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적당히 마셔라
봄철이 되면 새내기들 세상이다. 대학이나 직장 등에 새로 갓 들어온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순수한 한글이면서 감칠맛이 나는 말이다. 이제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면 모를까 새내기란 소리를 듣기는 영원히 틀려 버렸다. 그 때가 그리운 것을 보면 늙은 모양이다.
신입사원이란 말을 듣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주름진 얼굴을 쳐다보며 허송세월로 보낸 세월이 아쉽게만 하다. 그렇다고 막상 그 때로 돌아간다면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으며 괜스레 젊음 타령이다. 나만 그런 것인가.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라때는 신입이 들어오면 선배들이 술을 사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선배가 따라주는 술을 못 마신다고 피하면 앞으로 직장생활하기가 힘들어진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은 터라 덥석덥석 받아 마셨다가 죽을 고생을 하기가 다반사였다.
모르긴 해도 요즘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의 MZ세대들은 술을 못 마시면 못 마신다고 당당하게 말을 한다. 그게 바람직하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대학 새내기들이 선배들이 퍼주는 술을 무턱대고 마셨다가 사망에 이르는 사고도 발생하곤 했는데 아마 요즘 그랬다간 큰일 날 것이 뻔하다.
이참에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며칠간의 공백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 시기에 학교에서 음주교육을 시키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회든 학교든 성인이 되면 술 마실 기회가 많은데 술 마시는 요령이라 든다 주도 같은 것을 가르쳐 준다면 술로 인한 병폐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말이 아름답고 예쁘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어떻게 이해를 하나 하는 말이 꽤 많다. 이번 칼럼제목을 “적당히 마셔라”고 하면서 과연 적당히 마시라면 얼마를 마셔야 하나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 뿐인가 어떤 물건을 사면서 2개 또는 3개 주세요가 아니라 서너 개 주세요라고 해도 가게주인은 알아서 준다.
새내기들에게 술을 적당히 마시라고 하는 것은 자기 주량을 넘지 않게 마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장수할 수 있다는 조사 자료도 있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심리학자 찰스 홀라한 교수는 55~65세의 중 노년층 1824명의 지난 20년간 건강의료기록을 토대로 하루에 마시는 술의 양과 일상적인 건강생활과의 상관관계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 △적당히 마시는 사람 △아주 조금만 마시는 사람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 등 4그룹으로 나누고 하루 음주량, 사회활동의 활발정도, 음주로 인한 문제, 건강 상태 등을 분석 한 결과 술을 아예 입에 대지 않거나 많이 마시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 반면 술을 적당히 마시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주당들에겐 솔깃한 분석 자료다.
한편 미국 예일대의대 예방연구센터의 데이비드 카츠 소장은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적당한 음주가 건강의 으뜸 조건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라며 “양날의 칼인 술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자기의 상태에 맞춰 조절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술을 꽤 마시는 사람들도 보통 “나는 적당히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술을 마시면서 몇 잔을 마셨는지 세면서 먹질 않기 때문이다.
‘근주자적근묵자흑(近朱者赤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서진(西晉) 때의 문신·학자인 부현(傅玄)의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나오는 말로 붉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게 물들고,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게 물든다는 고사성어다.이는 착한 사람과 사귀면 착해지고, 악한 사람과 사귀면 악해짐을 비유하는 말로서 술을 배울 때도 매한가지다.
술만 마시면 주사를 부리며 행패를 부리는 주태백이들과 어울리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는 삶을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경험이다.
그러면서 누구 땜에 술을 마셨다는 등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이는 올바른 음주법이 아니다. 술을 잘못배우면 본인은 물론 가족 더 나아가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새내기들은 소인배가 되지 말고 대인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린 선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로 “소인(小人)은 탓을 남에게 던지고, 대인(大人)은 탓을 자기 안에서 찾는다”고 한다.
술만큼 좋은 음식도 없듯이 술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새내기 때부터 술을 잘 배우면 늙어서 그 만한 친구도 없다.
(본지 발행인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