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양조장 제1호 대강양조장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공식 만찬주로 명성 날려
“좋은 환경에서 만드니까 좋은 술이 나옵니다”
2003년 특허 받은 구수한 맛의 ‘검은콩 막걸리’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고개가 죽령(竹嶺, 해발 689m)이다. 삼국시대 때는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지역으로 오랜 기간 영토 분쟁지역이기도 했던 고개다. 삼국시대 이래로 봄·가을에 나라에서는 신라 아달라왕 5년(서기 158년) 죽령 길을 개척하다 죽은 죽죽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지금이나 그 때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술과 떡, 고기가 필수품이었는데 술은 물맛 좋은 죽령의 북쪽인 지금의 대강에서 빚어 올렸다고 한다.
지금 대강면에 터 잡고 있는 大崗양조장(사장 조재구)의 뿌리는 따지고 보면 천년의 술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백산맥이 영남과 호서를 갈라놓는 길목인 죽령은 험준하고 왕복 60리길로 대낮에도 산적들이 자주 출몰하던 지역이었다. 아무리 힘센 보부상이라도 혼자서는 넘기 힘들어 대강쪽 주막에서 묵으며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넘어야 했을 정도다.
현대에 들어서도 주막 촌이 있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술도가가 생겨나는 법이다. 죽령처럼 큰 고개가 있다 보니 영남, 충청, 강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어서 객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며 술 문화가 발전 할 수 있었으니 단양과 술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운명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강양조장에서 조재구 사장과 인터뷰를 하는 사이에도 지나가던 관광버스들이 들러서 막걸리를 사가는 모습을 보니 대강막걸리야 말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13년 ‘찾아가는 양조장’ 1호로 지정 받아
소백산과 월악산이 이어진 단양팔경은 풍경 못지않게 인심 또한 넉넉하고 후한 고장이다. 이런 토양 때문일까 조선의 건국 공신 삼봉 정도전 선생, 퇴계 이황, 추사 김정희와 단원 김홍도 역시 단양과 무관치 않다.
특히 단양은 물이 좋아 술을 빚으면 맛 또한 일품이다. ‘대강양조장’이 2013년 5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찾아가는 양조장’ 1호로 지정 받은 것 역시 막걸리의 맛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대강 양조장’은 1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강양조장(소백산술도가)은 1918년 현재 조재구 사장의 외증조부가 충주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2대는 조 사장의 할아버지가 3대는 1958년 교사출신인 조 사장의 부친 조국환(79세) 씨가 이어 받았고, 2008년 현 조재구 사장이 기업을 승계하여 4대째 이른다.
조재구 사장은 서울대학(농대)을 졸업하고 한진그룹 회사에서 9년간 홍보업무를 담당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친이 저렇게 힘들게 막걸리를 빚다가 혹 병환이라도 나시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더란다.
그래서 잘 나가던 회사를 1998년 접고, 가업을 이어 받기로 했단다. 조재구 사장이 가업을 이어 받기 위해 막걸리업계에 발을 들여놨을 때는 막걸리 시장 환경이 열악했었다.
조 사장은 “저 또한 아버지가 막걸리를 빚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고자란 탓인지 시장이 어렵더라도 양조장은 저의 생업이자 운명이란 생각을 가슴에 품고 살아 왔다”면서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양조장 일을 보기 시작하자 주위에서 더 걱정을 할 정도였다”고 했다.
‘검은콩 막걸리’ 청와대 만찬주로 간택
조 사장은 막걸리를 빚으며 어떻게 하면 젊은 사람들 입맛에 맞출 것인가를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검은 깨, 검은 콩, 흑미를 첨가해서 빚은 ‘검은콩 막걸리’다.
검은색 곡식은 6%정도 첨가 되었지만 일반 막걸리와는 확연히 구별이 된다. 마치 숭늉 맛이 나면서 시원한 목넘김이 일품이다. 2003년도에는 국내 최초로 ‘검은콩 막걸리’의 특허를 획득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5월 21일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그 고장의 명물이라며 대접받은 대강 막걸리를 “참 맛있다”며 여섯 잔이나 연거푸 마셨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그 맛을 잊지 못해 직접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해서 ‘대강막걸리’를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했으며, 주요 행사 때마다 “아주 맛이 좋아 계속 이것을 쓰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촌놈’ 소리를 듣던 노 대통령이 대강 막걸리에 필이 꽂힌 것이다.
한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이러한 일화는 2007년 하인즈 워드 선수의 청와대 방문을 계기로 세간에 알려졌다.
그래서 대강막걸리는 이때부터 대통령이 반한 막걸리로 유명해졌고, ‘청와대 만찬주’라는 닉네임이 불었다.
이 같은 노무현의 막걸리에 대한 애정에 감사의 뜻으로 대강막걸리 측은 퇴임식 날 봉하마을로 막걸리 2000병을 보냈고, 얼마 후 노 전 대통령은 조 사장에게 답례로 인삼을 선물했다고 한다.
전임 대통령이 보내준 귀한 선물을 영원히 보관할 방법을 고민한 조재구 사장은 인삼주를 담갔다. 이 인삼주 2병은 지금도 양조장 사무실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직접 재배한 복분자 따다가 복분자 막걸리 빚어
대강양조장은 대강면 외에 충주, 제천, 등지에서도 현지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6년 충북 관광상품공모전에서 대상, 2007년 우리 술 품평회 우수상 수상, 2008년 제1회 전통주 주류 품평회 동상을 수상 하는 등 대강막걸리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 시켰고, 2010년부터는 일본에 수출 길도 열었다고 한다.
조재구 사장이 정식으로 기업을 인수 받은 것은 2008년 2월. 이때부터 그의 부지런과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돼 2012년 4월에는 복분자 막걸리를 출시하게 이른다.
소백산 자락 석회암지대 해발 180m에서 용출된 암반수로 빚은 복분자 막걸리는 대강양조장이 직접 재배한 복분자여서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어 술을 빚기 때문에 술맛이 독특하다. 그 톡쏘는 듯한 맛과 향이 오랫동안 입 안을 자극했다. 현재 대강양조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술은 생막걸리, 검은콩 막걸리, 복분자 막걸리, 소백산 신선주, 오곡진상주, 청동동주 등인데 이 가운데 당연 인기 품목은 검은콩 막걸리다.
순도 6도인 검은콩 막걸리는 블랙 푸드의 대표 식품인 검은콩과 검은깨를 주원료로 안토시아닌의 성분을 통해 기존 막걸리의 효능보다 업그레이드된 막걸라는 평을 받고 있다.
대강양조장은 자연 속 ‘힐링 양조장“이 곳 단양은 예로부터 물과 산세가 좋기로 유명합니다. 술의 근원이 되는 물이 좋고 바라보는 산세가 좋은 이곳에 터 잡고 있는 대강양조장은 자연 속 ‘힐링 양조장’을 표방하고 있다.”고 조 사장은 말한다.
대강(大崗)양조장의 술병에 어떤 상표에는 대강(大江)이라 쓰기도 한다.
조 사장은 이에 대해 큰 대(大), 언덕 강(崗)을 쓰는 것은 이곳 지명이기도 한데 한자의 뜻은 ‘크고 부드러운 언덕’이라는 뜻으로 소백산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大江이라 쓰는 것은 죽령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이곳을 지날 때는 강처럼 되기 때문이라 했다.
조 사장 말대로 거대한 언덕이지만 부드러움이 있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이 흐르니 요즘 말로 한다면 ‘힐링’이 될 것이다.
땅속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전만 해도 대강양조장은 이 물을 길어다가 술을 빚었다고 했다. 그만큼 흐르는 물맛도 좋았다는 것이다.
조 사장은 “한낱 장사치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시작했더라면 지금의 대강 양조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끔 연구하고 노력한 것이 이제와 빛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내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드는 막걸리 체험
대강 양조장에서는 내국인및 외국인을 대상으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보여주기 식의 체험이 아닌 우리의 음주문화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것이 목적인데 우리의 전통 막걸리를 어떤 방식으로 빚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소백산에서 채취한 솔잎과 직접 재배한 복분자를 첨가한 솔잎막걸리 빚기 체험은 참가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 막걸리 만들기는 양조장에서 준비한 증기로 찐 고두밥에 소백산 천연수와 누룩을 넣어 잘 섞은 후, 마지막에 솔잎을 넣어주는 과정을 거친다. 솔잎을 넣는 이유는 솔잎 자체가 막걸리의 영양을 지켜주는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복분자는 농약을 사용하여 재배할 수 없는 농산물로, 대강양조장이 직접 재배해서 사용한다.
막걸리 만들기 체험이 끝나면, 막걸리 발효실로 이동하여 100여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항아리들과 만난다. 대강양조장에서는 흔한 스테인리스 용기 대신 옹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어떤 항아리는 갈라진 틈을 꿰맨 것도 있고, 소화(昭和) 원년(1926년 12월 25일)이라는 제작일자가 찍혀 있는 항아리도 있다. 엄청 큰 체하며 물을 길어 나르던 물지게 등이 전시된 갤러리는 또 다른 볼거리다.
대강양조장이 위치한 부근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식당들이 많다. 직접 기른 흑염소만을 요리하는 ‘갈매기식당’, 청국장과 곤드래밥이 유명한 ‘장림산방’, 대나무밥 전문점인 ‘장씨본가’, 손 두부 전문점인 ’고향집두부‘ 등 음식점이 15곳이나 된다. 특히 갈매기식당은 각종 향토음식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곳이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 사람들도 자주 찾던 식당이라고 하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맛 또한 일품이다.
또 이곳에는 맛집뿐만아니라 단양팔경이 모두 대강 양조장에서 20분 내외의 거리에 있으며, 특히 단양팔경 5경인 사인암은 차로 불과 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단양 현지에서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