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주 제조기능보유자 중원당 김영섭 대표
봄철 꽃필 무렵에 마시는 계절주 ‘청명주(淸明酒)’
향전록 바탕으로 찹쌀과 누룩 이용해 복원한 민속주
바람이 분다. 바람결에 봄이 실려 온다. 비탈진 응달에 남아 있던 잔설도 봄바람에 맥을 추지 못한다. 엄동설한에 얼어 죽은 줄만 여겼던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생기가 엿보인다. 그래서 봄이 오는 계절은 봄 처녀 만큼이나 마음이 설렌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청명(清明) 한식(寒食)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런 청명절에 생각나는 술이 바로 청명주(淸明酒)다.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인 청명․한식은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절사(節祀)라 하여 산소에 올라가 성묘를 했다. 중국에서 들어온 풍속이긴 하지만 한식날은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이 있다. 이는 아마도 산소에서 성묘를 하다가 불을 피우면 산불이 날 수 있어 산불 예방차원에서 내려오는 풍속일 것 같다.
청명(淸明)은 말 그대로 “하늘이 맑아진다”는 뜻이다. 하늘도 맑고 날씨도 따듯하니 술 담그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청명주는 청명절(淸明節)에 담그는 술로 춘주(春酒)라고도 한다.
1830년 무렵에 쓰인『농정회요(農政會要)』에, 술을 빚을 때 물의 맛이 맑고 달아야 하는데, 청명 또는 곡우 때 취한 물로 술을 빚으면 맛과 색이 좋다고 하였다. 청명절에 양자강(揚子江)의 물을 취하여 술을 빚으면 술맛과 색이 좋다고 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청명주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래된 술인 듯하다.
현재는 충청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2호 청명주 제조기능보유자 김영섭 씨(47, 중원당 대표)가 청명주의 맥을 잇고 있다. 중원당은 충주시 중앙탑면 청금로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남한강 기슭으로 옛 창동나루터다.
남한강의 윤슬이 봄 햇살에 더욱 아름다운 날 중원당을 찾았다. 지난 해 11월 18일 ‘2022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청명주’로 대통령상을 받고 나서 저간의 사정이 궁금해서다.

중원당 ‘청명주’,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 수상
-품평회에서 최고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나니 많은 변화가 있었겠죠.
“상을 받기 전에도 청명주를 찾는 분들이 많았는데 수상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전국에서 주문전화가 쇄도했지만 전부 보내드리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술을 보내 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했습니다.”
-월 생산량이 얼마나 되는데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하나요.

“현재 월 생산량이 청명주(375㎖ 주병)를 기준으로 1만병 정도 되는데요, 술이란 것이 갑자기 생산량을 늘린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특히 청명주는 술을 담그기 시작해서 발효와 숙성기까지 합치면 최소 5개월은 되어야 출하를 할 수 있는 술입니다.”
-약주술 부분에서는 대상을 받고, 탁주부분에서도 상을 받으셨죠.
“탁주부분에서 보은주(알코올 10%)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두 개의 술이 상을 받다보니 정말 바빴습니다.”
중원당 청명주가 대상을 받고 나니 여러 지역에서 총판을 하겠다고 나섰으나 공급량이 넉넉지 못해서 서울에만 지사를 설치했다고 한다.
淸明酒는 한 해 농사가 잘되길 기원하는 제주로 사용되었던 술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는 2010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우리술의 품질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년 우수 제품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국가 공인 주류 품평회이다.
탁주, 약·청주, 증류주, 과실주, 기타주류 등 총 5개 부문에서 부문별 3점을 대상·최우수상·우수상으로, 대상작 중 1점을 대통령상 수상작으로 선발 하는데 2022년에는 중원당 ‘청명주’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한마디로 2022년에는 ‘청명주’가 왕중왕으로 선발된 것이다.
품평회 수상작에는 판촉 지원, 시음행사 개최 등의 다양한 홍보활동의 기회가 주어져 전통주업계에서는 이 상을 받기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주류업계 최고의 권위자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상작품을 결정짓는데 ‘청명주’가 최고 대상을 거머쥔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한 마디로 술맛이 끝내주었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듯, 양조장 설립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모두가 좋은 술을 내는 것은 아니다. 무시할 수 없는 내공을 지닌 사람이 열성으로 술을 빚어야 명주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원당 청명주가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다소 늦은 감이 들기도 하다.

청명주는 중원당에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대로 빚고 있는 술이다. 충주에서 6대를 이어 오고 있는 김영섭 대표는 문중 비법서 <향전록(鄕傳錄)>에 기록된 방법 그대로 청명주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당시 증조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청명주가 하도 맛이 좋아 훗날 다시 담가 먹을 때 참고하기 위해 기록을 해두었다고 한다. 한글과 한문 혼용으로 기록 한 비망록이 바로 ‘향전록’이다. 이 향전록에는 청명주 담그는 비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제정된 양조법 때문에 제조를 하지 못하였으나 제조 비법만은 전수되어 명맥을 유지해 왔다.
1986년에 현 김 대표의 부친인 김영기(金榮基) 옹(작고)이 향전록을 보고 청명주를 재현해 냈다.
청명주는 원래 이름 그대로 청명에 사용하기 위해 빚던 술로 한 해 농사가 잘되길 기원하는 제주로 사용되었던 술이다. 또한 궁중에도 진상되던 귀한 술이기도 하다.

청명주, 청와대 대통령 추석선물로 선정되기도
현 김영섭 대표는 충북 무형문화재 2호로 청명주 제조기능보유자다. 식품공학을 전공했다. 집안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 청명주를 계승 발전시켜야 갰다는 맘을 먹고 대를 잇기로 한 것이 2000년 이다.
“양조장 일에 참여 하면서 열심히 술을 빚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를 찾아가 공부도 하고 연구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21년 2월에는 대한민국 주류대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2021년 9월에는 청와대 대통령 추석선물로 선정돼 22,000병이나 납품을 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여느 양조장 같았으면 공장을 확장하거나 생산규모를 늘리기도 하련만 김 대표는 충청인답게 느긋하다. 판매에 아등바등하지 않고 좋은 술만 열심히 빚겠다는 색각 때문이었을 성 싶다.
청명주 탁주는 멥쌀로 구멍 떡을 빚어 밑술을 만든다. 덧술을 찹쌀로 하는데, 덧술 시 물을 거의 첨가하지 않아 쌀 특유의 감칠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지난 해 품평회에 청명주와 함께 출품한 보은주는 탁주분야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보은주는 쌀과 찹쌀 누룩으로만 만든 10% 이양주로 6개월 동안 항아리에서 숙성 후 채주한 최고급 탁주다.

김영섭 대표는 원재료인 찹쌀, 멥쌀, 누룩(밀 함유), 정제수 외에는 일체의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2-3개월 째 숙성되고 있는 숙성실에 들어가면 50여개의 술항아리가 가득하다. 뚜껑을 꼭꼭 닫아 놓은 항아리지만 숨을 쉬는 술항아리에서 뿜어나오는 술향에 취기가 돌정도다. 중원당이 출하하고 있는 주품과 판매 가격은 다음과 같다.

◇ 청명주
▴선물용 도자기 선물세트(브루& 아이보리+전용잔) 17% 500㎖ 80,000원
▴2022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 중원당 청명주 17% 500㎖ 34,000원
▴도자기 세트(아이보리․블루) 17% 500㎖전용잔 +2개46,000원.
▴청명주 청명주약주 17% 375㎖ 20,000원
▴중원당 청명약주 14.5% 375㎖ 충북 무형문화재 지정 20,000원
▴중원당 청명주탁주 12% 375㎖ 18,000원
◇ 탁주 협업 제품
▴탁주(생주) 보은주(요리연구가 이보은) 10% 375㎖ 16,000원
▴탁주(생주) 선희10(술 큐레이터 sunny) 10% 375㎖ 12,000원
▴탁주(생주) 호호(전통주 소뮬리에 김하은) 9% 375㎖ 15,000원
◇ 양조장 체험
▴쉬는 날:주말 및 공휴일 휴무▴수용인원:최소 4인 이상▴체험가능연령:누구나▴체험안내:전통주체험, 도자기체험, 종합체험▴문의 및 안내:043-842-5005▴체험료:전통주체험 30,000원, 도자기체험 30,000원,

실학자 이익,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 했다”
청명주를 두고 옛 선조들이 남긴 말들은 그 당시 청명주가 얼마나 유명한 술이었는지를 증명해 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성호사설(星湖僿說)》에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하며, 청명주의 양조 방법을 혹시나 잊어버릴까 두려워서 기록해 둔다.” 또 다른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류의 책《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전국에서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술로 평양의 감홍로, 한산의 소곡주 등과 함께 충주의 청명주가 기록돼 있다.
이규경은 또 그의 저서《청명주변증설》에 청명주에 사용되는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다. 문헌에는 ‘청명주는 금탄의 물이 아니면 이룰 수 없으며 다른 지방에서는 모방해도 이와 같지 않다’고 나와 있다. 여기 등장하는 ‘금탄(金灘)’이 물 좋기로 유명한, 청명주의 본고장이다.
금탄(金灘)-옛 금천(金遷) 지금의 중앙탑면 창동, 갈마 일대에 있던 여울이라 하여 지금의 달천강이 남한강과 합수가 되는 강변 일대를 말한다.

중원당 김영기 옹은 청명주 기능보유자이자 1993년 6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분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토대를 닦은 분은 김 옹의 증조부 되는 고 김양배 씨이다. 일제강점기에 잠시 맥이 끊겼던 청명주의 계보를 다시 쓴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해 김 씨 가문에 전해져 오던 민간약방문《향전록》을 바탕으로, 1986년 고 김양배씨는 조선시대 중엽부터 유행해 10대에 걸쳐 내려온 가양주인 청명주를 재현했다. 고 김양배 씨의 뒤를 이어 김영기 옹이, 그리고 김영섭 씨가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영섭 대표의 뒤를 이을 김 대표의 큰 아들 김재우 씨는 아버지처럼 식품영양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현재 국방의무를 하고 있단다. 제대 후 공부를 마치면 김 대표처럼 중원당에 입사하면 5대가 된다.
고서 기록에 의하면 청명주는 3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 태종황제 이세민이 대당 순시때 청명주를 바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태종황제가 크게 칭찬해 국주로 정해지면서 청명주가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술은 오래될수록 맛이 좋다는 말은 청명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새로 빚은 청명주는 투명하고, 5년 이상 보관된 청명주는 이미 황금색인데, 10년 이상 보관해 온 청명주는 완전히 검은색으로 변한다고 현대 중국 청명주 양조장은 주장한다.

청명주를 빚는 중원당이 있는 곳은, 충주 탄금대에서 탑평리 중앙탑 방향으로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왼편으로 나오는 첫째 마을 가금면 창동리다. 예전에 조창(漕倉)이 있던 마을이라 창동리(倉洞里)라 불렀는데, 조세를 거두는 선박들이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었다. 특히 이곳은 문경새재를 넘어와 남한강에서 배를 타고 과거를 보러 가던 충청도, 경상도 선비들이 거쳐 가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목 축일 술 한 잔이 그리운 동네였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