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보복음주’

김원하의 취중진담

 

고삐 풀린 ‘보복음주’

 

 

우리는 술을 왜 마시는가?

이 같은 물음에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똑똑하다는 AI도 찾지 못하고 한 참을 헤맬 것 같은 질문이다. 누구는 이별이 슬퍼서, 마음이 울적해서, 시험에 떨어져서 등등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이세상에 태어난 것이 너무 좋아서(생일 날), 취직이 돼서, 애인이 생겨서, 공돈이 생겨서와 같이 기뻐서 술을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어 술을 마신다는 구실을 찾을 것 같다.

1924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말로리가 원정을 떠나기 전 필라델피아의 한 강연장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을 듣고 난 어느 기자가 ‘당신은 왜 산에 갑니까?’라고 질문을 했다. 이에 말로리는 ‘Because it is there(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라는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주당들 역시 술 마시는 이유가 술이 있어 술을 마신다고 한다. 마치 등산가들이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훈 조동탁(趙東卓1920.~1968.)이 1956년에 발표한 술은 ‘인정이라’는 글에서 “제 돈 써가면서 제 술 안 먹어준다고 화내는 것이 술뿐”이라고 했다. 또 “아무리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밉지 않은 것은 술 마시는 자랑뿐”이라고 일갈했다.

밋밋한 대화 자리에선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던 사람도 술 몇잔들어가면 있는 말 없는 말이 술술 나온다.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비밀스러움도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이런게 바로 취중진담이 아닌가. 아름다운 주석에선 시가 나오고 노래가 나온다. 문학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술은 인간사와 괘를 같이 하고 있다. 종교적 이유로 국가에서 술을 금지하는 몇몇 나라를 제외하곤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최근에는 음주문화에도 많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건강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높아져 많이 마시기보다는 즐기는 경향이 짙다.

풋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술맛도 모르고 많이 마시는 것이 술 잘 먹는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무조건 많이 마셨다. 그리고 나서 술을 이겨 내지 못하고 토하고 그랬다. 아침 출근길 술집들이 있는 골목길에는 술을 이겨내지 못한 흔적들이 너저분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요즘은 예전처럼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는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직장인들 가운데는 코로나19로 회식문화를 할 수 없어 좋았는데 거리두기가 해지되어 회식문화가 다시 시작될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경제성장기인 70-80년대에 사회활동을 시작한 당시의 젊은이들은 선배가 건네는 술잔을 거절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술이 좋던 싫든 술잔을 받아 마시는 것이 사회인이 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술을 강권했다간 꼰대소리 듣는 것은 물론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패션 매거진 ‘VOGUE 코리아’가 최근호에서 ‘나는 왜 술을 마시는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딱 한 잔만 더 마시면 ‘쭈굴한’ 현재가 사라지고, 활기차고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미래가 찾아올 것이다. 알코올이 부리는 마법이다.”고 했다.

또 토마스 빈터베르그 영화 <어나더 라운드>에는 흥미로운 이론이 등장한다. “인간은 혈중알코올농도가 0.05%쯤 부족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를 유지해주면 더 느긋하고 개방적이며 대범해진다”는 철학자 핀 스코르데루의 가설도 예로 들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사회분위기가 거리제한이 풀리고 식당의 영업시간도 자유로워지자 이른바 보복음주가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조지훈처럼 제돈 주고 술 마시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보복음주는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 과도한 음주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겠지만 술자리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거리두기가 풀리기 전과 후 112 신고는 거리두기가 풀리기 전 하루 평균 신고가 평균 1501건이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음주시비가 393건에서 485건으로, 음주운전 신고가 110건에서 146건으로 증가하는 등 음주 관련 신고가 늘어났다고 밝혔다.

거리두기와 식당의 영업시간이 제한되었을 때 2차는 꿈도 꿀수 없던 것을 3차까지 갈 수 있다니 주당들은 이게 웬떡이 나고 폭음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고삐풀린 망아지 꼴이다.

안 먹던 술을 갑자기 많이 먹게 되면 몸에서 받아주지 않아 건강에 해를 끼침은 물론 안 하던 술주정도 할 수 있다. 술을 마시데 주정뱅이 소리는 듣지 말아야 되지 않을까.

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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