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뒷모습
임재철 칼럼니스트
계절의 변화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계절, 늦가을이다. 점점 떨어지고 뒹굴고 흩어지는 晩秋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정말 그렇다. 열 달이 훌쩍 지난 시점이다. 이제 겨우 한 달 남은 한 해. 세월은 돌이킬 수 없지만 누구나 1년 중에서 무심코 너무 많이 와 버린 것을 뒤돌아본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이는 나태주시인이 쓴 ‘11월’이란 시이다.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추정을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필자를 비롯, 모두가 바로 한 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의 정감이 든다.
그런데 대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를 핑계로 대부분 도시의 삶은 계절의 순환을 잘 실감하지 못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계절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고개 들어 보면 손에 잡힐 듯 파아란 가을 하늘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가을이 깊다. 기온은 초겨울의 문턱에 가깝다. 온몸과 마음에 계절이 사무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살고 싶다고들 한다. 물론 다 그렇게 살다 가기는 힘들지만, “가을여행 멀리 가지 마라, 쓸쓸해진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문득 떠오르는 그야말로 늦가을이다. 떨구는 잎사귀에 속절없이 가는 시절들이 못내 아쉽다.
그러니까 위대했던 지난여름 무성했던 잎사귀들은 어느새 노랗고 붉게 물들어 버린 다음 떨어져 무수히 쌓이고 뒹굴고, 이 찬란한 가을의 뒷모습이 보일 때면 보나마나 겨울이 꿈틀댈 게 뻔하다는 것을 안다.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추풍낙엽 되어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처럼 차가운 거리를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잎사귀의 ‘나고 멸함이 이렇듯 허무하고 쓸쓸하다’고 온몸으로 시위를 한다.
우리 인생도 잎사귀의 일생과 다름 아니다. 만추절경(晩秋絶景)이 눈 깜짝할 새 사라지듯 말이다. 짧아서 아름다운 계절, 만산홍엽(滿山紅葉)이었던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 산도, 하늘도, 들도 곱게 피어나고 빚어졌던 가을이 지고 있는 거다. 어찌 보면 낙엽이 우수수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스산한 만추의 거리는 고독과 허무로 가득하다. 이 계절에 잠기듯 심신이 잠긴다.
누구나 잘 알 듯 가을은 언제나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스쳐 간다. 뭐가 그렇게 시간을 바짝 좇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더디 가도 좋으련만, 순식간에 가을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긴 실연의 미련만을 남긴 채 홀연히 떠나간다.
때문에 해마다 이맘때면 ‘한 잔의 술을 마시며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는 ‘흰머리 소년·소녀’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그 중에 한사람이지만 가을은 분명 그런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시인이 되어 시 한 편 읊조리게 되고 어느 곳의 가을의 자연을 거닐며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매년 가을이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노래 중의 한 곡은 아마도 고은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가을 편지>가 아닐까 싶다. 필자 역시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어 몇 번 들었지만, 고은 시인의 시 <가을편지>는 시보다는 노래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가령 이 시의 작가가 고은 시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중저음의 가수 이동원이 부른 곡을 좋아한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누구라도 좋으니 ‘그대’가 돼 달라고 애원하는 건 고은 시인 뿐만은 아닐 것이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너그러워지고 감성이 풍부 해진다. 사물과 사실들을 연민의 감정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정서적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평소 무의미하게 지나치는 것들도 가을에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바야흐로 마음 따뜻하게 덥혀줄 ‘추억과 깊은 감성’의 잔고를 가득 채워야 할 때다. 하지만 길 떠나라고 유혹하던 그 가을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오매, 단풍 들것네’ 하고 상념에 젖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풍낙엽이 거리에 그냥 나뒹굴고 있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아쉬운 가을을 부여잡고 누구나 만추의 뒷모습이나 서정을 느껴보면 좋겠다.
이토록 우리들 만추의 가슴은 여전히 뜨겁고 신비로운데,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눈만 뜨면 마치 벌집 쑤셔 놓은 듯이 나라 전체가 온통 뒤죽박죽이다. 국민 대다수가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면서 현실로 닥친 난국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국가라는 하드웨어는 이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곳으로 질주하는 아수라장이다. 즉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과 목표가 상실되어 중심축이 흔들리고 후진국형 국가의 전형적 모습들로 여기저기서 난리다.
이만하면 살만 하다고, 잘사는 선진국이 되었다고 어깨를 으쓱했지만, 강남과 포항 포스코가 물에 잠기고, 바이든이 날리고, 우리가 쏜 탄도미사일이 거꾸로 날아 우리 영토에 떨어지고, 내수 부진과 무역수지 적자에 전기차가 북미시장에서 철퇴 되고,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돈맥경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깡그리 사라진 이태원 참사 등등….
이처럼 해괴하고도 흉측한 무질서가 국가를 후퇴시키고 있다. 세상에 죽음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시쳇말로 ‘자고 나니 후진국’이 되어 버렸다. 고도성장 시기, 그래도 잘나가던 시절에는 정치가 망가지고 사회가 혼란해도 경제적 성취감은 있었다. 빠른 속도로 진전된 산업화 덕분에 더디지만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민주화의 속도를 지켜보면서 내 삶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잠재된 불평과 불만을 인내로 버텼다. 그러나 근자에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위기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를 실감한다.
한국 경제는 현재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속에 경기침체 우려가 겹치고, 금융시장마저 마비되는 복합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에 어두운 리더의 무지와 무능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가 불안하다는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깜빡거리는데 극단적인 편 가르기 식 정치 분열과 뻔뻔함으로 인해 국민의 삶이나 국가의 장래는 그들의 안중에 없다.
간혹 다른 나라의 언론을 기웃거려 보면 우리 내부가 얼마나 무지하고 철딱서니 없는 이슈에 집착하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정확하고 확연하게 실감할 수 있다. 이렇듯 국내외 상황들이 참으로 녹록치 않다. 안하무인, 무소불위, 인면수심 그리고 무지, 천박, 포악함이 더해가는 세상이 어쩌면 혹독한 추위보다 힘들지 모르겠다. 시리고 죽어가는 세상이 아프다. 분명 매섭고 차가운 이 땅의 추위가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시절도 만추를 지나 초겨울의 길목으로 접어들고 있다. 바깥 기온도 뚝 떨어져 제법 쌀쌀하다. 하루가 다르게 아랫목이 뜨뜻한 방구들이 그리워지는 때다. 계절의 변화 또한 무섭고 빠르다. 하지만 11월 중순 하늘이 파랗다. 이즈음 그리고 이어질 겨울과 세상 한파에 누구나 마음이 끝없이 미안해지고, 용서되지 않고, 끝없이 두 눈을 자주 감게 되고, 쓸쓸해지고, 끝없이 미워지고, 지겨워지고, 끝없이 거짓과 위선으로 더러워지는 세속을 이겨낼 수 있는 감성 가득한 세상과 가까운 사람들끼리 도란도란 술 한 잔기울이는 일상을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