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노래, 불의 노래

김상돈의 酒馬看山

 

물의 노래, 불의 노래

 

물과 불의 오묘한 조화로 빚어진 술은 원래 신의 음식이었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처럼 술도 신의 영역에서 땅으로 내려와 물이 되고 불이 된다. 물의 기운으로 불을 다스리면 인간에게 이로운 기운을 주고, 불의 기운이 물을 태우면 그야말로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술이지만 불이 담긴 물의 역할을 할 때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된다. 누에가 뽕을 먹고 비단실을 뽑아내듯이 술도 인간 내면의 아름다운 서정을 표출하는 좋은 도구가 되는 것이다. 서먹하고 어색한 자리들도 화기애애하게 하는 데 지름길이 된다. 중요한 상담이나 국가적 대사를 풀어가는 데도 술만 한 윤활유가 없다. 역사에서 술로써 물의 노래를 부른 이는 크게 성공한다. 특히 시를 비롯한 예술의 영역이 두드러진다.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술이 뇌의 전두엽 기능 즉 이성적 자아를 컨트롤하는 기능을 느슨하게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집을 지키는 세퍼드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외부로 부터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묘약인 셈이다. 그래서 이성적 자아를 감성이나 감각으로 되매김하면서 우뇌의 창조적 사고를 극대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순기능이 물 속의 불로 나타날 때는 반대의 양상이 벌어진다. 술의 불기운이 차오르면 이성이 아예 마비되면서 마음 속 찌꺼기들이 여과없이 터져 나오고 증폭되게 된다. 별 일 아닌 것도 시비거리가 된다. 다투지 않을 일도 다투게 되고 이성을 잃다 보니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된다. 멀리 보지 않더라도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우리 주변에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난 자취를 반면교사 삼아 그릇된 길은 걷지 말아야 하지만 인간이니 어쩌랴?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이를 다스리지 못하는 게 또한 인간이다.

그렇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술주정꾼은 말한다. 술을 왜 마시냐는 어린 왕자의 질문에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 라고 답한다. 그 부끄러움은 다름 아닌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다. 술주정꾼조차 술을 마셔서 스스로가 인간답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물과 불의 노래에 대해 무엇이 바람직한가는 재론할 가치조차 없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도 술로써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일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좋은 술을 좋게 마시고, 좋은 길을 걸어야 좋지 않겠는가? 불의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 뒤로 사라질 것이 아니라 물의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 앞에서 스폿라이트를 받는 것이 더 즐겁고 보람있는 일일 것이다.

중국 고대의 시인들 사이에서는 “좋은 술을 마셔야 좋은 시가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두들 술을 즐겼다. 『국선생전』을 쓴 고려시대의 이규보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시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미중수교를 빛낸 마오타이주 관련 일화도 재미있다. 중국 측에서는 건배주로 이 술을 선택했는데, 사전 조사를 갔던 헨리 키신저 일행은 술이 워낙 독해 대통령에게 마시지 말고 입만 축이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닉슨은 만찬장에서 주은래의 건배제의에 얼굴을 잠깐 찡그리다가 단숨에 들이켰고, 분위기가 더욱 화기애애해 졌음은 물론이다. 죽의 장벽이 걷히게 되는 순간이다. 이로써 중국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마오타이 주도 덩달아 세계 명주의 대열에 오르게 된다.

최근 우리 군 고위장성이 술이 과한 나머지 행동의 절도를 잃었다가 군문을 떠난 일도 있었다.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는 술로써 망신살이 뻗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유명인사들이다 보니 더욱 주목을 받아서 이겠지만.

앞으로 물의 노래와 불의 노래를 통해 술에 얽힌 씨줄과 날줄을 가늠해 보고,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글쓴이 김상돈: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 40년을 살았고, 언론계와 국회 당, 공기업 임원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사단법인 4월회 사무총장과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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