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정책의 민주화와 산업발전을 위해

주류정책과 정책이야기(36)

 

주류정책의 민주화와 산업발전을 위해

전제와 방향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④)

 

조성기(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한국할랄산업연구원, 이사, 연구센터장

 

 

주류규제정책의 역사와 정책합의 경험의 부재상황

주류정책의 역사여행을 해 보자. 일제강점기 이후 정책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주류정책을 둘러싸고 어떠한 합의를 해 왔는가? 그 역사 속에서 “주류정책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해방 이후 정부는 주류업계와 음주의 현장을 강력하고 꾸준히 통제해 왔다. 그래도 술 마시는 현장의 소비자들은 정부의 통제를 심하게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연스레 정부는 강한 규제정책을 구사했고, 합의는 물론 없었다. 사실 비민주적 상황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국민들도 당연스레 자연스레 받아들였었다. 술의 종류, 술의 양, 가격, 품질 등에 대한 통제와 규제, 그 규제정책에 발 맞춰 공급되는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에 대해서도 특별한 이견 없이 술을 마셨다. 12시에서 4시까지 식당도 교통도 끊어지는 통행금지도 있었던 시대다. 주력 주종들인 탁주, 소주, 맥주, 위스키, 와인 시장은 그렇게 유인, 육성되었고 변화해 왔다. 그 규제 제도의 중요성과 크나큰 영향력은 설명도 설득도 불필요한 일이다.

 

당시 전통주는 모든 정책에서 외면당했다. 농산물이 부족할 때에는 원료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우리 쌀 탁주는 법적으로 사라졌었다. 1963년 막걸리 제조에 백미사용을 금지하고, 이후 사용 원료의 2할 이내로 백미 사용을 허용했다가 1966년 백미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밀가루와 잡곡을 섞어 막걸리를 제조했다. 11년 뒤인 1977년 풍년이 들자 이제는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분식의 날을 폐지했다. 이어 밀가루 막걸리를 금지하고 쌀 막걸리를 생산하도록 함으로써 쌀 소비억제정책을 전면 해제했다.

쌀을 술로 사용하지 못하는 오랜 기간 동안 전통주는 민속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일부 장인들에 의해 공급되어졌을 뿐이었다. 최근까지 대부분 영세한 규모로 남아 있는 이유는 규제정책과 관련이 크다. 부활하게 된 시점이 아주 오래전이 아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전통주 통신판매가 가능하게 한 결정에는 그러한 상대적 피해를 당한 역사가 있었기에 필요했던 일이었다.

“정부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제도를 어떻게 개선시켜 갔을까?”, “그리고 그 제도의 전제는 무엇이었을까?”라고 추적해보자. 주류정책을 시대별로 구분할 때, 잠정적인 이벤트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시점이 하나의 분지점이 아닐까?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제도적 차이를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에 글로벌화 되어 가는 시장이 제도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외부 세상와의 연결 상황 변화, 그에 따른 산업적 필요성, 제도변화와 함께 주류시장도 재편되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스템의 국내 진입, 알코올 문제 중시나 환경보호 등의 과거와 다른 정책적 관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1998년 이전의 주류행정은 주로 제조와 유통부문의 주류면허, 징세관리 등을 기반으로 강력한 규제가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그 규제를 담당하는 국세청이 정책관리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강력한 규제의 위세에 대해 누구도 토를 달지 않지만 최근 국세청의 행보와 비교한다면 모두가 깜짝 놀랄 일이다. 심지어 그 시대에는 ‘주세가 국가재정의 20%에 이르렀었다’는 통계가 그 상황을 잘 설명한다. 그 당시에는 소비수요가 큰 주류의 가격에 고세율을 부과하고 주류산업 전체를 종합관리 하는 ‘종가세’ 체제 이었다. 국내 주류와 수입주류의 조세형평성을 맞추고자 맥주세가 종량세로 변했다는 사실을 사실 놀랄 만한 일이었다. 민간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정책의 변화에 기여한 소통의 산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1998년 이후 20여년에 걸쳐 민간이 키워온 전문적 역량이 정부정책에 영향을 미친 특이한 사건이었다.

 

1948년 헌법제정 이전에는 주세와 식량 확보가 국가와 정책당국에게 무엇보다 중요했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국가재정 확충을 위한 세율조정과 그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규제가 순리였다. 1970년대에서 1980년 대 까지는 기존의 정책골격을 유지하면서 수출용 주류에 세제혜택을 주었다. 한 푼이라도 외화수입을 늘려야 하는 당시에는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한 전제들이 주류 규제강화정책의 이유였다. 소통의 시간을 위해서는 더 시간이 필요했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는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에 보다 더 집중적으로 편입되는 기간이다. 그 기간 중 올림픽도 개최되었다. 개방 분위기 속에서 면허제도 완화, 백미사용 허용, 농민주류제조 허용, 양주와 맥주세율의 인하 등 산업화와 국가 간 거래 촉진 정책이 일반화되었다. 그 상황은 1990년대 후반 주류정책의 방향전환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규제완화는 외부의 영향, 즉 세계화와 함께 진행되었던 것이다.

 

1998년 이후 국세청은 ‘국민건강’ 측면도 고려하는 방향으로 주세행정 운용방향 전환을 천명하게 된다. 규제의 전제가 변하기 시작하는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국세청’이 ‘국민건강’에 관심을 갖은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국세청이 우리나라 주류규제 정책 전반을 책임지는 당국이었다. 역시 그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타 부처나 민간부문도 없었다. 1990년대 후반 까지만 해도 정부의 관행상 ‘보건복지부’가 주류산업 문제나 주류규제정책에 개입하지 못했고, 실제로 알코올 중독에 대한 예방치료도 전근대적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 당시에는 의과대학에서도 알코올중독 치료를 전문적으로 학습하지 않았었다.

당시 정부의 정책문건에 ‘음주폐해 감축을 위해 주류산업정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국세청의「정책보고서」였다. 주류산업 정책의 전제 중 하나가 ‘알코올 문제’라는 문구가 명시적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국세청 내부에서 ‘국민의 음주건강 문제’가 주류산업정책의 중요한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를 아는 이가 본다면 그 주장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었다. 우리 정부의 관행상 정책이란 사안의 내용여부를 막론하고 그 주도적 의사결정이 ‘주무부처’의 일이었다. 국세청은 재경부 산하의 기구였지만 실질적 정책주도 기구였다.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이해한다. 그 관행은 일본도 같았다. 일본에서 ‘청소년 음주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위원회’를 일본국세청이 주도하고 문부성, 후생성 등이 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국세청은 당시에 주류산업계를 움직여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를 설치하고 예방과 치료분야를 선도적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했었다. 세계적으로 찾기 힘든 일대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시도되었다는 의미는 있었지만 민간의 자발적 의지에서 시작되지 않은 한계로 오래가지 못했다. 2010년경에 재원이 끊어지고 실질적 활동을 멈추게 된다. 정부 주도의 사업이 갖는 한계였던 것이다. 그만큼 정부의 규제 보다는 민간의 자율적 활동이 필요하다는 한 증거가 된다.

 

2000년 이후에는 음주폐해감축, 주류공병 재사용, 전통주 진흥, 주질과 위생관리 등 주류산업의 새로운 분야를 둘러싼 정책적 노력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알코올 사용 장애 유병율’이 13.5%(2005년)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며, WHO 서태평양 지역이나 세계평균(3.6%)과 비교했을 때 높은 수준이라는 통계자료들이 발표되면서 그 중 음주폐해 감축문제가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정부 내에서도 고조되었다.

그 후 보건복지부가 주류건강 문제 개입에 실질적 권력으로 등장하고 주질 위생문제에 대해서는 식약처가 목소리를 높이며 개입하게 되었다. 주류정책의 주도적 진행권한이 국세청에 있었지만 보건복지부나 식약처 업무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때 세계보건기구(WHO)는 63차 총회에서 알코올의 해로운 사용에 대한 글로벌전략(Global Strategy to Harmful Use of Alcohol WHA 63.13)을 발표(2010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류음용에 대한 규제의 기치를 들고 나섰다. 그 영향이 우리나라에서의 정책추진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정책성과를 제대로 보자면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 이제 보건복지부의 구호가 ‘실제 음주문제 예방치료에 효과적이었는가?’하고 질문해 보면, 아쉬운 측면이 아주 컸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정부부처의 관료주의를 넘지는 못했던 것이다. 글로벌 상황이 그렇게 변하는 분위기였지만 기재부의 주류정책회의에 가보면 보건복지부의 정책적 입장은 그다지 큰 영향력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보면 ‘주류정책의 기조가 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뭘까? 주류정책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결정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규제를 강화해야 할 문제가 계속 지적되는 순간에도 규제완화 정책이 계속 진행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정부와 시민의 ‘실질적 음주건강관리 활동’보다 ‘국민건강기금’부과 등 재원조성에 더 집중했었다. “국민의 음주건강이 아니라 행정적 권력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주류에서 공식적으로 알코올 관련 문제 해결 기금조성은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적 포커스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데 왜 그런 일이 지속되는 것일까? 정책의 전제에 대한 합의가 없이 해당정책의 추진에만 열을 냈었고 정부 규제 일변도로 주류정책을 추진해도 된다는 관행이나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문제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기금정책이 통과될 리 만무했던 것이다. 예방과 치료를 담당하는 기구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사실 시민들의 인식수준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내부 뿐이 아니라 국민들도 공감대를 구축하지 못할 때 필요한 알코올 정책이나 주류산업정책이 추진될 리가 있었을까? 예를 들어 주류광고와 야외음주에 대한 규제강화 정책이 통과되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가진 문제였던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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