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받지 않으려거든, 우리 마을로 들어서지 말라

글·사진 허시명(막걸리학교 교장)

 

술을 받지 않으려거든, 우리 마을로 들어서지 말라

구이저우 성 서강 천호 묘족마을

 

 

천호묘족마을의 야경, 하늘에 별들이 다 내려와있는 듯하다
신비로운 마을을 찾아갔다. 구이저우 성 서강 천호 묘족마을이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 구성의 9할이 넘는 한족 외에는 모두 소수민족이다. 조선족도 소수민족이고, 묘족도 소수민족이다. 묘족은 참 묘하다. 한자로 묘(苗)자는 풀 초(艹)자에 밭 전(田)이니, 밭에 난 풀이다. 그래서 싹이나 옮겨 심은 벼를 뜻하기도 한다. 농사를 짓는 순한 민족의 기호를 지닌 듯하지만, 고대로 올라가면 싸움 잘하는 민족이었다고 한다. 한국 일본에도 전설적인 인물로 전해오는 치우 왕이 그들의 조상이라고 한다. 싸움을 마다지 않았는데, 한족과의 중원 싸움에서 밀려 그 후손들이 뿔뿔이 흩어져 변방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묘족들을 바라보니, 풀 초(艹)자가 머리에 난 뿔처럼 보였다. 실제 묘족 마을의 여자들이 연희를 할 때면 머리에 은빛 장신구를 달아있는데 그게 소뿔 형상이었고, 풀 초(艹)자 형상이어서, 내게 그런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을 입구에서 손님들을 술로 환영하다서강 묘족마을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우선 마을 입구에서 차량을 통제한다. 이미 관광지로 변해서 입장료를 내야하지만, 그것만이 관문은 아니다. 오전 10시가 넘으면 마을 사람들이 마을 입구로 나온다. 남자들은 대나무로 만든 생황을 불고, 여자들은 무겁게는 15kg까지 나간다는 은장신구를 목과 전통복장 위에 걸고서 환영 행사를 한다. 기러기의 삼각편대처럼 대열을 짓고서 느리게 바람에 날리듯이 손을 흔들고 제자리걸음을 걷듯이 춤을 추면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술을 권한다. 마을 원로 한분이 맨 앞에서 대접으로 술을 대접하고, 여자들은 깊고 긴 검은 뿔잔에 술을 담아 권한다. 수수로 만든 붉은 술이 아니고, 은은한 향이 도는 맑은 술이다. 구이저우 성에서 나는 마오타이 주처럼 독한 술도 아니다. 한 잔을 받아 마시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원로에게 한 잔, 세 겹으로 줄을 선 마을 여자들에게 세 번을 받아 마시고 나서는 얼굴이 화근거리고 얼떨떨했다. 술은 술이다. 마을 사람들은 환영의 뜻이라지만, 손님의 입장에서는 기선을 제압당하는 기분이다. 달아오른 기분을 한 풀 죽이려는 마을 사람들의 전략처럼 보였다.

묘족 여자들의 화려한 복장과 장신구그렇게 환영의 술을 받아 마시고 마을 입구의 큰 문으로 들어서니, 순환버스가 있었다. 이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마을이 되었다. 한국민속촌, 큰 놀이공원에 들어서는 기분과 흡사한 느낌이 들었다. 마을은 계곡 안에 있었다. 좁은 냇가를 사이에 두고, 가파른 산비탈에 집들이 새집처럼 들어서 있다. 집들은 나무로 지었는데, 한국의 가옥들과 엇비슷하게 보였다. 팔작지붕의 기와 크기는 우리의 것보다 작고 얇았다. 멀리서 본 기와는 물고기 비늘처럼 보였다. 기둥이나 목재의 굵기가 얇을 뿐이지 사찰의 건물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집들은 기본적으로 2층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기둥이 그리 굵지도 않은 데 2층집을 올리다니, 그들의 건축술이 특별해보였다. 우리의 목조건물은 궁궐이나 사찰의 건물이 아니고서는 2층으로 올라가지 않지 않는가. 그리고 2층으로 올리더라도 지붕이나 2층 구조물이 아주 무겁게 보이는데, 묘족의 건축물을 사다리를 올리는 것처럼 가볍게 보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음식점을 들어서는데 그곳에서도 문에 들어서기 전에 환영의 술잔을 받아 마셔야 했다. 여성들이 길을 막고 검은 소뿔 잔을 들고 술을 권하니 아니 받아 마실 수가 없다. 식탁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데 이번에서 3명의 여성이 술잔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술을 권했다. 단체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기도 했는데, 단체의 수장으로 여기는 이에게는 더 적극적으로 술을 권했다. 술은 한 잔에서 끝나지 않고 석 잔을 나눠서 입에다가 따르는데, 마지막 3잔째는 들이붓는다는 표현을 써야할 정도로 거침없이 술을 부었다. 나 또한 그 술을 받아 마시는데, 마치 폭포수 밑에서 물을 맞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렇게 들이붓는 술이 마오타이 같은 독주가 아니라, 쌀로 빚은 도수가 낮은 술이라는 점이다. 쌀로 된 증류주도 있고, 발효주도 있는데, 내가 마신 술은 단맛이 도는 발효주라서 그나마 편하게 연이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묘족마을의 장례 행렬조금은 폭력적으로 보이는 이 술 문화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논리적으로 추적해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을 입구에서, 식당 입구에서, 그리고 식탁에서 술을 받아 마시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든다. 묘족 마을에 오면 시계를 풀어놓고, 마음도 풀어놓아야 할 것 같다. 한없이 방종을 하여도 좋을 듯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밀집에 사는 산동네라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개의 산봉우리를 나무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천 개가 넘는 집, 그리고 그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다니노라면 내가 긴 대열을 뒤따르고 있는 개미가 된 듯하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취하긴 하되,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는 조직의 힘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마을 안을 돌아다녔다. 다시 술집을, 아니 술빚는 집을 찾기 위해서였다. 산 중턱 즈음에서 술 빚는 집을 찾았다. 집 앞에 미주방(米酒坊)이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쌀술 가게라는 뜻이다. 술은 멥쌀이나 찹쌀로 빚는데, 단맛이 강하고 알코올 도수가 낮아, 피로 회복과 의례용으로 묘족들이 빚고 있다고 했다. 미주방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에 항아리 단지가 있고, 단지 옆에 야구공처럼 생긴 누룩이 있었다. 한국의 이화주를 빚을 때 쌀가루로 오리 알처럼 둥글게 뭉쳐서 만든 누룩과 형상이 같다. 다만 쌀로 만들지 않고, 갈색이 도는 밀이나 다른 곡물을 가지고 만들었다.

 쌀술을 빚는 미주방의 화덕술은 여자가 빚었다. 묘족마을의 전통복장은 검은 옷을 입고 은장식을 단 아주머니가 화덕 앞에서 술을 빚고 있었다. 중앙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창 쪽으로 식탁이 있고, 안쪽 벽면에 화덕이 있고, 그 위에 둥글고 넓적한 번철이 올려져 있다. 번철 안에 쌀을 넣어 밥을 짓고, 증류용 목통을 얹고 증류도 했다. 내가 본 증류기 중에서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였다. 번철 위에 치마처럼 생긴 목통을 올리고, 목통 안은 주름을 잡아 증류의 효율을 높이려 했고, 증류기 안에 냉각된 술을 받아낼 수 있는 나무 홈통이 있고, 증류기 위에 쇠로 된 번철이 또 하나 놓여 있다. 목통 위의 번철에는 찬 물을 담아 증류된 알코올을 냉각시켰다. 증류주가 내려오는 나무 홈통에 대나무를 길게 덧달았고, 그 끝에서 증류주가 떨어지는데 그 밑에는 항아리가 놓여있었다. 항아리에는 맑은 쌀 소주가 담겼다. 그 술을 미주방의 아주머니가 건네는데 이번에도 세 번에 나눠준다. 한잔을 세 번에 나눠주는 게 아니라, 세 잔을 건넨다. 세다. 그런데 그 술을 또 하마 거절할 수 없는 것은, 술을 권하는 여자의 가늘고 길게 퍼져나가는 노래 가락 때문이다. 입안에 들어가는 술이 그 노래 가락을 타고 몸 안으로 흔연히 퍼져나간다.

술 가게에 놓여있는 술단지들묘족들이 쌀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둥근 누룩수수로 빚는 고량주가 아니라, 쌀로 빚는 소주를 즐기는 묘족에게서 한족과 다르다는 어떤 자존심이 보였다. 술의 도수가 높지 않기에 많은 술을 권해도 쉽게 취하지가 않았다. 내 몸이 약간 비틀거리는 것은 이 마을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인심에 취했기 때문이었다.

미주방에서 술을 맛보고,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 정상으로 향했다. 해는 기울어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산을 덮은 집들에서 하나 둘 전등이 들어왔다. 천호나 되는 집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서로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 즐거웠을까? 누군가 침입에 들어오는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서였을까? 밭을 갈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일꾼들이 많아야 했기 때문일까? 천호 묘족마을의 산정에 서니, 기묘하게 모여 사는 묘족마을 사람들이 신기했다. 어둠이 내리고, 산을 덮은 집집마다에서 밝힌 불을 보고 있자니, 하늘에서 별들이 산에 내려와 있는 것 같은 환상에 젖어들었다.

중국을 대표하고 구이저우 성을 대표하는 술이 마오타이 주라고 하지만, 귀주에서 술을 즐기는 제일의 곳은 천호묘족마을일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끝맺고 싶다. “술을 만드는 이라면 마오타이에 갈 일이고, 술을 즐기려는 이라면 천호 묘족마을로 가라!”

음식점 앞에서 소뿔 잔으로 술을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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