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鄕都家 權 載 憲 사장
전남의 최고급 生 막걸리 ‘대대포’를 아십니까
담양의 유기농 ‘맛좋은 竹鄕쌀’로만 빚은 막걸리
합성조미료인 아스파탐 대신 비싼 토종꿀 넣어
“저는 게으른 사람, 거짓말 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합니다.”
죽향도가(竹鄕都家)의 권재헌(權載憲) 사장을 만나러 불원천리(不遠千里) 마다 않고 서울서 담양까지 달려간 기자에게 권 사장이 던진 첫 마디였다. 이 말의 의미는 그와 거의 하루를 보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다소나마 이해가 되었다.
죽향도가에서 빚고 있는 ‘대대포’ 막걸리는 지난 6월 ‘담양대나무축제’를 취재하기 위해 담양에 갔을 때 마셔본 술이었다. 그 때 일반 적인 막걸리와는 사뭇 다른 막걸리, 우선 막걸리 병부터가 사각형으로 언뜻 보면 조니워커를 닮은 모습부터가 남달랐고, 맛 또한 괜찮았다. 기회가 닿으면 이술을 빚는 이를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주위에서 죽향도가를 강추하는 바람에 담양으로 달려 간 것이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마중 나온 권 사장은 술 배달 나갔다가 그 대로 온 듯, 술 배달 냉동트럭을 몰고 나왔다. 첫 인상이 인심 좋은 이웃집 대머리 아저씨라고나 할까. 춘추를 물어보니 올해 63살이란다.
권 사장은 때(점심)가 되었으니 밥부터 먹고 보잔다. 술도가부터 들러 보자고 하니 천천히 둘러봐도 된다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좋은 기사 거리였다.
죽향도가의 ‘대대포’가 호남지방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2010년 농식품부가 주최한 ‘남아공 월드컵 16강 대표 막걸리 선발대회’에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2011년 남도(광주·전남·제주)전통주 선발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금년에도 ‘대대포 막걸리’가 남도 전통주 품평회에서 최고 전통주로 선정,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품평회는 남도지역 광주, 전남, 제주를 대표하는 업체들이 8개 주종별로 치열한 경합을 벌였으며, 대대포 막걸리는 생막걸리 분야를 비롯한 전통주 분야에서 최고 평가를 받아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따라서 ‘대대포’ 막걸리는 ‘2014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 전라남도 대표로 출품하게 된다.
‘대대포’ 남도 전통주 선발대회에서 대상 수상
‘담양 대대포 막걸리’의 신상명세서를 살펴보자. 대대포는 BLUE RED GREEN 등 세 종류가 있으며 앞으로 GOLD도 생산 한다고 한다. 대대포는 생탁주(6도)로 750ml 네모진 용기에 담았다. 국내산 유기농과 무농약 쌀 100%를 사용한다. 토종벌꿀, 갈대뿌리, 댓잎, 올리고당을 적당량 첨가했고, 다른 일반 막걸리에 비해 두세 배 이상 발효 한다.
적절한 COST를 유지하려면 합성조미료인 아스파탐을 첨가하는 것이 보통인데 대대포에는 아스파담 대신 가격이 비싼 토종꿀을 넣는 것에 대해 권 사장은 “가급적 자연 친화적이고 맛있는 술을 빚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죽향도가의 막걸리가 ‘대대포’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순천만의 대대포와 무관치 않다. 순천만은 갈대숲의 장관을 볼 수 있는 세계 최대 연안습지로, 대대포는 거기 자리한 포구 이름이다.
이 포구에는 갈대숲과 더불어 수많은 철새들이 찾는 곳. 그래서 이곳의 쌀농사에는 농약을 치지 않고 100% 유기농으로만 농사를 짓는다.
권 사장은 처음에 이곳의 유기농 쌀을 구입해서 막걸리를 빚었다. 그러다가 이곳에 갈대가 지천인 것에 착한하여 갈대뿌리도 첨가했다. 갈대뿌리는 동의보감에서 노근(盧根)이라고 하는데 몸속에 열을 없애고, 중금속 해독작용, 이뇨작용, 숙취해소 등에 효과적이며 맛은 단 것이 특징이다.
“순천만 간척지 유기농 쌀을 원료로 했기 때문에 ‘대대포막걸리’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여기에는 왕대포, 대나무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담양에서 유기농 쌀을 구하기가 어려워 순천만의 쌀을 사용했습니다만 요즘은 담양에서도 유기농 쌀이 나와 연간 담양쌀 10톤 정도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공장 창고에는 금성농협에서 가공된 최고가의 ‘맛좋은 竹鄕쌀’ 포대가 그득하다. 영산강 시원의 깨끗한 물과 담양 유기농 쌀을 원료로 사용해 쌀의 아밀로스(amylose)를 최적화시켰으니 술맛이 나쁠 수 있겠는가.
대대포 막걸리는 막걸리 특유의 텁텁함과 시큼함은 줄고 청량감과 감칠맛이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값 비산 원료에 숙성 기간도 여타 막걸리에 비해 배나 기니 판매가격 역시 다른 막걸리에 비해 비싸다. 그래도 생산이 달릴 만큼 잘 팔린다.
이는 한 번 대대포를 먹어 본 사람들은 다른 막걸리에 손이 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담양군 인근에서도 주문이 오면 마다 않고 배달을 한다고 한다. 배달은 권 사장 뿐 아니라 부인도 나서서 일을 돕는다.
순천만 대대포에서 따온 이름이 ‘대대포’
권재헌 사장은 술과는 거리가 먼 섬유공학(단국대)을 전공했다. 졸업하고 처음에는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당시 공무원들 월급이 10만원 정도였는데 한 달에 100원 정도 수입이 생겼지만 장사로 평생을 보내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잡은 직장이 광주시에 위치한 옥천여상에서 국민윤리를 담당하는 교사가 됐다.
이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아 한 2년 만에 직장을 옮긴 곳이 전주에 있는 전국화물공제조합 전북지부였다. 이곳에서 보상과장 업무를 10여 년간 담당하면서 나름대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많이 발굴하여 사고 방지에도 힘을 기울였다고 권 사장은 술회(述懷)한다.
90년에 공제조합을 그만둔 것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가입인 양조장을 운영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도 구례읍에 가면 1932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막걸리를 만들어오고 있는 ‘구례주조장’이 있다. 권 사장은 이 주조장 창업주의 손자인 것이다. 당시만 해도 구레주조장은 인근에서 주세징수율 1위를 차지할 만큼 잘 나가는 주조장이었다.
주조장을 운영 하는 한편 갈비집도 운영 하는 등 사업을 활발히 펼친 결과 돈도 꽤 벌었다. 그런데 구례주조공사인 양조장 통폐합 조치로 여러 양조장들이 통합한 주조장이었다. 그 만큼 간섭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주인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기 십상. 그래서 할아버지 때부터 운영해 오던 구례주조장에서 손을 뗐다.
3대에 걸쳐 가업으로 이어오던 구례주조장에서 손을 떼다
‘도가(都家)’란 동업하는 장사꾼들이 모여서 계(契)나 장사 따위에 관한 의논을 하는 집, 또는 어떤 물건을 만들어 도매로 파는 집을 말한다는 것이 사전적 의미다. 그리고 술을 만들어 도매로 파는 집은 ‘술도가’라고 한다.
권 사장이 상호를 ‘죽향도가(竹鄕都家)’ 한 것 역시 이러한 뜻을 살린 것이란다.
권 사장은 구례주조장에서 손을 떼고 1999년 겨울, 현재의 자리에 있던 ‘월산합동주조장’을 인수하게 된다. 주조장을 인수 한 후 상호를 대나무의 고향이란 뜻이 담긴 ‘죽향도가’라고 개명했다.
1990년대 말에 ‘살균막걸리’가 등장했다. 살균막걸리는 발효가 진행되지 않도록 효모를 고온으로 처리해서 죽인 것을 말한다. 생막걸리에 비해 청량감이나 맛이 여러 가지로 떨어지지만 오래 보관 할 수 있어 유통측면에서는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살균막걸리가 등장하자 생막걸리의 소비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권 사장은 “막걸리 한 병(700∼800㎖)에는 700억∼800억 개의 유산균과 항암물질들이 함유돼 일반 요구르트(65㎖) 100∼120병 정도와 맞먹을 정도로 건강에 좋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살균막걸리는 막걸리가 아닙니다. 너도나도 살균막걸리를 만들었지만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생막걸리를 고급화하여 살균막걸리를 이겨보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매일 원료의 혼합비율을 달리해 보고, 물도 바꿔가면서 술맛을 비교하면서 기록으로 남겼다. 권 사장은 구례주조장에서 일하면서 그 동안 관찰하고 경험을 쌓은 노하우를 갖고 담양에 와서 새로운 술을 개발하려 했지만 좋은 술을 빚는 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1990년 중반부터 게르마늄이 함유된 물로도 빚어보고 콩, 수수, 조, 보리 등 모든 곡식으로 만들어보았지요, 게르마늄이 함유된물로 막걸리를 빚어놓으니 술맛이 확연히 달라지는걸 느끼게 되더군요, 그 술을 드셨던 선친의 친구 분의 만성 위장병이 고쳐지는 것도 경험 했지요. 그러다 칵테일이라는 술도 있는데 막걸리도 칼라풀하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한약재도 넣고 녹차 등을 넣어서 무지개색의 칼라 막걸리를 만들어 대리점들을 돌아다니며 판매하려 했으나 미친놈 소리만 듣고 포기하였지요. 2000여만 원의 비용만 날렸지요, 너무 앞서간 거죠,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요”
그렇지만 권 사장은 살균막걸리와 차별되는 생막걸리의 고급화를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거듭되는 실패를 무릅쓰고 나서 2004년 4월에 처음 출신 한 막걸리가 담양의 생댓잎가루를 첨가한 ‘죽엽탁주’였다.
술에 대한 반응은 아주 좋았다. 어떤 이들은 술에서 향기가 난다고 칭찬하기도 했지만 막걸리에서 왜 특이한 향기가 나는 것인가는 명확히 설명을 못했다고 했단다. 권 사장은 그 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좋은 술을 만드는 원칙은 있습니다. 좋은 원료에 정성을 들이면 좋은 술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술을 빚을 때 적정 온도관리를 잘 해줘야 합니다.”
“술이 잘되면 폐수 집수장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그렇게 죽엽탁주는 만들어졌습니다”
2004년 4월 처음 출시 한 막걸리가 ‘죽엽탁주’였다
죽향도가는 아주 기분 좋은 첫걸음을 내딛었다. 판매량도 쑥쑥 늘었다. 이어서 2009년 11월 죽향도가에서는 ‘대대포막걸리’를 출시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대포막걸리는 순천만 갈대밭에 인근한 대대포구의 간척지 유기농 쌀을 원료로 한 생막걸리였다.
‘대대포막걸리’는 그동안 크고 작은 상을 휩쓸면서 생막걸리업계의 강자로 부상한다. 이제 ‘대대포’의 위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막걸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술도 좋지만 권 사장의 타고난 친화력 때문은 아닐까.
죽향도가에서는 ‘봉하막걸리’를 위탁 생산하고 있다. 봉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이다.
“노 전 대통령은 막걸리를 아주 좋아하셨는데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에 내려가 사시면서 근처의 상동주조장의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가 그 막걸리를 마셔봤는데 별로였습니다.”
“그 무렵 노 전 대통령께서 여러 지역의 막걸리를 시식하셨는데 우리 죽향도가의 막걸리를 지목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 죽향도가에서 막걸리를 만들어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술 이름은 ‘애담’으로 했습니다. 사랑을 담는다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습니다. 용기도 만들고,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권 사장은 바로 술 원료와 용기를 폐기해 버렸다. 그렇지만 애담을 만들어 보내지는 못하지만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아 다른 방안을 찾아냈다. 원료는 봉하마을에서 생산되는 쌀과 호남의 물로 제조하고 막걸리는 죽향도가에서 빚기로 한 것이다. 원료와 기술의 만남이고 영호남의 만남이고 화합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봉하막걸리’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약속 한 ‘애담’은 생산도 못하고
2년 전에 새로 지었다는 공장은 깨끗했다. 1층은 막걸리를 빚고 저장하는 공간이고 2층 136평은 살림집이 한켠을 차지하고 나머지 공간은 사무실과 권 사장의 개인공간이다. 개인 공간이란 곳이 그야 말로 희한하다.
각종 헬스기구, 크래식음악을 전문가 수준에서 감상할 수 있는 10여개의 대형 스피커, 클래식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북, 그리고 바닥에는 요가를 할 수 있는 매트리스가 놓여 있다. 여유 공간에는 편히 대화하고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등이 놓여 있는 방에 아무리 찾아봐도 골프가방은 없었다.
기자는 이 방에서 명곡들을 들으며 권 사장과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참 희한 한 방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소매점에 배달을 시작합니다. 대개의 일과는 오전 중에 끝나기 때문에 오후에는 여기서 음악도 듣고 운동도 하고 이웃사람들과 술도 마십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담양 , 광주의 예술을 하는 동생들과 북을 치며 판소리도 합니다.”
-운동을 좋아하시나 봐요.
“운동은 다 좋아합니다. 패러글라이더, 스쿠버다이빙, 사냥 등 두루 좋아하는데 골프는 어쩐지 부르주아 냄새가 나서 안 합니다. 술은 아주 좋아합니다. 양으로도 누구한테 져본 적이 없습니다. 요즘은 하루 막걸리 두세 병정도 마십니다.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막걸리보다 더 좋은 술은 없지요. 막걸리를 농주(農酒)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담양 사람들은 권 사장을 가리켜 자청 타청 ‘또라이’ 라고 부른다고 한다. 욕으로 부르는 것은 결코 아니고 그를 부르는 애칭이다. 남 몰래 독거노인을 보살피거나 양로원을 방문하여 도움을 주기도 하고 장학금을 내놓기도 한다. 친구들이 화투판을 벌리면 옆에서 구경만 하고 판이 끝나면 데리고 나가 술을 사는 것을 권 사장이 도맡아 한다. 이러니 또라이 소리를 듣는다지만 권 사장은 특공무술을 연마한 유단자급 무술인 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있다.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호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권 사장도 담양에서는 여기저기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담양에서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