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친구 없음에 슬퍼 마라 菊花인들 어떠랴
들녘 경사진 언덕에 네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적적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노천명 시인의 ‘국화제’의 한 구절이다.
사군자의 하나인 국화는 모란, 작약과 함께 가품(佳品)으로 가장 아름다운 꽃 셋 중 하나로 꼽힌다. 국화는 가품, 가우, 가색 등으로 항상 가(佳)가 따라 다니는데 이 佳는 모란, 작약처럼 농염하지 않고 매화처럼 청정만도 아니며 늠름한 영자(英姿)가 깃들여 있는데서 나온 말이란다.
국화는 일반 식물계에서 가장 진화한 꽃으로 3,000여 종에 달하는 것 역시 전 세계 사람들이 국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개량종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꽃 중에서 신이 제일 나중에 만든 것도 국화라고 한다. 그 만큼 국화는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꽃이다. 장례식에는 빠지지 않고 하얀 국화가 등장 하는 데 이 역시 신이 좋아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을 장미 같은 화려한 국화로 장식 하지 않고 국화로 꾸미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이 들어감에 먼저 가는 친우 영정에 국화 한 송이를 받치는 날은 가슴이 저리도록 아프다. 더욱이 밤새도록 술 마시던 친구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젠 누구하고 술잔을 기울여야 하는가. 어느 시인처럼 국화와 대작(對酌)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가을 들녘을 걷다보면 양지 바른 산자락에 감국(甘菊)이 노랗게 피어난다. 이 감국 꽃을 섞어 빚은 술이 국화주(菊花酒)다. 감국은 노란 색 때문에 황국(黃菊)이라고도 부른다. 감국을 따다가 말려서 술을 빚는데 제대로 된 국화주를 맛보려면 해를 넘겨 가며 느긋하게 기다려야 진정한 국화주를 맛 볼 수 있다.
진정 술 빚는 고수가 담근 국화주를 맛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일전 박록담 소장이 가을 시음회를 열면서 국화주를 담근 지 400여일 만에 술독을 개봉하고 참석자들에게 한 잔씩 들게 했다.
세계 어느 와인이 코냑이 양주가 이를 흉내 낼 수 있을까. 이 때 시인이 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저 좋다는 것 외에 달리 표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화를 예찬 한 시인 묵객들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냐만은 이규보는 ‘춘삼월 봄바람에 곱게 핀 온갖 꽃이/ 한 떨기 가을국화만 못 하구나/ 향기롭고 고우면서 추위를 견뎌 사랑스러운데/ 더구나 술잔 속까지 말없이 들어오네’라고 노래했다. 이 보다 국화를 사랑 한 표현이 더 있을까. 아마 이규보가 국화주를 마시며 지은 시가 아닐까 여겨진다.
남부지방에서 불리는 각설이 타령에도 ‘굿자(九字)나 한 장 들고 봐/ 구월이라 국화꽃/ 화중군자(花中君子) 일러 있다’ 했으며, 황진이도 ‘소세양과 이별하며’라는 시에서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月下梧桐盡),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霜中野菊黃)라고 했다. 이 시로 황진이 곁을 떠나려든 소세양이 황진이 곁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다.
양귀비 자태처럼 그렇게 곱지도 않으면서 시인 묵객들이 한 결같이 국화를 예찬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더 늦기 전에 들녘으로 달려 나가 시들기 전 감국향이라도 맞고 와야 갰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노랗게 핀 감국을 따다가 말려서 차로 마시거나 술을 빚어 먹던 사람들은 분명 시인 묵객이었을 것 같다.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이를 입으로 넣으려는 것은 허브의 원초적 발상은 아니었을까.
국화차나 국화주를 마신다는 것은 가을을 가슴 깊이 묻어 두는 것이다. 하물며 국화꽃을 벗 삼아 술잔을 주고받는 시인이야 말로 진정 자연인이다. 국화주 대신 소주잔이라도 들고 나가 국화에게 “자! 한잔 들게나” 하며 권주가라도 부르고 싶은 달 밝은 가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