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남의 밥그릇 내팽개치고, 내 밥그릇만 단단히 챙기기
육정균(시인/부동산학박사)
한해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벌써 6월 중순으로 내달린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허기진 삶은 때론 기운을 잃게 한다. 오늘이 더욱 그렇다. 작년 하반기에 홀로서기를 위해 사무실을 개업하고, 12월부터 사무실에서 혼자 일을 시작하며 특별히 주변조차 알릴 기회가 없어서 그래도 보편적인 DM을 작성해서 우선 내가 사는 아파트 1,300여 주민들의 우편함에 넣기로 했다.
편지 초안을 작성하고 인쇄해서, 성의 있는 마음을 담고자 작은 용량의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구입해서 편지와 정성껏 담기로 했다. 편지는 4월 초에 인쇄하였지만, 우선 음식물쓰레기 봉투도 대형마트에 특별주문해서 보름을 기다려 1,300여 매를 구입할 수 있었고, 이후 편지와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정성껏 함께 접어 보기 좋게 우편봉투에 동봉하는 작업을 내외가 5월 중순까지 마칠 수 있었다.
손이 엄청 많이 가고 고단한 작업이었다. “정성을 들였으나 광고물을 막상 우편함에 넣었을 때, 하찮게 보고 그냥 버리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음식물쓰레기 봉투만 꺼내고 나머지는 무자비하게 버리는 분들도 있겠지?” 내외간에 처음부터 그럴 수도 있겠다며 그렇지만, 그런 일은 없기를 기도했었다.
5월 말이 되어서야 아내가 틈틈이 아파트 동마다 돌며 우편함에 DM을 정성껏 투함했다. 우리 동 우편함에도 DM을 넣고 세대별로 꺼내가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처음부터 빠르게 빼가는 분들도 있었지만, 보름이 지난 최근까지도 그냥 꽂혀있던 편지들이 거의 사라지는가 싶더니, 오늘 아침에는 기어코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던 일이 정확하게 발생했다.
아침 일찍 나선 산책길에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1층 우편함이 있는 통로를 지나는 길에 웬 편지봉투가 나뒹군다. 내 사무소 안내 DM이다.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그대로 입에 문채 DM봉투 전체가 통로에 버려져 있었다. 또한, 웬 편지 한 통이 나뒹군다. 딱 보니 이도 나의 불쌍한 DM이다. 이분은 음식물쓰레기 봉투는 가져가고 편지만 빼서 통로에 버린 것이다.
어차피 예상한 일이지만, 나름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값어치는 작지만 정성껏 접어 넣은 음식물쓰레기 봉투와 편지, 나의 밥그릇을 통째로 버린 것이 더 많이 아팠다. 그냥 순수하게 받아주면 안 되는 것일까? 남의 정성스러운 인사를 그냥 길거리에 버리는 마음은 그냥 곱게 보기 어려웠다. 어쩌면 의도하지 않은 폭력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음식물쓰레기 봉투라도 가져가신 입주민이 나아 보였지만, 역시 아파트 통로가 쓰레기통은 아니지 않는가?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기간 일이다. 미국의회 연설이 있다하여 공영방송인 KBS1 방송을 틀었다. 어릴 적부터 웅변을 한 탓에 연설에 많은 관심이 있는 나는 KBS1 방송에 채널을 맞추면 대한민국의 제1 공영방송이므로 방미중인 대통령의 사전에 연설배경과 연설의 주요 내용 등을 중심으로 사전에 비중 있게 다룰 것이고, 제일 적극적으로 연설장면을 모니터해서 방송해줄 것으로 여긴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제1 공영방송은 대통령의 방미 2틀 째에 “한미정상회담 결과 감정가는?”이라는 제목으로 2명의 남성 MC가 여야 각 1명의 패널과 한밤의 시사토크 라이브 정치쇼 진품명품에서 벌써 방미성과를 논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방미가 끝나고 귀국한 시점에 돌아볼 방미성과를 방미가 진행 중인 초반에 정확한 진단이 되나?”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방미성과는 국민의 힘 패널 천하람은 80,000원, 더불어민주당 패널 김성회는 –84억원을 쓴 피켓을 들어 전혀 값어치 없는 것으로 진단했다. 더구나, TV화면 상단에 시청자들의 실시간 댓글을 캡처해서 보여주는데, 윤대통령이 바이든과의 만찬에서 부른 노래에 대해서 비야냥거리는 댓글을 모아서 계속하여 보여주며 방미 중인 대통령을 비웃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신O희 “가사왜우느라고생했네”, 임금님귀에캔디 “노래가 나오나?”, 한O숙 “정말 왜 저러는거냐”) 막대한 시청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강제적으로 거두고, 게다가 KBS2TV와 KBS교육방송은 유료광고까지 실시간 해대며 수익을 올리는 정부의 공영방송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며, 일부러 대통령을 두둔하고 미화할 필요도 없지만, 상식적으로 대통령의 미국 상하원합동연설 전에 객관적인 안내 방송을 설명해서 국민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방송의 의도는 모르나 방미 시작 중인 윤대통령의 외교성과를 여당 패널은 고작 80,000원, 제1야당 패널은 –84억 원으로 평가하면서 미국에 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역설하는 듯한 방송을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작금에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시청료 강제징수가 논란이다. 나도 대부분의 이 나라 국민처럼 TV시청료는 전기요금에 붙어 나오니 아얏소리 한 번 못하고 꼬박꼬박 내는 것은 물론, 유튜브TV 등 뉴미디어시대 볼 것이 없어 보지도 않는 지상파 KBS1·2, MBC, SBS와 JTBC, MBN, 채널A, TV조선 등 각 종편, 기타 다양한 오락 등 종합유선방송을 한국통신의 올레TV로 보면서 종합시청료를 또 한 번 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2중과세이다. 이래저래 무더운 여름을 탈 없이 넘기려면 ‘과하주(過夏酒)’라도 한잔해야 할 모양이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