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의 에세이
술박물관을 가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술의 길에 들다
2002년 월드컵 열기가 온 나라에 가득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근무를 하던 나는 막 결혼을 했다. 박물관에 술을 빚어 놓으면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술항아리를 만져야 직성이 풀렸다. 특히 막 술밥을 넣고 며칠간은 술독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물속에서 불이 난다고 해서 수불이라고 했던가? 며칠간은 항아리에서 잔득한 온기가 올라왔다.
발효가 일어나는 항아리의 불룩한 배를 만지면 마치 임신한 아내의 배를 만지는 기분이었다. 발효가 절정에 이르면 술이 뽀글거리는 소리가 빗소리 같다. 항아리에 귀를 대보면 숨을 쉬는 것처럼 탄산가스에 새어나왔다.
그때 느꼈다. 술을 담는 것은 살아있는 것과의 대화라는 사실을.
좋은 아빠처럼 그 미생물이라는 녀석들과 잘 놀아줘야 한다. 그래야 튼실한 효모들이 제 식구를 늘리며 알코올발효를 부지런하게 해댄다.
그러한 사실을 몸으로 깨닫기까지 고백하자면 나는 무수히 시어진 술덧을 박물관 뜰 감나무 밑에 몰래 묻었다. 감나무 밑 땅을 파며 언젠가는 제대로 술을 만들리라. 그리고 그 술을 세상에 내놓으리라 다짐을 했다.
2002년 월드컵 열기 속에 개관한 전주전통술박물관은 내게 술의 길을 알려준 평생 잊지 못할 장소였다.
술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전주전통술박물관 이외에도 전국에 술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이 여럿 생겼다. 배상면주가에서 운영하는 포천의 산사원은 넓은 면적과 전통술의 철학이 돋보이는 곳이다. 수백 개의 거대한 항아리가 무리를 지은 세월랑은 전통술 관련 건축물 최대의 걸작이다. 우리 술의 풍류와 낭만이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를 닮은 우곡루 기와골마다 스며있다.
그곳에서 달은 다섯 개가 뜬다고 한다. 하늘에 뜬 진짜 달과 연못에 빠진 달 그리고 술잔에 빠진 달, 마지막으로 그대 두 눈에도 달이 뜬다.
나는 30대 후반을 이곳에서 보내며 술을 교육하고 알리며 팔기도 하였다.
그리고 전국을 떠돌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충북 청원의 문의양조장 유물들을 수습해왔다. 또 퇴락한 경북의 어느 막걸리양조장의 유물들을 가져와 산사원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 술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로 흐른다. 좋은 술을 알고 마시는 사람은 그래서 행복하다. 좋은 술을 품을 수 있는 깊은 연못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술맛뿐만 아니라 술의 길을 잊지 않고 간직한 곳은 술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때때로 경외감을 준다. 이곳의 창업주를 기억하는 우곡메모리얼홀은 배상면 회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감명을 주는 곳이다.
산사원 말고도 안동의 소주박물관, 제주의 술박물관, 충주의 술박물관 등 전국에 많은 술박물관이 운영 중이다. 그리고 전북 완주에도 술박물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대한민국 술테마박물관 문 열다
전북 완주군에 대한민국 술테마박물관이 지난 6월 26일 문을 열었다.
총 면적 6만1천594㎡, 연면적 4천374㎡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로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총 5만 5천점의 술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술에 관해 이만큼 많은 자료와 유물을 모은 곳은 아마 우리나라에 없을 것이다. 전통 도자류에서부터 근현대의 술잔과 술병들까지 관련 유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지하 1층에는 독립공간으로 구성된 판매시음장이 있다. 전국에서 수집된 술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시음도 할 수 있다. 또한 교육체험실과 발효숙성실이 있고 전통주, 와인, 맥주 등을 교육하고 있다.
지상의 전시실은 제 1전시관과 제 2전시관으로 나뉜다. 제 1 전시관은 유물전시관, 3D를 활용한 입체영상관이 있다. 제 2전시관은 대한민국 술이 역사와 문화관, 주점체험관, 전통주 르네상스관, 향음주례체험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 초창기라 특색 있는 프로그램이나 유물이외의 다른 볼거리가 있지는 않지만 인근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가볼만한 곳이다.
대한민국을 붙인 만큼 부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술박물관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짜자작짝짝!!!
◈ 글쓴이 유 상 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