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
임 재철 칼럼니스트
‘커피 한잔 할래요?’
무더위 가 조금 누그러진 날씨이지만, 아직 햇볕이 뜨겁다. 여전히 우리는 생명수라 불리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 생각날 때이다. 필자 역시 하루 종일 커피 생각이나 한잔할 요량으로 동네 카페를 찾았다. 커피도 커피이지만 시간의 변화와 더불어 깊어진 여름의 향을 느끼고 싶어 서였다.
도시 생활에서 조금의 여유와 안락함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카페다. 카페는 커피와 함께 문화와 즐거움을 제공한다. 즉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들리는 장소이자 일상의 특별한 순간을 간편하게 선사하는 곳으로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주위에는 다양한 취향과 선호도만큼이나 갖가지 분위기와 맛을 가진 카페가 많이 있다.
사람마다 각기 사는 방법이 있지만 요즘 직장인들은 매일 또는 매주, 주기적 같은 시간에 의식을 치르듯 커피를 마시는 일이 많다고 한다. 말하자면 ‘커피 타임’(Coffee time)이다. 그러니까 예측할 수 있는 일정한 시간에 회의를 하든 난상토론을 하는 시간이든 커피가 있으니 불안하지 않고 여유롭다는 것이다.
그런데 ‘커피’ 와 ‘시간’을 합성한 ‘커피 타임’ 단어의 어디에도 휴식이나 여유, 재충전, 소통, 명상, 사유 등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행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공유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가치가 하나둘 붙게 되면, 그것은 곧 문화가 된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 또한 당초 ‘커피 아워’(Coffee hour)였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메리엄-웹스터 인터넷 사전에는 1867년에 처음 ‘커피 아워’가 등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러시아워, 골든아워, 해피아워 등에서는 대체로 중요한 의미가 시간을 나타내는 ‘아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점차 커피 아워가 단지 특정 음료를 마시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여러 사람이 교류하며 화합하는 문화적 가치를 지니게 되자, 20세기에 들어서 ‘커피 타임’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직장인을 비롯, 모든 이들이 ‘커피와 함께 취하는 시간이나 휴식’은 메타포의 영역에까지 들어가 문학적 수사를 낳고 있다. 가령 ‘내 삶의 커피 타임’이라고 하면, 세상의 시간을 좇아가느라 여념이 없던 자신이 주체적으로 자아를 마주함으로써 삶의 변화가 시작된 계기를 의미하는 식이라 할까. 이러한 커피라는 음료를 전 세계 지구인이 하루에 30억 잔에 가까운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이렇듯 그런 저런 맥락의 커피 문화를 적어 내려가다 보니, 커피의 효능을 잘 알지 못하는 필자이지만 ‘믹스커피’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병상의 부친이 아른거려 가슴이 시리고 멍하다. 지금 요양병원에 계신 제 부친은 입원하기전 믹스커피를 박스로 사두시고 매일 4~5잔을 음용 하셨으나 이후 그렇게 좋아하시던 커피를 드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생이 주막과 커피 사이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필자이지만, 부친이 입원 하시기전에 집에 갈 때 250개들이 믹스커피를 사서 들고 갈 때면 너무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젠 세월의 굴레 저 너머로 흘러가 버린 그리운 시간이 되어 버렸다. 부친의 지난 세월을 어찌 글 몇 줄로, 아니 커피 몇 잔으로 갈무리할 수 없겠으나 삶의 모퉁이 시간과 겨루고 계시는 불쌍한 부친은 커피가 얼마나 그리울까.
세상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발전했고 우리 사회의 삶의 질 또한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수명도 늘어나고 장수하는 노인들도 많아졌다. 당연히 카페에도 노년층이 드나든다. 하지만 카페뿐만 아니라 어느 곳을 가더라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령 그들 또한 그동안 사회의 일꾼으로 산업현장에서 땀 흘려 일했던 세대들이다. 필자 역시 은퇴 세대이지만 여러 곳에서 냉대를 받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저리다.
세상이 어찌하여 이렇게 가고 있을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세상의 오늘이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사람이 죽어 나가도 단 한마디의 반성이나 사과의 말도 없고, 친일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며 당당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막된 세상에서 어쩌면 호사스런 사치의 표현일지 모르겠다. 부끄러운 일을 해 놓고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이 올바른 마음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세상은 바르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가 빗나가 길었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카페에 가서 친구와 만나기도 하고,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커피를 시켜 마시는 호의적이고 또한 눈치가 보이지 않는 장소였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부끄러움을 알고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마음껏 다닐 수 있음은 물론 차별 없는 세상의 카페 문화로써 팍팍한 삶의 순간들을 커피로 인해 삼켜 버리고, 충분히 행복한 일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생살이, 고단한 삶. 여유를 주고, 만남을 주고, 영감을 주는 커피 한잔.
그 좋은 커피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 오래도록 즐기고 오래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