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술자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술자리

 

박정근(문학박사, 황야문학 주간, 작가, 시인),

 

 

박정근 교수

요즘 필자는 서울과 부안을 오르내린다. 고향에 귀농의 집을 임대하여 텃밭을 가꾸며 살면서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일로 일정이 바쁜데 농사일을 더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더 바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짧지 않은 거리를 매주 오가는 생활은 다른 일을 줄이거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오랫동안 노래를 부르는 활동을 즐기며 살아왔다. 성가대, 합창단, 중창단 그리고 독창 연주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하지만 귀농하면서 많은 활동에 대해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우선 일요일 교회에 참석하기 위해 주말에 상경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요일에 예배를 마치고 중창단 연습이 끼어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랫동안 봉사하던 성가대도 작년 말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요일에 있는 사향가인 합창단 정기출석이 불가능하게 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단장을 비롯한 동료단원들에게 이해를 부탁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 연습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어제가 바로 합창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전날 은퇴하는 교수들과 질펀하게 술을 마신 후유증으로 몸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약속이니 지켜야겠다고 무거운 몸을 끌고 갔다. 대학동기가 반갑게 맞아주고 자리를 마련해준다. 늦어서 발성연습도 없이 끼어서 연습을 이어갔다. 어떤 노래는 채 악보도 받지 않아서 친구의 악보를 함께 보면서 노래한다.

목의 상태가 좋지 않아 목소리가 시원치 않다. 그래도 시니어 단원들과 노래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은퇴한 교사들의 합창단이라 노래를 열심히 불러도 음정이 조금씩 떨어지고 호흡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면 어떠랴. 노래하는 삶은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다.

연습이 끝나자 동기친구가 간단하게 소주 한 잔 마시자고 이끈다. 이제 한 달 뒤에나 만날 수 있으니 몸이 좀 좋지 않아도 술을 나누는 것이 좋을 듯하다. 친구와 둘이 가자는 단출한 자리인 줄 알고 따라갔는데 다른 선후배 단원들이 함께 동참한다. 열심히 참여할 수도 없는데 멀리서 오랜만에 왔다고 그냥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너무 인간적인 분위기가 작은 감동을 준 모양이다.

 

단원 각자의 일이 있고 몸이 좋지 않은 선배도 있다. 동기 친구도 간수치가 너무 올라가 삼개월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은 소주 석 잔만 마시겠다며 양해를 구한다. 설혹 술을 못 마신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술 대신 물을 마시며 정을 나누면 될 일이다. 강 선생은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돌린다. 이것이야말로 마음의 정을 나누자는 상징적 행위이리라. 술은 분명 취하려고 마시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선배는 위가 좋지 않아 물잔에 소주 한잔을 부어 마신다. 오늘 모든 단원들은 술잔에 우정과 존경을 담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술꾼들은 술자리마다 여러 명분을 달아서 건배하는 습관이 있다. 건강과 행복을 비는 마음을 마음속에 담아 술잔을 건넨다. 그런데 마음은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지 않은가. 술잔에 마음을 담아주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느낀다. 술꾼들은 간단한 건배사를 붙여 마음을 전하는 문화를 창조하고자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늘 두 선배는 기꺼이 술값을 위해 마음의 지갑을 열겠다고 후배들에게 선언한다. 돼지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소박한 술자리이지만 그들의 자상함이 어느 건배사보다 값지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먼 부안에서 왔으니 술 한 잔 안 사고 어떻게 보내겠냐고 반문한다. 그런 정감이 어린 말을 들으니 소주 세 병이 다섯 병으로 늘어난다. 그래요, 한 달에 한번은 꼭 참석할께요. 마음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진정 어린 말이 울려 퍼진다. 나이 칠십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는가. 사랑과 우정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 제일 행복이리라.

 

늙어가면서 몸의 장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단계에 들어서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전철에서 졸다가 역을 지나쳐서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아내는 그런 나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술을 끊을 때가 되었다고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필자는 술을 절제하라면 하겠는데 아직 술은 끊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건강을 생각해서 열흘이고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지낼 때도 있다. 하지만 술을 끊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인간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라고 강변하고 싶다. 시니어 합창단 선후배들과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귀갓길은 내내 감동으로 출렁거렸다.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술자리

 

그대가 따라준 술 한 잔 마시고

그대의 따뜻한 우정을 느낍니다.

그대의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고

우정을 한 잔 함께 따릅니다.

그대가 상추에 삼겹살 한 조각 넣어서

내 손에 다정하게 건네주니

감동의 눈물이 거세게 물결을 만듭니다.

그대가 술 한 잔 따라놓고

간수치를 생각하며 머뭇거리니

내가 대신 술을 마셔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오늘 술을 마시지 않고

우정의 묘약을 듬뿍 마셨습니다.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술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우정의 강물이 내내 출렁거렸습니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