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의 에세이
쉽지 않은 일
쉽지 않은 일이지만 1
경기 포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전통술 제조장이 위치한 곳이다. 포천이라는 지명부터 맑은 물을 연상케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포천에는 무려 10여개의 양조장이 들어서 있다.
포천막걸리는 전국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든지 작은 구멍가게에도 포천막걸리를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포천의 어느 밀리는 도로를 가다보면 포천막걸리를 쌓아놓고 팔 정도로 막걸리는 포천의 명물이자 자랑거리이다.
이러한 포천막걸리의 명성을 더욱 드높이고자 포천 시는 2011년부터 향토산업육성사업을 수행하였다. 국비를 포함하여 약 30억 원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이 사업이 선정될 때 까지 나는 사업계획서를 쓰고 사업단을 꾸리고 실사를 받는 제반 과정의 실무적인 일을 했었다.
사업이 선정된 이후에도 교육과 컨설팅을 받았고, 사업방향성을 놓고 포천시 관계자들 및 다른 양조장들과 의견을 조율했었다.
이후 이해관계가 많이 어긋남에 따라 내가 당시 다니던 회사는 그 사업에서 손을 놓았다. 이후 이 사업은 업체 간의 불협화음으로 통합브랜드와 공동제조 등에 실패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애초부터 공동제조 등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성공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미 포천의 막걸리 제조장 들은 수십 년간 각자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동브랜드와 제조장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향토산업육성사업이 선정되기 이전에도 포천 시는 포천의 막걸리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가운데 포천 어느 거리를 막걸리 거리로 만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거리에서 포천의 10여개 양조장이 만든 술을 맛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지만 2
지난여름 중국의 청도맥주축제에 다녀왔다. 물론 청도맥주를 만드는 맥주 공장도 다녀왔다. 그곳에서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칭다오의 ‘원장맥주’를 마셨다. 원장맥주란 거르지 않은 약간 탁한 느낌이 드는 맥주다. 칭다오맥주 이외에는 다양성이 없었지만 원장맥주가 주는 신선하고 이곳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희소성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현지의 맥주 맛은 기대 이상으로 맛이 좋았고, 흔할 것이라 생각했던 칭다오맥주를 비닐봉지에 담는 봉지맥주는 기대 이하로 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10여 년 전에 중국에서 경험했던 문이 없던 화장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겨우 앉은 키 어깨 정도에 오던 화장실 벽 그리고 앞문이 없는 화장실의 난감함이란.
청도의 원장칭다오맥주가 주던 희소한 가치를 지닌 술축제가 있었다. 2013년에 했던 ‘당신의 이야기를 술로 삽니다.’란 주제의 전주전통술박물관이 주도했던 행사였다.
두고두고 이 축제가 기억에 남는 것은 전주 동문거리의 주점에서 전주의 특색 있는 술을 판매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각각의 주점에서는 지역의 밴드 공연이 펼쳐졌다. 혹은 술을 만드는 사람들과 술잔을 앞에 두고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전주의 가양주와 전주전통술박물관의 술교육생들이 빚은 술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전주술박물관이 만든 양조장을 중심으로 전주동문거리의 10여개 주점들이 풀어내는 다양한 술과 이야기는 가을밤을 전통주로 매혹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쉽지 않은 일이 2013년 가을, 전주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전주의 막걸리 거리
전주는 포천이 하려했던 막걸리거리가 있다. 그것도 한 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주의 삼천동을 필두로 서신동, 평화동 등에 막걸리 집만 죽 늘어서 있는 거리가 있다. 참으로 부러울 일이지만 이곳에서 파는 막걸리는 거의 한 회사의 막걸리가 독점하고 있다.
막걸리 안주로는 상다리가 부러질 만 하지만 막걸리의 다양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그 회사의 막걸리가 수입산 쌀을 국내산으로 둔갑하여 팔았다고 해서 뉴스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그 회사의 시장장악력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쟁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가치에 가치를 더하자
2013년 전주에서 펼쳐졌던 다양했던 술을 만나는 것이 너무 짧아 문득 서글퍼졌다.
전통술을 새로운 상상력과 자본으로 환기시키며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동력이 미약해보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질서는 그만큼 견고하고 그 벽은 넘기에는 너무 높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국내산 쌀을 쓴다고 해서 우리의 막걸리가 맛이 더 좋다거나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품종의 쌀을 쓰느냐에 따라 혹은 쌀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맛을 변주해내는 일본의 사케. 또한 어떤 재료 혹은 홉 그리고 보리를 어떻게 가공하냐에 따라 더 다양한 맛을 내는 맥주는 우리 전통주가 음미할 대목이다.
농업의 산물을 가공하여 그 특성을 발현시키는 노력을 더하지 않고 인공적인 감미료로 자꾸만 술맛을 결정지으려 해서는 농업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 속에서 희소한 가치를 가진 문화 혹은 지역의 의미 또한 지분을 갖지 못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전통주의 맛은 농업의 가치이며 그 가치를 어떻게 발현시켜 나가는가에 큰 점수를 주어야 한다.
이 막걸리는 추청으로 만들어서 맛이 이렇다 혹은 신동진벼로 만들어서 어떤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 글쓴이 유 상 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