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如旅

人生如旅

 

임 재철 칼럼니스트

 

 

빠른 시간의 속도는 올해도 어김이 없다. 짧은 순간이지만 내면을 돌아본다. 늘 삶이 무엇인지 묻지만 답이 쉽지 않다. 트리거가 등장한 막다른 위기의 세상에서 스멀스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눌러본다. 내면을 돌아보기 위해 사색하지만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은 늘 부족하고 작다. 세상사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마음 가는 대로 그냥 지켜볼 뿐. 인생은 여행과 같거늘. 마음속으로 지향하는 바가 있으면 그 자체가 정향이 되어 부지불식간에 그 길로 간다는 교훈을 믿는다.

 

시원한 찬바람에 시름 날려 버리고 흩날리는 낙엽처럼 평화롭고, 아무리 바빠도 멈추는 법을 배우며 경치를 보며 분위기 있게 사는 인생, 즉 멈추고 즐길 줄 알아야 한 다. 인생이라는 여정이 그렇기에. 옛 문헌에서 보듯 각기 다양한 삶을 살지만 그 삶에 따라 그림자가 따라다니고 영욕의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 말없이 따라다니는 그림자는 이리가도 저리가도 따라다니며, 그게 우리 삶의 또 다른 모습이고, 그래서 인생은 여행과 같은 거다.

일찍이 동파육(東坡肉)으로 유명한 북송의 시인 소동파는 인간의 삶은 꿈과 같고 나그네와 같다(人間如夢, 人生如旅)라고 했다. 말하자면 인생을 한 편의 연극과 같으니 마음껏 체험해 보라며 연극으로 비유하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인생을 흔히 여행에 빗대어 왔다. 그리하여 누구나 나그네가 되었고 여행길을 떠난다는 것은 곧 삶의 길을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사람이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십중팔구다. 그렇듯 누구나 당장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생계에 매인 몸이라 그럴 수도 없고, 길을 따라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나름대로 또다른 버킷리스트를 늘 준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희로애락과 미지로 가득찬 광활한 여행길 위에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리듬에 충실하고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행길을 가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인생여행은 어느 여행이었을까? 필자는 매번 가는 여행이 다 인생여행이었다. 무척 추운 겨울날 목도리를 칭칭 감고 중국 천안문 광장을 정처 없이 뛰어다니기도 했고, 어떤 날은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윈난(雲南) 다리(大理)의 얼하이(洱海) 호수와 창산(蒼山)주변을 거닐었다.

 

아마도 여행자의 가장 큰 행복은 여행길 위에 있다. 현실에 매몰된 딱딱한 일상을 벗어나 떠나기 전부터 설렘이 있는 여행길에 오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행복한 여정이다. 지인 중 한 사람은 공항에만 출정하면 설렌다고 하는데, 여행은 새롭게 경험하고 만나는 많은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직접 몸으로 체감함으로써 자기가 누구인지 실감할 수 있는 것이고, 자기 정체성의 확인은 물론 자연스럽게 자신의 꿈도 올곧게 하나씩 키워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한번쯤 버킷리스트로 꿈꿔 본 여행지, 이를테면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체코,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페루, 아르헨티나… 이곳에서 여행자가 되어 자유롭게 도시 구석구석, 그리고 교외의 보석 같은 여행지에서 걷고 싶은 길을 걷는다면 너무 좋은 인생여행 버킷리스트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사진 한 장에 꽂혀 떠나는 게 여행이지만, 무엇보다 여로(旅路)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사람들 이야기는 말 그대로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 그로 인해 어느새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자신의 안목이 쑥 자라 있을 것이다. 즉 자연과 인간이 최고의 교양인 이유다.

<삶과 술>매체 칼럼에서도 몇 번 서술한 적 있지만, ​나그네길 위에 인생이 있고, 여행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삶과 죽음이 있다고 믿는 필자이다. 가령 일본의 학자인 ‘오마에 겐이치’의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이란 책에서 지적한 코스트 문제도 떠오른다. 여행의 가장 기본이 비용이지만 세상에서 완전무결함은 없다. 여행길은 항상 약간의 결핍을 남겨야 지속할 수 있고, 조금 부족함이 남아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여행자는 필히 여행지의 삶을 챙겨보고, 여행지의 삶을 지켜내는 여행이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운명처럼 다가올 여행과의 이별에도 대비해야 한다.

인생은 가는 여행길이고, 가다 보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있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제로로 돌아가게 되는 바람 같은 인생이다. 또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제각기 다른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이며 여정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인생여정에서 기가 막힌 삶의 풍정이 있고, 인생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더 깊이 깨달으며 완성할 수 있는 행복한 여행스케줄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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