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몸이 먼저 술을 기억한다
많은 애주가들의 젊은 날, 꽐라되도록 마시는 날이 수도 없이 많지 않았을까. “술 좀 그만 마시라”는 어르신들의 잔소리를 귓전으로 흘려듣고 ‘주야장천(晝夜長川)’ 마셔도 몸은 끄떡없었다.
요즘 모 TV에서 음주방송을 하는 것을 보고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음주방송은 상상도 못했다.
술 잘 마시는 연예인을 검색해 보면 조진웅, 강동원은 주량 측정불가로 나오고, 신동엽은 지상렬의 주량이 소주 24병 정도라고 했다. 평소 취한 적이 없다는 인피티트의 호야와 전진은 각 소주 15병, 성시경, 신동엽, 소지섭 등은 소주 10병이라고 한다. 대단한 주당들이다.
과거에 호랑이 선생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故 조경환 씨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새마을 열차의 식당 칸에 있던 술을 모두 마셔버리고 서울역에 내려서 2차, 3차를 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주당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경환 배우는 당시 韓․日 ‘전천후 클럽(주당)’의 멤버이기도 했는데 입가심으로 마시는 맥주가 30병 정도라니… 조경환 씨는 결국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요즘처럼 카드도 없던 시절 돈 없으면 시계도 풀고, 콘사이즈도 맡기고, 겉옷도 맡기고 외상술을 마셨다. 현금 주고 마시는 술보다 외상으로 마시는 술맛이 왜 그렇게 맛있던지….
사회인이 되었을 때는 술집에 외상장부 걸어 놓고 술을 마셨다. 월급날 장부 정리하면 술집 주인이 고맙다며 한 잔 건네는 공술 때문에 발동이 걸린다. 오늘은 일찍 귀가해야 한다는 집사람의 잔소리(월급봉투 때문에)도 몇 잔 술에 까마득히 잊고 마신다.
요즈음은 직장 상사가 회식이 있다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회식자리에 불참하는 젊은이들이 많다지만 70-80년대에 그랬다간 상사에게 찍혀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이다. 윗사람이 주는 잔은 무조건 마셔야지 토를 달면 안 된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주는 대로 받아 마시고 나면 술을 이기지 못해 오바이트는 기본이었다. 요즘 출근길에 주당들이 먹은 내용증명(오바이트)이 잘 보이지 않은 것은 과한 회식문화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가.
오바이트는 콩글리시 영어다. 영어로 토하다는 vomit가 맞다. 주당들은 유식해 보이기 위해(?) ‘넘치다’의 ‘over’ 와 ‘먹다’의 ‘eat’를 합쳐져서 ‘overeat’ 라는 단어를 창안해 냈다. 그럴 듯 하지 않은가.
그나저나 오바이트의 명장면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1>에서 전지현이 전철 안에서 대머리 아저씨 머리위로 쏟아내는 오바이트가 아닐까. 아직도 그 장면을 연상하면 배꼽이 웃는다.
코로나19의 번창을 막기 위해서 정부가 강제로 식당 영업을 제한했을 때 홈술․혼술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펜데믹이 종료된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 홈술․혼술은 아직까지 진행형이다.
지난여름 헬스조선이 <술, 한 번에 많이 vs 조금씩 자주… 더 안 좋은 건?>이란 제하의 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다.
-술에 대한 여러 가지 속설이 있다. ‘자주 마셔도 조금씩 마시는 건 괜찮다’ ‘차라리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게 낫다’ 등이다. 물론, 술은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지만,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것과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 중에선 어떤 게 더 건강에 해로울까?
결론은 술은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것보다 자주 조금씩 마시는 게 더 위험하다. 술을 조금씩이라도 자주 마시게 되면 습관성 음주로 이어져 알코올 중독이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중략>
혼술은 삼가는 게 좋다. 술을 혼자 마시면 마시는 속도가 빨라질 뿐 아니라, 말려주는 사람도 없어 절제가 어렵다. 미국 알래스카 주립대 연구팀에 따르면, 혼자 술을 마시면 다른 사람과 마실 때보다 알코올 사용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2배 높다.
건강을 위해서는 절주를 하든지 금주를 해야 한다는 친구 녀석도 술자리에서는 슬그머니 술잔을 내민다. 술은 마음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이 술을 기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