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 취중진담
‘공짜술’ 좋아하지 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런저런 대답이 나오겠지만, 정답은 ‘공짜술’이다. 그러면 가장 마시기 힘든 술은 무엇일까. 이 역시 ‘공짜술’이 아닐까? 인터넷에 떠도는 ‘공짜술’에 대한 유머 한 토막.
한 항공기 승무원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103명의 승객이 탑승했는데 식사는 40인분밖에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의 웅성거림이 잠잠해지자 승무원은 말을 이었다.
“다른 분들을 위해 식사를 양보하는 분들께는 비행 중 내내 술을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한 시간 후에 다시 안내방송이 나왔다.
“생각을 바꾸실 의향이 있는 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아직 29인분의 식사가 남아있습니다.”
설화(說話) 중에 ‘술 나오는 샘물’이나 ‘술 나오는 우물’ 즉, ‘주천(酒泉) 설화’는 공짜술이 생기기를 바라거나 아무리 마셔도 마르지 않는 기적의 샘물을 소원하는 것이 빚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공짜로 마음껏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술꾼들의 꿈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는 모양이다. 젊은 직장인들의 음주 횟수를 조사한 결과 ‘1주일에 한 번 정도 마신다’는 응답이 전체 가운데 40%로 가장 많았다. 한 번의 술값으로는 4~5만원이 보통이었다. 재밌는 것은 술값을 내지 않으려는 속임수에 관한 고백이다. ‘급한 일이 있는 척하며 중간에 일어선다’가 가장 많은 44%였고, 그 다음으로는 ‘많이 취한 척한다’가 15%, ‘지갑이 없는 척한다’가 7%였다. 술은 좋아하지만 내 돈으로 마시기는 싫어 어떻게 하든지 공짜술을 마시려는 주당들을 애교로 봐줘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이렇게 하다간 얌체로 낙인찍혀 따돌림 당하기 일쑤니 조심해야 한다.
옛날 벼슬로 참봉(參奉·조선시대 각 관서의 종9품 관직) 자리만 차지해도 공짜술을 많이 얻어먹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러나 공짜술은 그만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공짜술을 즐겨 마시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행각이 생각난다. 몰락한 왕족의 그는 상가(喪家)를 찾아다니며 취하도록 얻어마셨다. 그래서 당시 세도가들은 그를 ‘상갓집 개’라고 불렀다. 대원군의 야망이 이뤄지던 날, 그를 비웃던 사람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역사책이 잘 알고 있다.
불가(佛家)에는 ‘백장청규(百丈淸規)’라는 것이 있다. 이 백장청규에 ‘일일부작 일일불식(日日不作 日日不食)’이 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는 말이다. 절에선 ‘울력’이라고 해서 육체노동이 수행의 한 일과로 돼 있다. 이는 공짜로 밥 먹지 말라는 뜻이다.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살판나는 계절이다. 어디 공짜술이 연말에만 있겠는가. 하지만 이틀이 멀다하고 술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것 역시 고통이다. 내 돈 안낸다고 퍼 마시다간 몸 망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또 술내는 사람 주머니 사정은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 비싼 술에 비싼 안주 맘대로 시키는 사람도 꼴불견 중 하나다.
이런 때야 말로 적당히 마시고 빠져주는 것이 신 주도(新 酒道)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고급 관료들도 연말 술자리에서 공짜술 얻어먹다가 신세망치는 일은 없어야 되지 않을까.
‘공짜를 너무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공짜를 너무 바라는 건 좋지 않다는 뜻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길거리의 ‘공짜폰’부터 무상급식 등 공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공짜술은 언젠가 그에 대한 보답이 뒤따르는 법이다. 공짜술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