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 병 사들고, 마음을 살피다
임재철 칼럼니스트
유월, 연한 녹색에서 점점 짙은 녹색으로 무장해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면 눈의 피로가 가시는 시절이다. 녹음이 짙어 지는데 발걸음이 무겁다. 가령 우리의 일상은 짧은 시간 속에서도 정말 많은 여러 가지 사건 속에 놓이곤 한다. 만약 우리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본다면 크고 작은 일들이 수없이 벌어졌다가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직도 대선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필자 역시 TV를 보지 않고 뉴스를 듣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테면 포털의 뉴스 란까지도 삭제했다.
그러나 패배 이후에도 전혀 정신 차리지 못한 세력들은 아주 폭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사상누각인지 모르고 오래도록 집권하겠다는 허황된 꿈에서 벗어나 정말 식언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 보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펼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혹자는 말한다. 검찰공화국 아래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은 더욱더 살아날 것이라고. 그러니까 검언정경판의 완판 카르텔, 검찰이 앞장서고 언론이 호위하며 여당이 우기고 재벌이 후원하고 끼리끼리 이득을 취하고 나누며 판사가 면죄부를 주는 기득권 부패 연합구조가 구축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윤핵관과 윤핵검 그들이 정권을 휘두르며 자기들 배에만 기름끼 돌게 하지 서민들 처지는 눈곱만큼도 안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더 이상 어수룩하지 않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여러 상황들 앞에 위기경제의 대안 제시 능력과 이를 설득할 수 있는 실력, 그리고 총체적 개혁의지도 볼 것이다. 피폐한 민생의 개혁 요구와 민초의 고통도 주시할 것이며, 기득권들의 기세와 갈라치기, 분열공작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봄 두 번의 선거에서, 확신에 찬 투표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어 어떤 선택을 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서로의 진영에 대한 불신과 혐오, 비난과 흑색 소문이 난무했던 선거 현장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왜 이런 선택밖에 할 수 없는가?’라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은 이도 많았다는 얘기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는 없을 수 없겠지만, 솔직히 완벽히 만족하고 투표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투표를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예컨대 ‘개중에서 덜 나쁜 사람을 뽑는 행위’ 라고들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필자 역시 자괴감이 든다. ‘내가 하는 투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좌절감이 머리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투표를 포기하기도 한다. ‘투표 포기도 하나의 정치 행위다’라고 위안하면서.
재미없는 이야기를 꺼낸 김에 하나 더. 검수완박, 민주당 주도의 일명 ‘검찰정상화법안’이다. 당시 온 나라가 떠들썩하며 사법기관인 검찰과 입법기관인 국회가 근본적으로 대치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본디 대한민국 검찰은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독점하면서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무소불위의 권한과 권력을 유지해 왔다. 이승만 정권에서의 정적 제거 조력자, 박정희 정권의 독재 권력 추앙과 간첩 조작, 전두환·노태우 군사정부의 고문사건과 조작 은폐, 김영삼 정권의 죽어가는 권력 깃털 뽑기 사례 등이 그렇다.
역대 우리 정권과 정치 검찰의 오욕의 역사,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검찰의 무소불위, 즉, 대한민국 역사에서 검찰의 역할과 위상 변화를 정권 흐름에 맞춰 보여 주었던 거다.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게 대한민국 검찰 권력의 역사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검찰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무소불위 권한이다. 특정 정치 세력을 죽이는 일, 특정 기업을 망하게 하는 일, 노동조합을 무너뜨리는 일, 집회와 시위를 하는 시민을 가두는 일 등등. 검찰은 합법이라는 미명 아래 이 같은 일을 자행해왔다. 대형 비리 사건에 대한 특수수사를 전담하면서 정치ㆍ경제ㆍ사회 영역의 주요 인사나 기업 또는 단체가 관련된 주요 정보도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검찰에 있을 정도다.
검사동일체, 최고의 엘리트 집단, 우리 사회 최고의 권력자 검찰은 스스로를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 집단으로 부각시켰다. 또 이런 엘리트 순혈주의는 패거리 담합 문화로 변질되기도 했다. 국민들에겐 가혹하고 검사들에게만 관대한 특유의 정치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영원하다는 게 일반 정설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한 검찰개혁은 노무현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논의가 이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자유와 공정, 정의와 상식이 상당 부분 발전했다.
그러나 검사들의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검찰은 시대정신과 역행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권력 집단으로, 국민들이 불신하는 국가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 독점이 왜 사법개혁의 중요한 단초가 되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즉 시기적으로는 좀 문제가 있었지만 지난 5월초 국회 본회의를 통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인 것이다.
검찰이 독점했던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 참사 등 6대 범죄가 부패와 경제 수사로 한정되었다.
다시 말해서 검찰공화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정치검찰을 국민의 검찰도 되돌려 놓아야 한다.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찰 권력을 견제할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지금까지 검찰은 수사와 기소라는 권한을 아무런 제한 없이 쓸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마음껏 써왔다. 나아가 검찰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면서 정의하는 권력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윤석열정부의 ‘검찰공화국’ 노골화 전략이다. 대통령 실을 비롯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이 과도하게 중용되고 있다. 즉 검찰 출신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는 윤석열정부 요직에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을 높을지라도, 다른 의견이 묵살될 가능성이 더 크다.
또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기 어렵게 될 우려도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와 법조계마저 ‘비정상 인사’라는 평이 많다. 그런 즉 ‘정치검찰’에서 이례적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강호에 검사 말고 유능한 사람이 그리 없다는 말인가.
따라서 만약 검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검찰을 이용해 집권과 정권 유지를 하려는 권력층과 그에 호응해 충성을 맹세하고 반대급부를 얻어내려는 검찰이 쥐락펴락하는 형국이 계속될 것이다.
한편 우리는 어쩌면 법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법 없이도 살 시민들에게 법의 올가미를 던지는 것은 검찰국가의 표징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권력은 법 아닌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정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법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래저래 우리는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늘 가슴 뛰는 삶과 설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도 정답이 없는 세상을 살면서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힘겹기만 하다. 녹음 짙어 가는 이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씁쓰레하고 분실된 마음을 달래려면 입이 호강해야 하는 법. 시원한 막걸리 한 병을 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