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1)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1)

 

 

 

남태우 교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종교의식을 치르고 신들을 찬양하며 인생을 논했다. 포도주는 단순한 음료수가 아니라 고급문화로서 자리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포도주가 생활 속에 자리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주하거나 식민지로 개척한 땅에서도 포도나무를 심게 되었다.

 

그리스의 포도재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으로 인해 더욱 확산되었는데 전한(前漢)시대의 중국에까지 포도주가 전파되기도 했다. 그리스인에 의해 로마에 전파된 포도재배 기술은 ‘팍스 로마나’를 위해 군대가 주둔한 지역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로마인들은 굉장한 포도주 애호가들로서 한때 이탈리아반도 내에 포도재배단지의 확대로 곡물을 속주(屬州)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로마군은 오늘날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북아프리카 등을 점령하고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주를 생산하였다. 점령지에서 포도재배는 군단 병사들에게 중요한 업무이기도 했다.

 

재배지역은 주로 강의 계곡이었는데 프랑스에는 아직도 포도재배의 중심지로 남아 있다. 그들이 강의 계곡을 선택한 것은 계곡의 경사면은 햇볕을 잘 받고 관개가 편리한 점, 운반을 위해서는 육로보다는 강이 유리한 점, 강둑에 있는 숲을 제거하여 적군의 게릴라전이나 잠복을 방지하는 군사적 목적 때문이었다고 한다. 포도주 문화는 로마시대에 주둔 군사들의 병영을 중심으로 만개했는데 독일의 스페이어(Speyer) 지방에서 발견된 기원후 325년에 만들어진 로마시대의 유리 술병을 보면 오늘날의 형태와 거의 비슷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오늘날 유럽의 포도산지 대부분은 로마시대인 기원후 1-5세기에 형성된 것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후 포도원은 수세기 동안 성당과 수도원에 의해 관리되었다. 당시 모든 학문의 중심지였던 수도원의 수도사들에 의한 포도재배기술의 연구는 포도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기독교와 포도주는 지난 2000년 동안 애증이 교차하면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구약성경에는 노아가 대홍수 이후 포도농사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예수와 12제자의 ‘최후의 만찬(la Cène)’에서 포도주는 빵과 더불어 성물로 제공되었으며 성서에서는 포도원을 귀중한 곳으로 언급하고 있다. 기독교가 전파됨에 따라 포도주문화도 확산되었다.

지금도 성당에서는 미사 때 굽이 달린 포도주잔(聖杯: chalice)을 쓰는데 이것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형태를 차용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포도주잔들은 반드시 굽이 달린 잔을 사용하는 데 와인의 향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종교의식에 쓰이던 관습이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포도주의 향기를 보호하는 데는 잔의 굽은 아무런 연관이 없지 않은가.1

 

(Dionysus in His Boat/ Exequias)

아름다운 잔과 세련된 병은 술자리의 품격을 높인다.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 아티카 지방에서 활동했던 도화가(陶畵家) 엑세키아스(Exequias)가 취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술잔을 만들었다. ‘킬릭스(kylix)’라고 불리는 술잔의 안쪽에 그는 포도넝쿨 뒤덮인 돛단배 위에 술잔 들고 앉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그려 넣었다. 돛단배 주변 바다에는 돌고래들이 헤엄친다.

 

해적에게 납치당한 디오니소스가 신통력을 부려 돛대에서 포도넝쿨이 솟아나게 하고 노를 뱀으로 변하게 하자 겁먹은 해적들이 모두 미쳐 바다로 뛰어들어 돌고래가 됐다는 그리스 신화의 모티프를 차용한 것이다. 항아리의 배경에 자연색만 남겨두고 인물과 세부를 검게 그리는 흑색상(黑色像) 기법의 대가였던 엑세키아스(Exekias)는 디오니소스와 배, 돛대, 돌고래를 모두 검게 표현했다. 이 작품은 잔에 술을 따를 때 완성된다. 신화에 따르면 주변 바다에 술이 범람해 배가 온통 술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Dionysos Sailing/ Exekias

 

우선 도자기는 주로 2가지 형식을 만들었는데, 초기에는 흑색상 기법이라고 해서 주황색 배경에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인물들을 그린 양식이다. <선상의 디오니소스>라는 바로 위의 작품처럼 이렇게 물고기와 사람은 검정색으로 묘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후반에는 또 다른 유행이 생기면서 이와 정반대로 적색상 기법이 등장하면서 과거와는 정반대로 작품을 그리게 된다.

 

위 그림은 기원전 6세기 중엽,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술잔(Kylix)’이다. 독일의 뮌헨 고대박물관에 소장 중인 이 작품은 붉은 바탕에 검은 그림이 새겨진 흑회색 도자기로, ‘엑세키아스(Exekias)’라는 서명이 남아있어 누가 만들고 장식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넓은 술잔 안쪽에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일화가 보인다. 줄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돛이 부풀었고 신의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음에도 배 주변엔 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

 

대신 바다에는 돌고래 떼가 헤엄치고 있고, 돛대 뒤로는 커다란 포도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미동조차 없는 배 위에서 이 광경을 태연하게 지켜보는 신의 모습. 바다 한가운데 있는 술의 신이라니 어떤 장면을 그린 것일까? 젊은 디오니소스와 마주친 해적들은 고귀해 보이는 이 청년에게 몸값을 뜯어내거나 최소한 이집트에 노예로 넘길 요량으로 원하는 곳까지 태워준다고 속여 선상 납치극을 벌인다.

바다 한가운데 이르자 해적들은 본심을 드러냈고, 디오니소스는 신의 권능으로 배를 멈추게 했다. 달콤한 포도주 냄새가 진동함과 동시에 포도 넝쿨이 자라나 배를 뒤덮었고, 신의 주변에서 맹수들이 나타나 해적들을 위협했다. 놀라 도망치던 이들은 바다로 뛰어들었고 신은 이들을 돌고래로 만들어버렸다.

 

검은색과 흰색으로 그려진 이 화면은 이러한 서사를 담고 있다. 적절한 여백과 구도는 조형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고, 간결한 선과 도형이 장식미를 뽐낸다. 아테네 도기 화공 엑세키아스의 능숙한 솜씨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이 술잔의 주인은 술을 마실 때마다 보이는 신의 권능을 되새기며 취기가 불러일으키는 흥에 젖어들었을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신도들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단순한 음주(飮酒)가 아닌 신과 소통하는 의식이 된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디오니소스 컵(Dionysos Cup)

 

‘디오니소스 컵(Dionysos Cup)’은 고대 그리스의 가장 잘 알려진 항아리 그림, 즉 술잔인 ‘킬릭스(kylix)’의 현대명이다. 도예가이자 항아리 화가 엑세키아스(Exekias)가 기원전 530년경에 제작한 음료 용기(drinking vessel)는 가장 잘 알려진 골동품 용기 중 하나이며,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훌륭하고 귀중한 것 중 하나이다.

 

인테리어는 디오니소스(Dionysus)의 묘사를 보여주는데, 와인의 신이며, 흰 돛을 휘두르는 배에 기대고 있다. 포도 덩굴은 돛대를 기어 올라가고 돌고래는 배 주위에서 수영하고 있다. 이 그림은 신의 이야기로 잘 알려진 신화를 생각나게 한다. 디오니소스는 해적에 의해 체포되어 배로 이륙했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신이 남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자 공포에 사로 잡혀 바다로 뛰어들었고 디오니소스에 의해 돌고래로 변했다.

 

Dionysos Sailing/ Exekias

 

이 선박에서 마신 사람은 드문 경험을 했다. 즉, 적포도주의 바다에서 나온 신이 잠시 파도의 꼭대기에서 헤엄을 치고 술을 마신 사람의 입에 그의 배로 여행했다. 계시자는 직접적으로 신을 흡수하고 와인과 신의 효과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그릇은 단지 정교한 마시는 그릇 이상이다. 당신이 그것을 사용할 때마다, 당신은 디오니소스 신에게 조금 더 가까이 온 것이다. 엑세키아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이 만든 선박의 뛰어난 품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선박 기지의 바깥 가장자리에 있는 작업에 서명했다. ‘Exekias epoese – Exekias’가 그것을 만들었다.

 

 

화가이자 도공인 엑세키아스가 만들었다고 알려진다. 자연스러운 진흙 색깔위에 검은 색을 입혀서 인물을 나타내는 제작방식으로 ‘검은 인물의 암포라’라고 한다. 암포라(Amphora)는 그리스의 포도주 항아리 중에서 윗부분에 손잡이가 달린 것을 말한다. 그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행동들을 정지된 순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아마존의 영웅 펜테실레이아의 전투 장면을 단순하지만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영웅의 죽음과 숙명이라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전투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종말을 향해 치닫는 영웅들의 서사시가 생생하게 표현되어졌다.

페실레이아(Penthesileia)의 여왕은 그리스군과 전쟁 중이던 트로이를 돕기 위해 자신의 전사들과 전쟁에 참가하는데, 불행하게도 최고의 전사인 아킬레우스에게 패배에 죽음을 맞게 된다. 땅에 주저앉은 아마존의 여왕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아킬레우스의 팔과 다리의 팽팽한 근육, 창과 시선이 만나는 극적 긴장감, 벗겨진 투구에 묻어난, 여왕의 체념, 모든 것이 생생하게 보여 진다. 검은 인물 기법의 암포라이지만 여왕의 드러난 살은 흰색으로 칠해져 시각적 효과를 배가 시켰다. 이것은 여성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표현 방식이다.

 

항아리 그림인 <아킬레스와 펜테실레아의 전투>는 아마존 전투의 한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화에서 아마존족은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우방으로 전투에 참가한다. 그리고 아마존 여전사들을 거느리고 참전한 여왕 펜테실레아는 아킬레우스와 사투를 벌였으나 전사하게 된다. 아킬레우스는 펜테실레아를 죽인 후 투구를 벗겨보고 그 아름다움과 용맹스러움을 안타깝게 여기며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유명한 화가이자 도공이었던 엑세키아스(Exekias)의 이 작품은 당시의 상황을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보여주고 있다. 엑세키아스는 엄격하고 장중한 표현을 통해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행동들을 정지된 순간으로 묘사함으로써 긴장감이 느껴지는 격렬한 극적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장면은 아킬레스와 펜테실레아의 전투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바로 그 순간을 담고 있다.

 

검은 투구를 쓰고 있는 아킬레스의 창이 아마존 여왕의 목을 꿰뚫고 있다. 아킬레스의 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다. 펜테실레아는 창을 들고 있지만 이미 상황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하나의 점으로 그려진 그녀의 눈은 두려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스 신화 속에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예는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판도라(Pandora) 신화일 것이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가 여자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동생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를 보낸 것이 선물이 아니라 처벌의 일환이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것은 두 형제에 대해서는 천상의 불을 훔친 불경스러운 짓을 벌하기 위함이요, 인간에 대해서는 그 선물을 받은 죄를 벌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최초로 만들어진 여자의 이름은 판도라였다. 그런데 판도라는 인간에 대한 온갖 재앙을 담고 있는 상자를 열어 인간을 괴롭히는 무수한 고통, 즉 육체를 괴롭히는 것으로는 통풍‧류머티즘‧복통 등, 정신을 괴롭히는 것으로는 질투‧원한‧복수 등이 상자에서 튀어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디오니소스는 인도까지 여행을 계속하며 우연히 포도나무를 발견한다. 그는 풍요를 수호하는 요정을 거느리고 있었고 대지의 풍요로움을 주관하는 신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포도 재배법과 와인 양조법을 전파했다. 그가 낙소스 섬에 갔을 때 왕녀 아리아드네(Ariadne)를 만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여 결혼한다. 그들에게 포도밭(Ampelos), 포도나무(Staphylos), 술 마시는 사람(Oinopion) 의 세 아들이 태어난다. 주신답게 자손들 모두가 술과 관련된 것으로 탄생하였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음주문화칼럼니스트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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