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배달사고 막걸리
칼럼리스트/시인 雲停 金 潤 燮
나의 어린 시절은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부침(浮沈)이 아주 심했다. 아버지의 사업 환경이 바뀔 때마다 가정도 따라서 극단적인 변화를 경험해야 했다. 그렇듯 어려움을 몸소 겪어야 하는 아버지야 더 일러 무엇하리요. 자수성가를 해야 하는 형편에 딱히 의지할 곳이 없으셨던 터라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에게 술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이웃이요, 언제든 마음의 위로가 되어 주는 따뜻한 벗이었을 게다. 잘 드시지 못하는 술이었지만 가끔 자의 반, 타의 반 마셔야 하는 아버지는 사업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건축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비가 오는 날이면 현장이 모두 쉬었다. 이런 날이면 일찍이 들어 오셔서 날궃이 하신다고 엄마에겐 김치전을 주문하시고 내겐 주전자에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셨다. 비 오는 날 술심부름은 짜증나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술을 주전자 가득 받아 오면서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몇 모금 훔쳐 마시던 막걸리, 혀끝에 와 닿는 알 수 없는 그 오묘한 맛과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시원한 맛이 어디 나만의 추억이랴? 어디 그뿐이랴 시나브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그 얄궂은 경험은 가히 내가 저지른 최초의 배달사고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갈수록 대담해지는 막걸리 배달사고는 마침내 이슬에 옷 젖듯 어언 삼십 여년의 주력(酒歷)이 되었으니 그 귀한 인연을 어찌 끊을 수 있을까? 지금도 그때 그 첫 만남에 빠져버린 짜릿한 첫 사랑을 못 잊어 그리도 끈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슴에 고이 숨겨둔 짜릿한 추억을 안주 삼아 사철주야 이집 저집 그 때, 그 시절, 그 술맛을 찾아 방황하고 있음에랴. 특히 비 오는 날 막걸리를 간택하여 마시는 취향을 갖게 된데 는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시작 된다. 비와 막걸리 그리고 아버지, 비는 아버지가 막걸리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막걸리는 아버지를 피안으로 인도하였다. 그렇게 막걸리를 드시고 편히 잠드신 아버지 옆에 술 심부름 하며 몰래 마신 막걸리 몇 모금에, 곁에 앉아 술벗이 되어 준 갸륵한 셋째 아들에게도 한잔 따라주시며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라시며 교육으로 따라 주신 하사주(下賜酒) 한잔 덕에 스승이신 아버지와 어린 애제자가 막걸리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사랑에 취했다. 비 낙수지 는 소리가 마음을 쓸어낸다. 어느덧 평안을 찾으시고 편안하게 누워 계신 아버지 옆에 아들도 따라 누우면 아버지의 품이 그렇게 넉넉하고 따뜻했다. 아버지의 체취와 막걸리 냄새가 섞여 아버지 냄새가 난다. 사남 일녀의 가장으로, 남편으로,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오신 아버지가 아들을 가슴에 안고, 막걸리를 품에 안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어린 가슴에 아버지 냄새가 각인되었다. 지금도 내 곁에 큰 산 같은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꽤 많은 세월이 흘러 그 시절을 반추하며 깨달았으니 나는 참으로 미련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고희연(古稀宴)에서 당신이 부르신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 임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을 한이 없어라♬ 가수 백년설이 부른 ‘나그네 설움’이다. 약주를 드시고 오시면 가끔 ‘나그네 설움’을 부르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난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회한이 크신 모양이다. 술이란 참 묘한 친구다. 기뻐서 술 한 잔, 슬퍼도 술 한 잔 이래저래 마시다 보면 기쁨이 슬픔으로 변하고, 슬픔은 기쁨으로 승화한다. 비 오는 날이면 아버지 냄새가 느껴진다. 막걸리 집으로 아버지 냄새를 찾아간다. 그 냄새가 더욱 그리워지면 아버지에게 간다. 망구(望九)의 연세에 연로하셔서 이제는 술을 못 드시니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술을 가르쳐 주셨고 아들은 그 아들에게 술을 가르치고 배우리라, 네게 아직도 그런 아버지가 있어 좋다. 아버지의 삶 가운데 술이 없었다면, 나의 삶에 술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비 오늘날, 막걸리 한잔에 희로애락을 담아서 인생사 노래하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