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술도 惜吝成屎 될 수 있다

박람회에 전시된 다양한 증류식 소주들 @이대형

김원하 취중진담

 

귀한 술도 惜吝成屎 될 수 있다

 

 

선거는 참으로 잔인하다. 출마자들은 개표결과 천당과 지옥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22대 총선에서 당선된 예비 국회의원들은 10일 늦은 밤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축배(祝杯)의 잔을 높이 들고 환호 했을 것이고, 반대로 낙선자들은 눈물을 삼키며 고배(苦杯)의 잔을 들었을 것이다.

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집안에 귀한 술 몇 병은 있을 것 아니겠는가. 대박 나면 마시겠다고 고이 보관했던 술병 찾아 축배의 잔을 드는 순간 세상은 다 내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을 것이고, 고배를 마셔야 하는 사람들은 4년을 기다리자며 와신상담(臥薪嘗膽) 모드로 들어갔을 것 같다.

정치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 한번 정치에 발을 담그는 순간 정치에서 발을 빼기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번 낙선해도 계속해서 도전장을 내민다. 금배지만 달면 세상이 바뀐다. 보좌관들이 생기고, 일반인들이 상상도 못할 특권이 생긴다. 행사장에 장․ 차관보다 앞서서 축하 메시지도 한다.

10일 밤 개표 방송을 보면서 제 3자 입장에서도 가슴을 졸였는데 당사자들은 오죽했겠는가. 출구조사에서는 당선되는 것으로 보도가 되었는데 막상 개표를 하니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낙방의 고배를 마신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낙선자로 발표 됐던 사람이 당선이 되기도 했다.

선거 개표는 어느 스포츠 경기보다 스릴이 있다. 당사자들이나 정당들은 피를 말리는 개표가 되겠지만 개표를 바라보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시소게임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선거구에는 더 관심이 집중된다.

 

“잔을 들어라 오늘 이 밤은 우리에 밤이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오늘에 밤은 다신 오지 않나니 내일의 날은 다른 새날일 뿐 이미 오늘에 날은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것만큼 대박이 있을까. 이런 대박이 터지면 마시겠다고 고이 보관했던 술을 막상 마시려니 왠지 이상하다.

30여 년 전 비싸고 귀하다는 와인을 친구로부터 선물 받고 책장에 고이 보관한 술인데 이상한 냄새가 나고 마시려니 맛도 이상하다. 고급 와인은 이런 맛인가?

햇빛이 닫지 않은 동굴이나 바다 밑에 가라앉은 배에 실려 있던 와인이라면 백여 년이 지나도 그 맛의 변화가 없겠지만 실내에 보관된 와인이라면 설사 와인셀러에 보관 돼 있다고 해도 지나치게 오래된 와인은 상하기 일쑤다.

와인은 김치와 같다. 갓 담근 김치는 풋내가 나서 맛이 없지만 숙성이 잘된 김치는 시원하면서도 아삭한 맛이 일품이 아닌가. 물론 삭혀서 먹는 묵은지도 있지만 이 또한 지나치게 오래 묵히면 맛이 변한다.

와인도 매한가지다. 와인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와인의 유통기한이 10년이라면 절반 정도의 시간이 지날 때 최고의 풍미를 느낄 수 있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맛은 점점 나빠진다. 와인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소믈리에가 아니면 와인을 선물 받으면 가급적 빨리 마시는 것이 최고다.

축배의 잔을 들던 고배의 잔을 들던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오래 보관한 술을 꺼내 마시려다가 맛이 변해서 마실 수 없는 술이 있다면 가격 따지지 말고 와인 욕이나 하시든지.

먹거리가 귀하던 어린 시절 어쩌다가 맛난 음식이라도 생기면 바로 먹지 못하고 의숙한 곳에 숨겨 놓고 다음에 먹겠다고 했다가 깜박 잊어버린다. 생각이 나서 막상 먹으려다 보니 곰팡이가 피어나서 먹을 수 없게 된다. 어른들은 이런 것을 보고 아끼다 똥 된다고 했다.

먹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보통사람들은 값비싸고 귀한 그릇이나 옷들도 제때 사용하지 않고 아낀다. 세월이 지나면 그릇은 유행이 지나고 옷도 구닥다리로 입고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현상은 현재보다 미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 미래가 현재가 되어도 절대 즐기지 못한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지금 즐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석인성시(惜吝成屎)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끼다 똥된다는 말을 유식하게 표현한 말이다. 惜吝이란 말은 아끼다는 말이고, 成屎라는 말은 똥 된다는 말이다.

값비싼 그릇이 있어도 대부분 사람들은 나중에 귀한 손님이 올 때 쓰려고 아껴둔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집안에 귀한 술 있거든 술친구 불러내 한잔 하며 이번 선거가 어쩌구저쩌구하며 회포라도 푸시는 것이 어떨까.

본지 발행인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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