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산 와이너리 백승현 대표
‘2023 대한민국 우리 술 대축제’에서
‘수도산 와이너리’의 ‘크라테 미디엄 드라이’로 대통령상 수상
일찍이, 플라톤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 중 와인만큼 위대한 가치를 지닌 것은 없다고 했다. 플라톤을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 시인, 음악가들이 와인을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와인이 언제 이 땅에 상륙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과거 와인이라면 근사한 호텔 같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썰며 폼 잡고 마시는 술, 격식을 갖추고 마시는 술, 값이 비싸서 샐러리맨들은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술이다.
오죽하면 삼성 가에서 만찬주로 무슨 와인을 사용했다면 언론에서는 ‘이건희(故 삼성그룹 선대회장) 와인’이란 이름을 붙여 보도를 할 정도였다.
일반 대중들이 와인을 손쉽게 접하게 된 것은 칠레와 2004년 4월 1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은 아니었을까. 협정 이후 값싼 와인이 물밀 듯 들어와 와인에 목말라 했던 주당들의 목을 축이게 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와인이 대중화 바람을 타고 급기야 포장마차에서도 소주․맥주처럼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와인 대중화 바람으로 국내에서도 와이너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고, 국산 와인의 맛과 향에 있어 외국의 유명 와인과 견주어도 별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와인도 생산한다.
‘2023 대한민국 우리 술 대축제’에서 경북 김천의 ‘수도산 와이너리(대표 백승현)’가 ‘크라테 미디엄 드라이’로 대통령상을 거머쥔 것은 그 동안 피 나는 노력의 결실이라서 더욱 값진 와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대통령상을 받은 수도산 와이너리는 어떤 와이너리일까.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 맛있는 와인을 생각 하며 길을 떠난다.
우리 술 품평회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선정한 크라테 프리미엄
수도산 와이너리가 위치해 있는 김천시 증상면 금곡리는 정감록에 나오는 피난처 같은 고장이다. 실제로 이곳은 임진왜란 때 백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난을 피해 모여 살던 백 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수도산(1,317m) 줄기가 평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왜구 침입이 거의 불가능 했던 오지. 때문에 자연이 잘 보존된 청정 지역이다.
수도산 와이너리는 이런 청정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500m는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고 했던가. 와이너리는 바로 그런 위치에 있다. 오염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수도산(修道山)은 산 이름에서 느끼는 것처럼 도를 닦는 곳이란 뜻인데 실제로 신라 헌강왕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청암사(靑巖寺)와 수도암(修道庵)이 있어 스님들의 수도처로 유명하다.
이런 청정지역이 좋은 와인을 생산 하는 자양분이 되지는 않았을까.
백승현(54) 대표는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좋은 환경이 필수다. 수도산 와이너리가 위치해 있는 지역은 청정지역이라 질 좋은 머루를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백 대표는 이런 좋은 조건에서도 보다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유기농을 고집하며 직접 산머루를 재배한다. 또한 좋은 맛을 얻기 위해 지속적인 품질개선에 노력하고 있는 점이 우리 술 품평회 심사를 맡고 있는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는지 모르겠다.
백 대표는 “이번 품평회 심사에서 7인의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대통령상을 선정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고 했다.
대한민국 최고 명주로 수도산와이너리 ‘크라테 미디엄 드라이’ 선정
“2023년 대한민국 최고의 술로 수도산와이너리의 ‘크라테 미디엄 드라이’로 대통령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백 대표 부친에게 고하자 “니가 해냈구나”라는 한 마디를 했다고 한다.
아직 시골 사람들에게 와인은 소주나 막걸리처럼 익숙지 않은 술이다. 23년 전 백 대표가 수도산 산머루농원을 설립하고 와인을 해 보겠다고 했을 때 가족은 물론 친구들도 ‘무모한 짓’이라고 말렸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달 30일 수도산 와이너리를 찾았을 때 길가엔 친구들을 비롯한 각 기관들이 대통령상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이제야 백 대표의 고집을 이해하고 응원에 나선 모양이다.
백 대표가 와인 상표를 ‘크라테(krate′)’라고 한 것은 와이너리가 위치한 지형이 화산분화구(crater)처럼 생긴 것과 한국 술(Korea)이라는 정체성을 더한 이름이라고 했다.
수도산 와이너리를 찾았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동안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패들. 2008년 경북 와인품평회에서 장려상을 수상 한 것을 필두로 2017년부터 올해까지 국내․외 각종 주류 품평회에서 대상, 최우수상을 수상 한 상패들이 즐비했다. 금년에 대통령상을 수상 한 것은 이런 수상들이 토대가 된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백 대표의 끈질긴 연구 개발과 수도산의 해발 500~600m 청정지역에 위치해 있는 머루 농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곳은 김천 시내와 비교해도 5도 정도가 차이가 날 정도로 일교차가 큰 지역이다. 해발 500m 산비탈에서 재배한 산머루는 단단하며 당도와 산도가 높다. 산머루는 청정지역에서만 자생하는 과실로 포도의 3분의 1 정도의 크기이며 단맛과 신맛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발효시켜 와인으로 만들면 풍미가 좋은 레드와인으로 완성된다.
한발 늦은 머루 수확으로 빚은 와인이 대박을 치다
살다 보면 2등이 챔피언이 되는 경우도 일어나는데 이번에 대통령상을 수상한 프리미엄 드라이를 생산 한 머루가 그렇다.
사실 국내 와인의 경우 각종 포도의 경우 블릭스가 높지 않아 보당(補糖)을 해줘야 한다. 백 대표의 머루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어느 해 일이 바빠서 머루 수확 시기를 놓쳐서 서리가 내린 후 수확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분이 빠져버린 머루를 버리기가 아까워 그대로 와인을 빚었다고 한다. 그런데 맛이 기가 막혔다고 했다.
“어라! 내가 찾던 와인 맛이네”
한 발 늦은 수확으로 맛좋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어 지금도 수도산 와이너리에선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산 와이너리는 면적당 머루 나무의 수를 줄이고 그루당 수확량도 제한해 응축된 포도를 생산한다. 한 그루에서 한 병의 와인 생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도산 와이너리는 현재 약 6000평(머루 3,000평, 포도 3,000평)밭에서 머루와 포도를 수확하는데 여느 와이너리에 비해 수확량은 절반 수준이다. 이는 와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란다.
또 서리가 내리고 열매가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당도가 높아진 후 수확해서 와인을 빚는다.
발효된 와인은 미국산 오크통에서 3년 이상, 길게는 10년의 긴 숙성기간을 거쳐 출시한다. 긴 숙성을 통해 산머루 특유의 산미는 부드러워지고 복합 미와 구조감이 좋은 풀 바디 와인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와인은 기다림의 미학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와인 선진국가인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Veneto) 지방에서는 이미 고급와인 아마로네(Amarone)를 양조할 때 수도산 와이너리가 생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니 우리도 와인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는 문이 열렸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아마로네는 포도를 말려 당도를 높이는 아파시멘토(Appassimento)라는 독특한 제조법으로 만들어지는데,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레드 와인이다. 국내 와인업계에서 크라테를 한국의 아마로네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산 와이너리는 한국 와인으로는 드물게 수확년도를 표기한 빈티지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최상의 원료를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백 대표는 말한다. 현재 수도산와이너리에서는 알코올 11.5% 크라테 드라이, 크라테 스위트, 로제, 화이트와 8.5%인 크라테 자두 등을 생산하고 있다.
블라인 테스트로 외국 유명와인과 경쟁에서 크라테가 판정승
아직도 많은 와인 마니아들은 “와인은 프랑스산이나 이탈리아산이 최고”라고 한다. 심지어 와인 소믈리들도 국산 와인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실제로 맛에 있어서도 그럴까.
백 대표는 최근 더플라자호텔, 인터콘티넨탈 호텔, JW메리어트호텔 등 국내 유수의 호텔에서 와인 바를 운영사람들을 상대로 갈라 와인 디너쇼를 열었다고 한다. 이 때 와인 빈티지를 가린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수입산 와인 가운데서 알아주는 와인과 크라테를 놓고 시음한 결과 크라테가 판정승. 그런데 빈티지가 붙은 와인 병을 보고는 수입산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더란다.
그렇지만 이들은 크라테의 맛과 향에 반해서 와인 바에서 크라테를 팔고 있지만 와인병은 내놓지 못하고 잔 술로 와인을 팔고 있단다. 그렇지만 진정한 외국의 와인 애호가들은 크라테를 마셔보고 불원천리 마다 않고 수도산 와이너리를 찾아 해 묵은 와인을 보고 엄지척 하며 몇 병씩 구매해 간다고 했다.
백 대표는 “K푸드, K컬쳐처럼 우리의 와인도 세계와인 시장에서 명성을 떨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한국의 와인이 날개를 달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감, 배, 자두, 복분자, 오미자, 매실 등 어떤 열매라도 와인을 빚어내는 민족이 세계엔 그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합기도 태권도 등 만능 스포츠맨이 와인맨으로 변신하다
백승현 대표는 첫 인상이 예사롭지 않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유도, 합기도, 태권도 등 각종 무술 유단자로 프로 권투선수에 경호원까지 지낸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임을 알고 나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백 대표는 와인에 입문하기 전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직업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와인 생산과는 전혀 다른 경력을 쌓아오던 그는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이 짓던 담배, 마늘, 고추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다 산머루에 꽂혀 201년 농장을 설립하고, 머루 재배에 열중했다.
와인에 손을 댄 것은 단순히 산머루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막상 와인을 시작해보니 재미가 있더란 것. 그래서 고심하던 중 2007년 와인메이커로서의 도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맨답게 한번 도전을 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 전국 팔도강산으로 와인공부를 하러 다니기도 했고, 지금의 와인파트너 김순옥 씨를 만나면서 백 대표의 와인 실력은 일취월장하게 된다. 김순옥 씨는 일본에서 와인을 전공한 숨은 와인 실력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11월 24일 ‘2030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므로 써 수도산 와이너리는 와인업계뿐아니라 전통주 업계의 최고봉에 오르게 되었다.
백 대표는 수상 소감을 통해 “아직 와인을 시작하는 단계고 걸음마를 뗐을 뿐인데 이런 큰 상을 받아도 되나 싶다”면서 “한국의 와인이 더욱 발전하여 세계인들이 찾는 와인이 되도록 노력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