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8)

흔히 ‘정렬적인 스페인 여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플라멩코(flamenco)를 추는 아가씨의 불타는 치마(flamenco)’(flamante-찬란한, 불꽃같은’이란 말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음) 놀림, 뜨거운 화염에 휩싸인 듯 한 눈길까지…. 특히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는 프랑스의 작곡가로서 그의 가장 뛰어난 걸작 오페라 <카르멘(Carmen)>을 본 사람들은 기똥찬 미녀 카르멘 그녀에게 홀딱 반한 밀수 감독관 돈 호세(Don Jose)를 죽도록 홀리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돈키호테도 “사랑은 모든 신분을 동급으로 만든다.”라고 했다. 카르멘에게 반한 호세 또한 경찰직을 버리고 사랑을 위해 그녀처럼 밀수꾼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마침내 카르멘을 따르는 남자들에 대한 질투 때문에 그녀를 죽인다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프랑스의 19세기 소설가, 역사가 메리메(Prosper Merime, 1803-1870)가 스페인에 여행 중 들었던 ‘질투 때문에 정부를 죽인 산적’에 관한 사건을 토대로 <카르멘>이라는 소설을 1845년에 썼다. 소설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해서 거의 잊혀진 상태였는데, 30년 후 비제의 동명의 오페라가 성공함으로써 소설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메리메의 소설을 토대로 대본은 알레뷔와 메이약이 공동으로 썼고, 비제는 1875년에 작품을 완성 시켰다.
스페인 여자에게는 더러 그런 마력이 있다. 스페인 아가씨들은 은근히 남자를 홀리는 몸짓과 화법(coquetería, garbo)에 능하다. 그것은 ‘짚시(Gypsy)’ 들의 춤처럼 타고난 매력이다. 특히 돈키호테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본 14~16세 소녀들은 참으로 예쁘고, 제스추어가 모두 깜찍했다. 카르멘처럼 재미나 호기심으로 남자를 홀리는 짓궂은 소녀들도 있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술집 아가씨들, 마리또르네스(Maritorens)나 하녀들도 똑같이 그냥 재미로 늙은 기사를 두고 놀리고 장난치는 아가씨들이다. 스페인에서의 남녀 인사는 볼에 키스하는 것이 예사인데, 이런 깜찍한 아가씨가 장난스럽게 볼에 입술을 짐짓 머문다고 상상해보라….
안달루시아나 마드리드 여자들이 이렇게 바람끼가 있다면, 갈리시아 여자들은 우리처럼 정이 많고 곧잘 우수에 젖는다. 반면에 바르셀로나 여자들은 예의 바르고 정숙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런 구분은 그야말로 관광 소개용 레퍼토리에 불과하다. 스페인 사람도 사람 따라 그 성격이나 행동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다만 라만차의 둘시네아(Dulcinea)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때, 지역적으로 앞서 말한 안달루시아나 마드리드 소녀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이 가능하다. 다만 그 아가씨를 직접 본 일이 있는 산초의 기억으로는 남자보다 더욱 사나운 뚝심 좋은 농사꾼 아가씨였다나….
어떻든 돈키호테에는 한 번도 둘시네아의 본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산초의 기억이나 거짓말로 조작된 투박한 농촌 아가씨들 모양이 전부이다. 돈키호테가 몬떼시노스 동굴(Cueva de Montesinos)속에서 마법에 걸려 갇혀 있는 둘시네아를 보았을 때도 그 모습은 공주가 아니라 산초가 말한 추한 시골 여자의 얼굴이다.
즉 둘시네아는 나쁜 마법사의 마법에 걸려 그 예쁜 모습이 일그러지고 흉한 농사꾼 처녀의 모습으로 둔갑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돈키호테가 끝까지 둘시네아를 그 흉악한 마법으로부터 풀어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을 안쓰럽게 보아야 한다. 물론 피나는 노력을 한 것은 수백 대의 매를 맞는 산초의 엉덩이나 상수리나무였지만….
그러나 둘시네아는 그런 흉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 소녀는 “…그가 살던 마을에서 가까운 한 고을에 아주 아름다운 농사꾼 소녀 하나가 살았는데, 그가 한때 그녀를 속으로 짝사랑했지만, 그 여자 쪽에서는 알지도 못하고 눈치도 못 챘던…” 그런 아가씨였다. 돈키호테가 기억하여 마음의 공주 마님으로 삼은 소녀는 그녀를 잘 알지도 못했던 산초의 말 속의 여인이 아니고 어리고 예쁜 아가씨였다. 더구나 짝사랑에 빠져 바라보는 그 산골 소녀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했으랴…. 그 소녀는 백번 천 번 돈키호테 기사의 영원한 마음의 연인으로 모실만한 여리고 아름다운 뮤즈였다.
만약 둘시네아인지 그녀의 원래 이름 알돈사(Aldonza)인지, 후에 돈키호테가 자신을 평생 사모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 번 직접 만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그녀가 내 제자처럼 ‘이제 다 늙은’ 여자가 되어, 농사짓고 햇볕에 그을려 추한 농사꾼 부인이 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돈키호테가 본 둔갑한 둘시네아는 세월이 일그러뜨린 옛 소녀의 오늘 흉한 모습이었을 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풍차를 향해 돌진하던 돈키호테의 모습과 연결하여, 현실을 무시하고 공상에 빠짐으로써 자기 나름의 정의감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성격의 유형을 ‘돈키호테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햄릿이 부왕의 복수를 지나치게 망설인 것에 빗대어 모든 일에 깊이 생각하고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결여되고, 사색적·회의적·내성적 경향이 강한 인물형을 ‘햄릿형 인간’이라 말한다.
<햄릿> 중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대사는 햄릿이라는 인간의 전형적인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돈키호테형과 햄릿형은 서로 대립되는 극단적인 인물형이므로 모든 사람을 이 두 부류로 나누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성격이 두 인간형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편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연찮게 1616년 4월 23일 세계 문학계의 큰 별 두 개가 나란히 졌다.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그들이다. 52년간 세상을 살다간 셰익스피어는 38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를 남겼다. 그는 2만 1,000여개의 단어를 사용했으며, 1,800개가량의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중 상당수는 아직까지 영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훌륭한 작가라도 2,000개 남짓한 어휘를 구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셰익스피어는 초창기엔 희극에 집중하다가 <햄릿> 이후 비극도 써냈다. 희극과 비극 모두에서 인류가 사랑하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는 셰익스피어밖에 없다.
반면에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보다 17년 먼저 태어났다. 젊은 시절의 세르반테스는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웠으나, 왕실은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전투 중 다쳐 평생 왼손을 사용하지 못했고 투르크군에 붙잡혀 5년간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다. 세르반테스의 명성은 주로 걸작 <돈키호테>에서 나왔다. 당시 유행하던 기사도 문학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했던 <돈키호테>는 이상적 인물 돈키호테와 현실적 인물 산초 판자(Sancho Panza)의 우스꽝스러운 모험담을 그렸다. 후대의 평자들은 <돈키호테>를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한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그들이 창조한 상반되는 캐릭터로도 오래 기억된다. 숙부에 의해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대명사다. 반면 비쩍 마른 말을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기사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간을 일컫는다. 글로서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건 신비한 일이다. 그렇게 창조된 인물이 400년 후 사람들의 머리에도 하나의 전형으로 살아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유엔 교육 과학 문화 기구(UNESCO)에서는 두 천재의 사망일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1995년에 제정되어 1996년부터 실시된 기념일로 매년 4월 23일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 Book and Copyright Day)’로 지정하였다.
아폴로니안과 디오니시안
음주가 지나치면 사람을 흐트러지게 한다. 그러나 공자는 <논어 향당편>에서 ‘유주무량불급란(唯酒無量不及亂)’이라고 하였다. 이 ‘유주무량’은 공자의 주량을 ‘공자백호(孔子百壺)’라 칭하며 공자가 술을 마시면 백병을 기울여 비웠다는 말로 진화되었다.
인간들의 음주행태로부터 주신 디오니소스를 차용하여 ‘디오니시안(Dionysian)’은 ‘디오니소스형의 인간’, 즉 ‘마시고 떠드는 인간형’을 창출되었다. 그 뜻이 그 뜻이지만 ‘흥청망청하는 인간형’, ‘제멋대로의 인간형’, ‘열광적인 인간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반대의 인간형은 ‘아폴로니안(Apollonian)’이다. ‘디오니시안’과 달리 규율을 준수하고 온화하고 이성적이며 균형 잡힌 인간형을 말한다.
디오니소스는 포도를 재배하고 술을 빚는 모든 기술을 인간에게 가르쳤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러는 것일까? 디오니소스는 너무도 광적이다. 디오니소스는 그를 따르는 여신도들과 광야를 누비고 다닌다. 술에 취한 채 산과 들을 쏘다니며 사냥을 한다. 살아있는 짐승을 찢어 살과 피를 먹는다. 디오니소스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하여 그들의 살과 피를 대지에 뿌린다. 그리고 지치면 땅에 그대로 누워 깊은 잠에 빠진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잔인한 피의 축제였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다. 빛, 의학, 음악, 시, 젊음, 남성미 등을 주관하는 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폴로로부터 연유한 ‘아폴로니안’, 즉 ‘아폴로 형 인간’의 의미는 저절로 유추돼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아폴론은 문명의 신이다. 아폴론은 인간에게 문자를 주고 예술을 주고 갖가지 문명의 이기를 주었다. 인간이 미개의 시대를 벗어나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세상 만물에 대해서도, 그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해서도 꿀리지 않고 인간이 주체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문명의 힘이었다.
문자는 정보의 전달이나 지식의 축적을 넘어 이성적 논리체계를 세우는 혁명적 커뮤니케이션이다. 법과 제도는 거대한 조직사회를 운영하는 사회적 통제시스템이다. 문명의 탄생으로 빚어진 이러한 것들은 자연과 본능으로부터 이성과 질서를 구축했다. 아폴론이 왜 활의 신이고 음악의 신이겠는가? 활(사회적 통제시스템의 상징)을 쏘고 수금(음악이라는 문명예술을 상징)을 연주하는 아폴론은 이성(理性) 그 자체다.



‘아폴로니안(Apollonian)’과 마찬가지로 ‘디오니시안(Dionysian, 질탕하게 마시고 떠드는)’이라는 말은 니체가 새롭게 정의하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니체는, 그리스의 술의 신이며, 신비한 예언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감정과 직관, 관능과 무제한의 예술적 표현과 결부시켰다. 그러나 이 형용사(소문자 ‘d’로 시작되는 Dionysian)는 오늘날 예술에 대하여 적용되기보다는, 아폴론적인 합리성의 반대인 대취나 난교 파티와 같은 비이성적인 행위에 더욱 빈번히 쓰여지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항상 문화적인 엘리트보다는 대중을 위한 신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그의 열성적인 숭배자는 주로 여성들이었는데, 여성들은 고대 세계에서는 제2급의 시민이었다. 게다가 이 특별한 여성들은 신에 의해서 흥분이 되었을 때에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그 다음에는 산짐승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들이 가장 얌전한 때의 행동이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한 이러한 축제와 제전들은 ‘디오니소스축제(Dionusia)’, 혹은 디오니소스의 로마 이름인 ‘바쿠스’를 따서 ‘바쿠스축제(Bacchanalia)’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신은 고장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름과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따라 공식적인 디오니소스 – 비교적 뒤늦게 판테온에 추가되었다 – 는 실제로 여러 고장의 다양한 신들의 혼합물이 되었다.
그 신들 대부분은 식물과 출산의 신이었고, 디오니소스에 후에 특히 나무 열매나 포도나무와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다. 장차 디오니소스는 수많은 그리스의 식민지에 포도나무를 전파하고, 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포도주 양조장을 설립하게 한 공로로 숭배를 받게 된다. 민중의 신으로서의 디오니소스는 위압적인 동료 아폴론보다는 덜 강력하고 유명도가 좀 떨어지지만, 그의 전설은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그것은 기묘한 출생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며 그의 나머지 인생과 같이 시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아폴로니안(Apollonian)’이란 말은 요즘에는 ‘합리적인’, ‘질서가 있는’, ‘제어된’, ‘조화가 이루어진’이라는 의미이지만, 옛날에는 단순히 ‘아폴론과 닮은’, 혹은 ‘아폴론에 속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폴론은 그리스의 태양신이고, 예술과 시, 음악의 후원자였다. 이 단어는 19세기 말 이전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었다.
19세기 말에 독일의 언어학자이며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신의 저서 <비극의 탄생(The Birth of Tragedy)>(1872)속에서 고전적인 그리스 예술의 저 유명한 ‘아폴론적(Apollonian)’ 경향과 ‘디오니소스적(Dionysian)’ 경향 사이의 구분을 표현하면서 일반화되었다. 니체에 의하면, 우리들이 그리스 최고의 작품들 속에서 감탄해 온 자제와 균형과 조화와 개성의 아폴론적인 특성은 작품의 절반만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아폴론적 경향은 난폭하고, 억제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은 자연과 제휴한 힘, 만취, 익명성, 무절제의 디오니소스적인 경향에 저항해서 투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테네인들은 아폴론(Apollon)적 지혜를 추구하면서도 근심을 덜고 환희를 느끼게 만들어주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통해 팍팍한 삶의 긴장과 고통을 잊고 새로운 힘을 충전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리스인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신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인근에 함께 있었을 디오니소스 신전을 중심으로 한 이곳에서 매년 주신 디오니소스를 찬미하는 그리스인의 노래와 춤이 넘쳐났다.
창조의 일면에 파괴가 따르는 자기 모순적인 생성을 일반적으로 ‘디오니소스적’이라 한다. 또한 언제나 같은 일이 영원히 되풀이되는(고착화되지 않는) 세계를 ‘디오니소스적 세계(Die dionysische Weltanschauung)’라 한다. 반면에 ‘아폴론적 세계’는 가상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세계는 암담하고 공포로 가득 차있고, 차가운 기운만이 인간의 주위에 도사리고 있는 광란의 바다 위에서, 하나의 조각배 위에 그 허약한 배를 진심으로 믿으며 한 뱃사람이 앉아 있는 것처럼 고통의 세계 한가운데에 개개의 인간들은 ‘개별화의 원리’를 믿고 의지하며 고요히 앉아 있는 그런 세계이다. 신념과 원리에 사로잡혀 있는 자의 조용한 앉음새의 최고의 모습이 ‘아폴론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