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3)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3)

 

 

Dionysos 제전에서의 코모스(komos)

 

 

남태우

‘코모스(komos)’를 이해하기 위해서 알렉산드로스의 점령지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주궁 아파다나(Apadana)에서 일어난 전승의 잔치를 되돌아봐야 한다. 페르세폴리스 많은 유적 가운데 가장 재미나고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으로 꾸며진 주궁 아파다나(Apadana)의 넓은 홀을 지켜보던 고대 마케도니아(Macedonia) 왕국의 장군이자 학자인 에우메네스(Eumenes)는 연회가 너무 빨리 퇴폐적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권력과 철학을 뒤흔든 매춘부이면서 대왕의 정부였던 타이스(Thais)는 팀파니 음에 맞춰 회오리바람처럼 돌며 춤을 추었다. 빙글빙글 돌 때마다 짧은 키톤이 올라가 조각 같은 그녀의 음부와 엉덩이가 드러났다. 그럴 때마다 그녀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음란한 말들을 외쳐댔다. 타이스가 갑작스럽게 사람들 앞으로 휙 돌리더니 엄지발가락 끝으로 우뚝 멈춰 섰다.

Thais of Ahens with Tourch(1781)/ Joshua Reynolds

그리고 그녀는 고양이 같은 선정적인 동작으로 천천히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동안에도 음악은 끊이질 않았다. 마치 그녀가 움직이는 대로 음악이 쫓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 마이나데스처럼 티르소스(thyrsos)를 움켜쥐었다. 포도넝쿨에 휘감긴 티르소스의 맨 위에는 솔방울이 달려 있었다. 타이스는 그것을 높이 쳐들며 뭔가에 홀린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코모스(Komos)!” 그녀는 숲 속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는 마이나데스처럼 기둥들 사이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녀는 격정적인 춤으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난해한 ‘코모스(Komos)’의 의미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당시의 희랍인들은 탄생‧생장(生長)‧부패‧죽음‧재생의 상징화를 디오니소스를 통해 실현하였다. 여기에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변화와 자연의 질서에 대한 생각과 토론이 활발했으리라 짐작된다. 생사의 본질, 순환은 연극의 본질적 요소와 깊은 관계가 있다. 잠든 대지를 깨우고, 만물이 풍성해지며, 가을에서 겨울까지 외로이 침잠하는 드라마틱한 인간적 요소가 많은 ‘신’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기원전 8세기경부터 시작된 축제에 노래와 춤이 적용되고, 기원전 6세기경에는 일 년에 네 번(12월, 1월, 2월, 3월) 치러졌는데, 이 축제는 6-7일간 지속되었다. 이 기간동안 포도주를 엄청나게 마셨다. 주신을 찬미함이니 오죽하겠는가? 아마 연희 패거리들은 몰려다니며 떠들며 노래하고, 춤추고 농담을 하고, 구경꾼은 대꾸하고, 여기에 어떤 특정인을 비꼬고 흉내 내는 일들도 서슴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여기에서 희랍 희극 ‘코모스(Komos)’의 탄생배경을 찾을 수 있다. 포도주에 얼큰하게 된 ‘디오니소스 제전’에 참가한 주정꾼과 구경꾼의 음어적 요소가 숨겨진 대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코모스’를 ‘부락가(부락의 노래)’ 또는 ‘주정꾼의 노래’라고 한다. 독일어 희극적 ‘komish’이라는 형용사는 15세기에 ‘희극에 속하는’ 이라는 의미로써 프랑스 ‘코믹(comiqu)’에서 수용되었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보아 라틴어의 ‘코미쿠스(comicus)’에서 유래했고, 라틴어 ‘코미쿠스’는 그리스어의 ‘코미쿠스(komikos)’에서 유래했으며, 아 말 역시 ‘희극에 속하는’ 이라는 의미이다. ‘희극(die Komodie)’라는 말은 라틴어의 ‘코메디아(comoedia)’ 혹은 그리스어의 ‘코모디아(komodie)’에서 유래했으며, ‘코모디아’이라는 말은 주신이자 다산의 신 디오니소스를 위해 거나하게 취한 가장행렬을 의미하는 ‘코모스(komos)’에 그 근원에 있다.

‘코모디아(Komodia)’는 ‘코모스(Komos)’와 ‘오이데(oide)’이라 두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오이데’라는 단어는 노래를 뜻한다. 또 ‘코모스’는 디오니소스 축제 첫날 합창 경연대회가 끝난 후, 술 취한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행렬을 말한다. 그렇다면 행렬시에 군중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때 술 취한 사람들은 남근상을 들고 행렬을 했다. 그리고 남근에 관련된 노래를 불렀다. 다시 말해 ‘코모이디아’는 코모스 행렬이 부른 음탕하고 짓궂고 우스꽝스러운 남근에 관한 노래이다. 바로 이 노래에서 희극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지만 비극도 ‘디튀람보스

(Dithyrambos, 디오니소스의 송가)’에서부터 기원한다.

즉 희극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 축제 때 풍자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평소에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을 비꼬기 위해 흉내를 내거나 주위의 구경꾼과 간단한 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듯하다. 다른 추측은 디오니소스를 위한 축연 중 술에 취해 남근을 상징하는 장대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닌 사람들의 노래에서 비롯했다고도 한다. 희극(comedy)은 웃음을 주조(主潮)로 하여 인간과 사회의 문제점을 경쾌하고 흥미 있게 다룬 연극이나 극 형식을 말한다. 인간 생활의 모순이나 사회의 불합리성을 골계적, 해학적, 풍자적으로 표현한다.

 

기원전 5세기 최전성기에 달했던 그리스 ‘비극(tragedy)’이 ‘트라고스(tragos)’, 즉 염소나 산양을 제물로 바치고 디오니소스를 향해 부르던 주신 찬가에서 발전했다면, ‘희극(comedy)’은 마을 축제 때 술에 취해 돌아다니며 평소에 쌓인 불평불만을 터뜨리면서 왁자지껄하게 몰려다니던 사람들의 행렬인 ‘코모스(komos)’의 노래로부터 기원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486년에서 120년 사이에 256명 이상의 희극 작가가 활동했고, 2,300편 이상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비극은 그리스어로 ‘트라고디아(tragodia)’라고 한다. ‘트라고디아’는 ‘트라고스(Tragos)’와 ‘오이데(oide)’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오이데’는 알다시피 포도주를 마신 뒤 ‘노래’를 뜻하며, ‘트라고스’는 ‘산양(山羊)’을 뜻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트라고디아’는 ‘산양의 노래’라는 뜻이다. 왜 그럼 비극에 ‘산양의 노래’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대체 여기서 ‘산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게 되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째, 비극 경연 대회가 초기에는 ‘염소’를 상품으로 걸고 벌어졌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그런데 왜 하필 ‘염소’인가? 아마도 염소가 디오니소스와 각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겠다. 초기 비극에는 ‘염소’의 하체를 한 사튀로스들이 자주 등장하여 노래와 극을 이끌었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한 상세한 것은 후술된다. 그래서 비극에 ‘염소의 노래’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두 번째다. 셋째는 비극이 상연될 때, 사람들이 디오니소스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제물로 바친 것이 ‘염소’였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실제로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의 무대 앞 공간(orchestra) 중앙에는 제단의 흔적이 있다.

‘디오니시아축제’의 제의적 전통은 비극에 앞선 식전 세리머니 형식에서 비극 내부로 흡수되었을지도 모른다. 염소를 죽여 바치는 별도의 제의를 대신해서, 비극 자체가 제의로 발전했다는 말이다. 그리스 비극엔 춤추고 노래하는 코러스와 코러스를 이끄는 지휘자가 있다. 그들은 마치 제사장처럼 비극을 이끈다. 그리고 그들과 묻고 답하는 배우가 등장한다. 배우가 무대 위에 살려내는 등장인물(persona)들은 연민과 공포를 일으키는 끔찍한 일을 겪거나, 저지른다.

독수리가 제우스, 부엉이가 아테네를 상징하는 동물이듯, 이로부터 산양은 디오니소스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디오니소스는 곡물신의 계보를 잇는 신이다. 모든 곡물 신들은 겨울에 매장되었다가 이듬해 공동체의 먹거리로 다시 부활한다. 11~12월이 있었던 ‘시골 디오니소스축제’와 3~4월에 있었던 ‘도시 디오니소스축제’가 겨울밀의 파종과 추수와 관련 있다.

또한 ‘산양’은 점성학에서 12월 23일 동지 때부터 시작되는 염소자리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산양’은 풍요와 번영을 보장하는 태양이 일 년 중 가장 약해졌을 시기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 대지가 황폐해지고 곡물신이 몸이 찢긴 채, 대지에 매장되는 시기를 말한다.

실제로 ‘산양’은 험준한 바위산에 살며 끝없이 높은 곳에 오르려는 성향이 있다. 산에 올라보았자, 먹잇감 찾기는 점점 힘든 데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높은 곳에 오르려는 산양의 본성은 그들의 생존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산양은 인간과 많이 비슷하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꼭 생존에 필요한 것도 아닌데, 높은 곳에 오르려는 충동이 있다. 세속적으로 인간은 더 높은 지위를 원하고 더 높은 명성을 원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인간이 도달하려는 것은 세속적인 차원을 넘어선 저 무엇이다.

신화 속에서 디오니소스는 헤라의 질투심 때문에 양으로 변신 했던 적이 있으며, 그 외에도 동물로 변신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날고기 먹기(omophagia)’ 축제에서 ‘디오니소스교도’들은 제물로 바쳐진 살아있는 동물을 박코스의 또 다른 이름 ‘브로미오스(Bromios, 외치는 자)’, ‘타우로케로스(소의 뿔을 지닌 자)’, ‘타우로프로소포스(Tauroprosopos, 소의 얼굴을 한 자)’라는 이름으로 찬양하며 디오니소스의 현신(現身)으로 여겼다.

그리고 포도주를 마시고 만취된 상태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디오니소스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 뒤, 피가 뚝뚝 흐르는 상태의 날고기로 먹으며 열광했다. 보수적인 그리스인들에게 ‘디오니소스교’를 따르는 무리들의 이러한 광란적 일탈행위는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급기야 마이나데스가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악 소문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저스틴의 변증서에 따르면 초대교회 사람들도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악소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디오니소스의 찬가’를 ‘디튀람보스(Dithyrambos)’라고 한다. 사튀로스(Satyros) 극은 산양의 뿔과 당나귀의 귀와 꼬리를 단 배우들이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반인반수(半人半獸) 사튀로스와 실레노스(Silenos)를 연기하는 짧은 소극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 디오니소스 찬가’ 또는 ‘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비극이 ‘디튀람보스(Dithyrambos)’의 지휘자에서 유래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디튀람보스’가 어떤 것인지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간접적인 기록들을 통해 판단할 때 ‘디튀람보스’가 디오니소스 제전 때 불렸던 노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재로서는 그것의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위한 노래답게 ‘디튀람보스’는 우스꽝스러운 대사로 이루어진, 춤을 위한 노래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지하고 심각한 비극이 어떻게 디오니소스 찬가에서 유래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것은 그리스 비극의 기원을 해명하려 할 때 언제나 제기되는 아주 난해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 디오니소스 찬가’를 비극이 되게 했단 말인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비극이 씨앗의 단계에서 한편에서는 ‘ 디오니소스 찬가’에서 유래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영웅설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극의 내용을 이루는 줄거리는 대부분 그리스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디오니소스 찬가’와 전래되어온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영웅들의 이야기가 결합해서 비극의 바탕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 즉 ‘ 디오니소스 찬가’와 ‘영웅설화’는 각각 그리스 비극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디튀람보스’는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노래였고, 게다가 그것은 합창의 지휘자가 앞에서 노래하면 합창대가 후렴을 반복하는 그런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비극이 처음에는 압도적으로 음악 특히 합창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만큼 형식적인 면에서 ‘ 디오니소스 찬가’로부터 발전해온 것이란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이에 비해 비극의 내용을 보면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를 찬미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신의 행적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비극의 줄거리를 이루는 것은 전래되어 내려오는 다른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내용에 관해 볼 때 비극은 ‘ 디오니소스 찬가’보다는 영웅들을 노래했던 서사시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부른 합창이기 때문에 축제의 흥을 붇돕기 위해 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디오니소스를 찬미하는 것이 영웅들의 생애를 회상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일이기에, ‘ 디오니소스 찬가’가 서사시적 전통의 영웅설화와 결합하게 되었는지, 그 자세한 역사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다른 신이 아니라 디오니소스 신에 대한 찬가가 영웅들의 생애를 회상하는 비극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이 신이 변모의 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고 추정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신들이 나름대로 변장을 하고 인간에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특히 디오니소스는 아예 그 본성에서부터 변모의 신이라 할 만하다. 대개 그리스 신들은 확고한 성격과 관장하는 영역을 통해 규정되지만 디오니소스는 약간 다르다. 제우스신과 세멜레라는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것부터가 그렇지만, 그는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신적이기도 한 사이존재라 할 수 있다.

니체(F. Nietzsche)가 강조했듯이, 디오니소스는 모든 개별자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유자재로 이행하는 신이다. 그러니까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신은 하나인 모두(hen kai pan)를 상징하는 신이라 할 수 있다. 원래 하나의 신이지만 무한히 다양한 인격으로 변모할 수 있는 신이라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영웅들이 생애가 디오니소스의 무한한 삶과 인격 속에 녹아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디오니소스 신을 찬미하는 노래 역시 영웅들의 수난과 위대함, 이런 것을 회상하고 찬미하는 방식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것이 비극으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처럼 디오니소스 찬가가 영웅들의 생애에 대한 회상과 찬미로 변모했을 때, 그리스인들이 원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의심할 것 없이 그것은 디오니소스적 변모와 이행을 통해 영웅들의 삶에 참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참여를 통해 영웅적인 위대함을 닮는 것, 아니 스스로 위대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영웅들의 삶과 고난을 회상하고 찬미하기 시작했을 때 마음에 품었던 욕구가 아니었겠는가? 사실 비극의 형식부터가 그렇다. 서사시는 단순히 말을 통해 영웅들의 행적을 노래할 뿐이다. 그런 한에서 그것은 똑같이 영웅들의 생애를 모방한다 해도 객관적으로 모방한다 말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비극은 직접 행위 속에서 영웅들의 삶과 행위를 재현해 보이는 예술형식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똑같은 내용을 모방한다 하더라도 훨씬 더 긴밀하게 모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사시의 모방이 서술적 재현이라면 비극의 모방은 아예 동화인 것이다. 디오니소스가 온갖 영웅으로 변모하듯이 영웅들의 삶에 참여하고 동화되어 그들처럼 위대해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비극의 뿌리에 놓여있는 근원적인 충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디오니소스 제전이 영웅설화와 결합된 것은 모든 아테네 시민이 더불어 영웅들의 삶과 수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웅설화를 디오니소스 찬가와 결합시킴으로써 영웅적인 위대함과 숭고를 표현하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했다. 마치 디오니소스가 온 세상을 방랑하면서 온갖 사람으로 바뀌면서 수난받고 부활하고 하는 것처럼 아테네 시민들 역시 미적인 도취 속에서 영웅적인 인물의 위대함과 숭고에 참여해 그들 자신 그 영웅들처럼 위대해지려 했던 것이다. 비극은 바로 이런 영웅적 상승의 의지에서 태동한 예술이다.

그리스 비극의 근원적인 과제는 영웅적 숭고와 위대함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비극의 가장 내밀한 본질은 영웅숭배이다. 그런데 영웅적 정신의 위대함이 오직 비극적 고통과 수난 속에서만 자기를 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스인들이 깨달았을 때 영웅숭배의 예술은 비극으로 탈바꿈했다. 이렇게 해서 처음에 ‘디튀람보스’ 형식에 담긴 영웅설화에서 출발한 예술형식이 마지막에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공포와 전율 그리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비극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우리가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그리스 비극이 언제나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가 아닌 까닭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은 처음부터 고통 그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숭고를 표현하고 그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예술이다. 그런데 그것이 많은 경우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인 비극으로 나타나게 된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비범한 고통 속에서만 인간 정신의 숭고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 예술이 전체적으로 비극적인 것이 되었겠지만, 정신의 크기와 숭고가 언제나 직접적인 고통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므로 그리스 비극 속에는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따른 여러 가지 요소들도 같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이스의 “코모스!”라는 외침에 제일 먼저 응답한 사람은 알렉산드로스였다. 그래서 그를 또 한 명의 디오니소스라고 부른다. 그는 평소 디오니소스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코모스!” 그러자 모두들 대왕의 소리를 따라했다. “코모스!” 그리고 타이스는 벽에 걸려 있는 횃불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처럼 격정적인 춤을 추도록 부추겼다. 타이스는 알현실과 복도, 황궁의 내실들을 가로지르며 춤을 추었다. 억제할 수 없는 흥분으로 한껏 발기한 남자들과 반나체 혹은 나체가 된 여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여자들은 관능적인 몸짓으로 남자들은 욕망을 자극했다.

“ 디오니소스 신께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타이스는 외쳤다. 손에 들고 있는 횃불이 눈에 반사되어 그녀의 눈이 이글거렸다. 모두들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우오이(Euoi)!”(Dionysos 축제에서 Dionysos 신을 부르거나 디오니소스적 희열을 표현할 때 외치는 감탄사). 실제로 마이나스들인 여성들은 가정을 버린 채 언덕으로 모여들어 사슴가죽옷을 입고 담쟁이 덩굴관을 쓴 차림으로 제례 때 외치는 소리인 ‘에우오이(Euoi)!’를 질러댔다.

그들은 티아스(성스러운 무리)를 이루어 회향나무 가지에 포도넝쿨의 잎을 엮어 매고 끝을 담쟁이덩굴로 장식한 티르소이를 흔들며 피리나 팀파니의 반주에 맞추어 장작불 옆에서 춤을 춘다. Dionysos 신의 영감을 받게 되면 이 주신의 숭배자들에게 신비한 힘이 생겨 뱀과 동물들에게 마법을 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날고기를 먹는 오모파기아(omophagia) 축제에 탐닉하기 전에 산 제물들을 갈가리 찢을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는 환상에 빠지며 그 대 끊임없이 ‘에우오이(Euoi)!’를 외쳐댄다.

마이나데스(mainades)라고 불리는 이 종교의 여성 추종자들은 사슴가죽옷을 입고 담쟁이덩굴 관을 쓴 차림으로 제례 때 외치는 소리인 ‘에우오이!(Euoi)’ 소리치며 열광적인 입신(入神)상태에 들어갔다. 그들은 티아시(성스러운 무리)를 이루어 티르소스(Thyrsus, 회향나무 가지에 포도덩굴의 잎을 엮어 매고 끝을 담쟁이덩굴로 장식한 것)를 흔들면서 피리와 팀파니의 반주에 맞추어 장작불 옆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춤을 추었다.

“ 디오니소스 신께서는 이 야만인들에게 복수하기를 바라십니다.” “에우오이!” 포도주와 욕정에 정신을 빼앗긴 남자와 여자들이 함께 외쳤다. “전투 중 사망한 우리 병사들, 파괴된 우리 신전, 불타버린 우리 도시의 원수를 갚아줍시다.” 타이스가 외쳤다. 그리고는 문 옆에 걸려 있는 두터운 자주색 커튼을 향해 횃불을 내던졌다. “그렇다! 원수를 갚자!” 알렉산드로스가 정신이 나간 것처럼 그녀의 말을 따라했다. 그리고 커다란 시트론나무 가구를 향해 햇불을 집어던졌다. 벽에 붙어 그들을 뒤따르던 에우메네스는 그 어리석은 행동을 무기력하게 찾아보았다. 하여튼 열에 들뜬 무리속에서 이성의 눈빛을 가진 사람은 단 한명도 찾을 수 없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길이 치솟았다. 방 안은 불길에서 반사되는 주홍빛으로 인해 대낮처럼 환했다. 악령에 사로잡힌 듯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며 거대한 홀로, 정원으로, 주랑으로 흩어지며 불을 질렀다. 경이로운 왕궁은 사비시간에 회오리 같은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레바논의 시트론나무로 만든 수백 개의 기둥은 횃불처럼 불타올랐다. 불길은 천장을 핥으며 대들보와 격자천장으로 번져갔다. 사나운 불기둥 때문에 쩍쩍 소리를 내고 갈라졌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열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사람들은 넓은 뜰로 뛰쳐나와 춤과 노래와 섹스를 계속했다. 에우메네스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옆문을 통해 왕궁에서 빠져 나왔다. 바깥 계단 쪽으로 나가던 그는 아트리움의 카펫 위에 누워 있는 알몸의 타이스를 보았다. 그녀는 무아의 상태에 빠져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녀는 알렉산드로스와 헤파이스티온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의 폐허더미 속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이 자신들의 오두막으로 달려 나왔다. 바깥 계단 쪽으로 나가던 그는 아트리움의 카펫 위에 누워 있는 알몸의 타이스를 보았다. 그녀는 무아의 상태에 빠져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그녀는 알렉산드로스와 헤파이스티온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의 폐허더미 속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이 자신들의 오두막에서 달려 나왔다. 그들은 정신 나간 사람들이 저지른 미친 짓의 결과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세계 그 어느 궁전보다도 아름다웠던 왕궁이 불길에 잠겨 폭발하고 있었다. 왕궁이 지옥의 불길 같은 불꽃 속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회오리 같은 연기가 무너지는 왕궁을 에워싸며 별과 달을 가렸다. 페르시아 인들은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고 서서 눈물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대왕이 대연회를 벌였을 때 그의 이모형제라고 불리는 브도레마이오레스가 데려온 시녀 타이스도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아름다운 타이스는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요염한 모습으로 일어섰다. 술에 취한 채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오늘 저는 페르시아 왕들의 자존심을 부끄럽게 해 줄 만족을 맛보았습니다. 아시아의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떠돌던 고생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아테네를 불태운 저 크셀크세스의 궁전을 알렉산더의 눈앞에서, 제 자신의 손으로 불 질러, 지금까지 그리스를 위해 바다와 육지에서 싸우다 죽은 장군 어느 병사보다 더하게, 알렉산더 진영의 일개 여자가 페르시아 인으로부터 그리스인이 받은 헤아릴 수 없는 수모와 부정과 굴욕에 대하여 통쾌하게 복수하였다고 가는 곳마다 이야기될 수만 있다면 저의 기쁨은 한층 더 커질 것입니다.”

 

노장 파르트니온은 완강히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비롯한 장병들은 횃불을 받쳐 들고 춤추며 소리를 지르고 북을 치며 벽장에 불을 내질렀다. 이윽고 전나무로 세운 아름다운 기둥에 그것이 옮겨 붙었다. 승지와 패자사이에는 비극적 희극과 희극적 비극이 잔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쁨이 도가 지나칠 때는 슬픔의 눈물로 승화된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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