 눈먼 현인인 테이레시아스가 디오니소스의 주장이 맞는다고 충언을 하고, 심지어 자기 어머니인 아가베까지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바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를 비웃어버린다.

이 술주정꾼 신조차도 자신의 신격을 믿지 않는 인간에 대해서는 친척이고 뭐 고를 떠나서 형벌을 내려야만 직성이 풀렸으니, 그에게 가혹한 운명을 준비해준다. 디오니소스는 펜테우스에게 그의 추종자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직접 보는 게 좋지 않겠냐며 펜테우스를 꼬드겼고, 추종자들이 다들 여자이니 여장을 하고 가야지 남자임을 들킬 경우 갈가리 찢겨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펜테우스는 동의하며 여장을 하고 염탐을 나서지만, 디오니소스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디오니소스는 테베의 여인들에게 최면을 걸어 광기에 사로잡히게 만들었고, 이들의 미친 눈에는 여장을 한 펜테우스가 한 마리 멧돼지로 보였다. 술과 최면에 도취된 이들은 이 짐승을 사냥해서 갈가리 찢어 죽였다.

그 여인들 중에 펜테우스의 어머니인 아가베도 있었으니, 아가베는 그것이 자기 아들인 줄도 모르고, 머리를 잘라서 손에 쥐고 의기양양하게 테베로 돌아왔다. 잔인한 디오니소스는 그제야 최면을 풀어주고, 아가베는 자기 손에 들린 것이 아들의 머리임을 알아차린다. 이 꼴을 당한 어머니의 마음이 온전할 리 없으니, 그 뒤로는 슬픔과 공포에 따른 영원한 광기에 시달리게 될 뿐이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아가베가 자기 동생인 세멜레가 제우스와 뒹군 게 아니라, 사실은 인간과 뒹굴어놓고 허풍을 치다가 벼락에 맞은 거라고 중상모략(?)을 했는데, 이에 대한 벌로 디오니소스가 자신을 무시하는 펜테우스뿐만 아니라 아가베에게 까지 가혹한 형벌을 내린 거라고도 한다.

디오니소스와 암펠로스

암펠로스(Ampelos, 포도밭)는 실레노스와 님프가 정을 통하여 낳은 젊은 사티로스로, 디오니소스가 짝사랑한 미소년이다. 신화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디오니소스는 암펠로스라는 같은 나이 또래의 미소년 사티로스와 어울렸다. 암펠로스를 너무나도 사랑한 디오니소스는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암펠로스를 자신의 애인이라고 소개시키며 그가 가니메데스보다도 훨씬 아름답다고 비교하기까지 했다.

디오니소스와 암펠로스는 씨름을 하면서 서로의 몸을 스치며 탐하기도 했다. 디오니소스는 그와 씨름을 할 때마다 일부러 져주면서 그의 몸에 깔리는 느낌을 즐겼다. 디오니소스는 언제나 암펠로스와 함께 사냥을 다니며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다만 성난 숫소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신화나 인간 세상에서 하지 말라는 금지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한사코 더 하고 싶은 욕망은 매한가지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개울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숫소를 발견한 암펠로스는 디오니소스의 당부를 잊고 숫소 목에 굴레를 걸고 숫소를 타기 시작했다. 이에 질투심을 느낀 셀레네는 등에떼를 내보내 숫소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고, 숫소는 암펠로스를 언덕 위에 내던져 버렸다. 암펠로스는 결국 바위에 부딪혀 죽고 말았다.

암펠로스의 시체를 발견한 디오니소스는 그를 팍톨루스 강가 주변에 묻어 주었다. 또한 암펠로스의 무덤 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도나무를 심어 주었다. 디오니소스는 사랑하는 애인이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워 자신도 따라 죽고 싶었지만 불멸의 신이어서 그를 따라 하데스로 갈 수가 없었다.

슬픈 디오니소스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의 위로를 받고 기운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음날 무덤에서 자란 포도나무가 익자 디오니소스는 포도를 따 즙을 짰다. 디오니소스는 하루 동안 숙성시킨 포도즙을 여러 사람에게 맛보게 하였고 그렇게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의 신이 되었다.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를 암펠로스라고 부르며 온 세상에 포도나무의 종자를 퍼트렸다.

 

디오니소스는 어머니의 죽음 속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인간들에게 욕망을 품은 신의 모습은 이제 제우스에 이어 다른 신들로 확대된대서 비롯된다. 신들이 인간 세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를 거두었다가 다시 버렸고 아르테미스의 부탁을 받아 처녀신의 몸매를 흉본 아우라를 술에 취하게 해서 강간했다.

디오니소스의 첫사랑은 암펠로스라는 소년이었는데 암펠로스는 디오니소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소에 의해 죽는데 그래서 암펠로스는 죽어서 포도나무가 되었다. 디오니소스는 첫사랑의 결과물을 통해 그 어떤 신도 소유하지 못한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되는데 이것은 포도주이다. 디오니소스는 자기를 환대해준 이카리오스에게 포도를 재배하는 비법을 전수해주고 에리고네라는 그의 딸과 동침했다. 이카리오스가 목동들에게 술의 힘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처참하게 살해된다.

 

신화에 따르면 그는 크레타의 왕녀 아리아드네와 결혼하여 세 자녀 암펠로스(Ampelos, 포도밭), 스타필로스(Staphylos, 포도나무), 오이노피온(Oinipion, 포도주 애주가)을 두었다. 디오니소스가 그림 속에 나타날 때는 항상 포도덩쿨이 달린 지팡이(Thyrsos)를 들고 다닌다. 예술을 즐겼던 그리스인들은 많은 예술 작품속에서 포도주와 관련된 유물들을 남겨두었다.

먼저 포도주를 담는 도기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오는데 운반을 위한 암포라(ampora), 포도주와 물을 섞는 그릇 크라테르(cratere), 술주전자 오에노코에(oenocoe)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주연(symposion)에서는 포도주가 빠질 수 없었고, 그때 벽 쪽에 있는 길쭉한 의자(banquette)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술자리를 즐겼다. 오늘날에도 서양식당에는 한쪽면에 긴 의자를, 안쪽에는 안락의자를 놓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된 것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종교의식을 치르고 신들을 찬양하며 인생을 논했다. 포도주는 단순한 음료수가 아니라 고급문화로서 자리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포도주가 생활속에 자리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주하거나 식민지로 개척한 땅에서도 포도나무를 심게 되었다.

그리스의 포도재배는 알렉산더대왕의 원정으로 인해 더욱 확산되었는데 전한(前漢)시대의 중국에까지 포도주가 전파되기도 했다. 그리스인에 의해 로마에 전파된 포도재배 기술은 ‘팍스 로마나’를 위해 군대가 주둔한 지역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로마인들은 굉장한 포도주 애호가들로서 한때 이탈리아반도 내에 포도재배단지의 확대로 곡물을 속주(屬州)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로마군은 오늘날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북아프리카 등을 점령하고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주를 생산하였다. 점령지에서 포도재배는 군단병사들에게 중요한 업무이기도 했다. 재배지역은 주로 강의 계곡이었는데 프랑스에는 아직도 포도재배의 중심지로 남아 있다. 그들이 강의 계곡을 선택한 것은 1) 계곡의 경사면은 햇볕을 잘 받고 관개가 편리한 점 2) 운반을 위해서는 육로보다는 강이 유리한 점 3) 강둑에 있는 숲을 제거하여 적군의 게릴라전이나 잠복을 방지하는 군사적 목적 때문이었다고 한다.

포도주문화는 로마 시대에 주둔 군사들의 병영을 중심으로 만개했는데 독일의 스페이어(Speyer)지방에서 발견된 기원후 325년에 만들어진 로마 시대의 유리 술병을 보면 오늘날의 형태와 거의 비슷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오늘날 유럽의 포도산지 대부분은 로마시대인 기원후 1-5세기에 형성된 것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후 포도원은 수세기 동안 성당과 수도원에 의해 관리되었다. 당시 모든 학문의 중심지였던 수도원의 수도사들에 의한 포도재배기술의 연구는 포도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기독교와 포도주는 지난 2000년 동안 애증이 교차하면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구약성경에는 노아가 대홍수 이후 포도 농사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예수와 열두제자의 ‘최후의 만찬(la Cène)’에서 포도주는 빵과 더불어 성물로 제공되었으며 성서에서는 포도원을 귀중한 곳으로 언급하고 있다. 기독교가 전파됨에 따라 포도주문화도 확산되었다. 지금도 성당에서는 미사 때 굽이 달린 포도주잔(聖杯, chalice)을 쓰는데 이것은 그리스시대에 만들어진 형태를 차용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포도주잔들은 반드시 굽이 달린 잔을 사용하는 데 와인의 향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종교의식에 쓰이던 관습이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포도주의 향기를 보호하는데는 잔의 굽은 아무런 연관이 없지 않은가.

중세 이후 포도재배와 포도주의 양조기술은 국가로부터 면세 혜택 등 정책적인 배려를 받음에 따라 유럽의 포도원은 거의 귀족이나 교회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그들을 보호하고 있던 왕권이 무너지면서 왕의 보호를 받던 귀족이나 교회소유의 포도원들은 소작인들에게 분할된다. 이후 신흥자본가(Bourgeois)에 의한 포도재배가 시작되어 포도주는 종교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산업으로서 자리 잡는다. 수질이 좋지 않은 서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포도주는 물을 대신하는 음료수였고 질병을 예방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당시의 포도주 소비량은 오늘날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아리아드네(Ariadne)의 아버지는 크레타섬의 미노스 왕이다. 그는 거대한 미궁 속에 광폭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두고 딸에게 미궁을 관리하도록 시켰다. 이 미궁은 워낙 설계가 잘되어 있어서,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당시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괴물을 처단하러 왔다가 미궁에 갇혀 오히려 먹이로 바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는 아무도 괴물을 해치울 용기를 내지 못할 때 테세우스라는 청년이 자진해서 나섰다. 그의 용기에 반한 아리아드네는 그의 손에 실타래를 쥐어준다. 덕분에 테세우스는 미궁의 입구에 실을 묶고 실타래를 풀면서 들어가 괴물을 죽인 뒤, 그 실을 따라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여 영웅이 된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아테네로 돌아가는 도중 낙소스섬에 잠시 머무른다. 아리아드네에게 빚을 지기는 했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이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었던 테세우스는 디오니소스가 나타나 잠든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자, 기꺼이 물러나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잠든 사이 도망치듯 섬을 떠난다. 조각상에서 보듯 아리아드네는 한쪽 젖가슴을 드러낸 채 정신없이 자고 있는 무방비한 상태로 테세우스에게 버림을 받은 셈이다. 미궁은 혹시 카오스처럼 모든 것이 뒤엉켜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그 세계의 봉인을 푼 아리아드네는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인간은 무방비하다. 그 사이에 온갖 위험과 약탈, 속임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성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겠다는 계몽의 시대에, 잠은 각종 무시무시한 상상과 불가해한 힘들이 지배하는 어둠의 영역이었고 통제 불가한 두려움으로 이해되었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유명한 저서 <리바이어던 Leviathan>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근거로 잠자는 인간의 무방비 상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잠이 마냥 평화로우리라는 상상과 달리, 그림 속에서도 잠든 사람은 의외로 불안한 모습으로 제시될 때가 많다.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한 남자가 책상 위에 잠시 엎어져 눈을 붙인 사이에 등 뒤로 스멀스멀 온갖 괴물의 형상이 깨어나고 있다. 여기서 괴물은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과 통제되지 않은 감정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잠든 동안 이성이 작동하지 못하면, 억압되어 있던 그것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계몽주의자들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훈계하곤 했다. “항상 깨어있으라.”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1797)/ 프란시스코 고야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헨리 푸젤리(Henry Fuseli, 1741-1825)가 그린 <악몽The Nightmare>은 잠든 사이에 꿈에 나타나는 어둠의 존재들을 보여준다. 이런 존재들을 사람들은 몽마(夢魔)라 불렀다. 몽마는 두 종류로 분류되는데, ‘위에 눕는 자’라는 의미의 인쿠부스(incubus)와 ‘밑에 눕는 자’라는 뜻을 지닌 수쿠부스(Succubus)다. 여인의 몸 위에 올라탄 괴물은 아마 인쿠부스인 모양이다.

 

Nightmare(disambiguation)(1781)/ Henry Fuseli

인간의 상상 속에서 잠은 미노타우로스를 품고 있는 미궁과 연결되어 있고, 어둡고 악마적이고 퇴행적인 양태를 띠기도 한다. 반면 깨어있음의 세계에는 늘 이성에 의해 제어되는 명료하고 도덕적이고 진보적인 것들이 환하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다움이 드러나는 지점은 잠의 영역이다. 미래의 언제쯤엔가는 인간이 잠 없이 더 생산적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씁쓸하게도 그것은 인간이 곧 기계가 된 세상을 암묵적으로 말할 뿐이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