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대통령과 막걸리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둘러 앉아 막걸리를 사발로 마시는 장면은 참으로 서민적이고 정겹다. 막걸리를 마시는 주인공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어떨까. 국민들에게 우리의 대통령이 참으로 서민적이고 소탈하다는 느낌을 줄 것은 분명하다.
특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통령이 농부들과 어울려서 막걸리를 마신다면 단박에 이미지가 바뀔 것은 뻔하다. 왜냐 하면 막걸리는 서민적인 술이기 때문이다. 서민으로 살다 임금이 된 철종이 궁안의 미주(美酒)를 마다하고, 오지항아리에서 빚은 막걸리만을 찾아 마셨던 것처럼 반귀족적(反貴族的)인 술이 막걸리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면 독제자란 이미지도 있겠지만 필자는 경제부흥과 농부들과 어울려 격의 없이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막걸리 이야기는 부산 금정산성막걸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순리일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 이전 부산군수사령관 시절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밀주였던 금정산성막걸리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 후로 대통령이 되고 나서 초두 순시차 부산을 찾았을 때 박 대통령은 금정산성막걸리가 생각나서 이를 찾자, 당시 부산 시장이던 박영수 시장은 ‘금정산성막걸리’가 밀주여서 생산이 안 된다고 했다.
당시 시·군에는 1개의 막걸리양조장만 허가 하던 시절이라 중복하여 허가가 힘들다는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박 전 대통령은 막걸리를 합법적으로 제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이 같은 지시로 나온 것이 대통령령(제9444호)이다.
이 영으로 1979년 ‘금정산성막걸리’는 민속주 1호로 허가 받은 것이다. 이렇게 양성화된 금정산성막걸리는 주민들의 참여로 1979년 유한회사로 ‘금정산성 토산주’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1999년 현대의 고 정주영 회장이 북한을 방북하였는데, 고 김정일 위원장이 정 회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마시던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2000년에 현대 측이 소떼를 보낼 때 능곡막걸리 배다리막걸리를 북한으로 막걸리를 보낸 것. 남북정상회담 때는 만찬용 술로 쓰일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총 3번, 60말의 막걸리를 보냈던 것인데 이 때문인가 당시 내냉했던 남북한의 관계가 온화한 기류로 바뀌었다. 막걸리의 덕일 수도 있다.
고 김정일 위원장이 정 회장에게 부탁한 술이 바로 배다리 막걸리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배다리 막걸리와의 인연은 1966년 어느 한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막걸리를 즐기던 박정희 전대통령은 당시 김현욱 서울시장과 고양시 소재 한양골프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목이 컬컬함을 느끼던 박대통령은 인근에 있던 주점에 들렀다. 박대통령이 허름한 술집(실비옥)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신 술이 바로 능곡양조장(대표 박관원)에서 빚은 배다리 막걸리였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어디 막걸리냐?”고 물었고, 주인은 “능곡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가져 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후로 실비옥은 대통령이 다녀간 집이라는 유명세를 치렀고 이러한 인연으로 인해 능곡 양조장에서 제조한 막걸리(현, 고양 쌀 막걸리)는 1966년부터 1979년까지 청와대에 지속적으로 납품하게 되었다. 박대통령이 서거하던 그날도 납품했었다고 한다.
<이상 朴寬遠 지음 ‘傳統酒造百年史’ 참조>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5월 21일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그 고장의 명물이라며 대접받은 대강 막걸리를 “참 맛있다”며 여섯 잔이나 연거푸 마셨다.
그 때의 막걸리가 담양 대강양조장(대표 조재구)이 빚은 ‘검은콩 막걸리’다. 이후 이 막걸리는 청와대 만찬주로 간택되어 크고 작은 행사의 건배주로 사용되었다.
이 같은 노무현의 막걸리에 대한 애정에 감사의 뜻으로 대강막걸리 측은 퇴임식 날 봉하마을로 막걸리 2000병을 보냈고, 얼마 후 노 전 대통령은 조 사장에게 답례로 인삼을 선물했다고 한다.
전임 대통령이 보내준 귀한 선물을 영원히 보관할 방법을 고민한 조재구 사장은 인삼주를 담갔다. 이 인삼주 2병은 지금도 양조장 사무실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는 막걸리 국제홍보팀 팀장”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때마침 막걸리 붐이 일어나 정부에서도 적극 지원하는 참이었다. 그는 막걸리뿐만 아니라 폭탄주도 자주 활용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전통주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류는 통제의 대상이었지 육성은 대상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전통주 지원이 정책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하면서 “이제 주민들과 함께 농사도 짓고, 막걸리잔도 나누고, 경로당도 방문하고, 잘 어울리면서 살아보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이 어느 막걸리를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르긴 해도 막걸리 보다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쌀이 남아돌면 정부는 막걸리 마시기를 권장하면 된다. 막걸리만큼 쌀 소비가 많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막걸리를 많이 마시는 것이 농민을 돕는 지름길이다.
<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