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교실(31)
와인과 정신건강
김준철 원장 (김준철와인스쿨)

“술은 현명한 사람을 기만하고, 점잖은 사람을 떠들게 만들고, 심각한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치가 있다.”라고 어떤 시인이 말한 적이 있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정신이 흥분되어 언어, 동작이 활발해지고, 기분이 좋아져 웃기를 잘하고 말이 많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평상시 침울하고 소심한 사람에게 더 뚜렷이 나타난다. 그리고 치밀한 사고력, 이해력, 주의력, 판단력 등이 얼마간 저하되고, 평안하고 느긋한 기분이 된다.
◇ 중추신경 억제작용
알코올은 중추신경을 마비시킨다. 초기에는 외관상 흥분상태를 보이나 이것은 진정한 흥분이 아니고 알코올이 뇌의 억제조절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하부신경계통이 억제에서 벗어나 흥분된 것 같이 보이는 것이다. 뇌는 계산하고 판단하는 고차원적인 정신 기능에 관계하는 신피질과, 감성이나 본능적인 기능에 관계하는 구피질로 구분되어 있는데, 알코올은 먼저 신피질에 작용하여 그 동작을 둔하게 만들기 때문에, 고차원적인 정신활동이 둔해지고 저차원의 구피질이 본래의 기능을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술에 취했다는 것은 뇌신경 세포의 활동이 억제된 상태로서 근심, 걱정을 진정하는 면도 있지만, 술의 마취작용, 즉 억제작용으로 자제력을 상실했다는 의미도 된다. 불안이 해소되고 긴장이 풀려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반면, 이성의 브레이크가 제거되어 심각한 사고력이 저하되고 본능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평소 하고 싶어도 못했던 말이나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제력을 잃고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인간사가 모두 이성의 똑바른 판단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려면 약간은 흐트러진 모습도 필요하다.
◇ 작업 농도
이쯤 되었을 때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3-0.05%로서 빈속에 소주나 와인 반병 정도 마셨을 때이며, 긴장감이 풀려서 안팎의 자극에 둔감하게 되어 가벼운 졸음이 오고, 마음의 우울기가 없어지면서 쾌활하게 된다. 이때를 이른바 작업 농도라고 할 수 있다. 즉 남녀 간에 일은 이 때가 가장 잘 이루어진다. 여기다 무드를 살리는 촛불과 달콤한 와인이 있다면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그래서 결혼은 판단력이 부족할 때 하는 것이고, 너무 똑똑하면 결혼을 못한다는 말이 나온 것인지 모른다.
최근에 나온 기사를 보면, 소량의 술을 마신 사람들이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보다 이성의 얼굴을 더 매력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글래스고 대학 심리학과 베리 존스 교수팀이 이 대학 학생 80명을 상대로 한 연구 결과, 소량의 알코올을 섭취한 남녀 대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이성의 얼굴을 25%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알코올이 얼굴의 매력을 인식하는데 사용되는 뇌의 일부분을 자극시켜서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와인의 진정 및 항우울 작용
와인의 진정 및 항우울 작용은 수천 년 전부터 널리 이용된 정신건강에 대한 효과이다. 와인의 이러한 효과는 오랫동안 베일에 싸인 신비한 것으로 여겼지만, 요즈음 과학적으로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와인은 긴장과 걱정에 대한 온화한 진정작용을 하며,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대화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이 작용은 낮은 혈중알코올농도에서도 상당기간 유지된다는 점은 많은 실험에 의해서 확립된 이론이다.
물론 이 작용은 어떤 술이든지 다 가지고 있지만, 와인은 동일한 농도의 알코올에 비해 작용이 느리고 오래 지속된다. 이는 와인의 알코올이 우리 몸에서 흡수가 늦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와인에 있는 알코올이 아닌 다른 성분이 완충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와인에는 뇌의 기능에 관계하는 감마 하이드록시부티르산(γ-Hydroxybutyric acid)라는 성분이 50-100ppm 가량 들어 있어서 뇌의 기능에 생리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엘라그산(Ellagic acid)은 진정작용을 하는데, 이 성분이 들어있는 와인, 맥주, 코냑은 이 성분 때문에 다른 술에 비해서 긴장을 해소시키는 효과가 크다.
특히 피노 누아(Pinot Noir)라는 포도로 만든 와인 즉 부르고뉴 와인의 진정작용이 보르도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한다. 실험에 의하면 한 잔의 와인은 긴장도를 35%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 와인은 노인의 간호사
서양에서는 일반 의사들이 ‘와인은 노인의 간호사’라고 말하듯이, 와인은 노인들에게 가장 효과가 크다. 사실 노인들은 자식들의 배은망덕을 비롯하여 주변의 소외감, 인생에 대한 허무감 등으로 상당히 불안하고, 심지어는 공포감까지 갖고 있다. 생각보다 심한 것이 노인들의 스트레스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이러한 스트레스와 늙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이 증상은 대부분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에 와인 한잔은 온화한 진정작용을 함으로써 수면제의 표면적인 수면효과와 비교되지 않는 효과를 발휘한다.
또 와인은 장기간 질병에서 회복되고 있는 환자나 수술 후 회복기 환자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며, 좋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면서 생길 수 있는 우울한 감정을 환기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이런 때는 일반 와인보다는 달고 알코올 농도가 높은 디저트용 와인의 효과가 더 크다. 와인은 위액과 산도가 비슷하고 소화과정도 필요 없는 식품이라서 회복기 환자에게는 가장 좋은 강장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정상인의 식사 방식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메스꺼움이나 불쾌감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럴 때 와인은 정상적인 식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절제해야 ‘신의 선물’
마음이 병들어 육체에 나타나는 심신병(心身病), 즉 노이로제, 스트레스 등의 현대인이 많이 가지고 있는 성인병은 적당량의 와인으로 그 해소 효과가 최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도를 지나서 더 마시면 지적 활동은 점차로 감퇴되고 도덕을 무시하고 자신에 넘치는 태도가 되며, 세밀한 주의력을 필요로 하는 동작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므로 가장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절제가 필요하다.
와인은 어디까지나 적당량을 마셨을 때 유익한 것이지, 과음은 우리의 육체나 정신건강에 독약이 될 수밖에 없다. 와인의 긍정적인 면을 최대한 살려서 건강생활을 지속시키고, 화목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선에서 기분 좋게 마시는 습관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서 적절한 음주는 알코올의 효율성을 높여주며, 많은 연구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절대 금주자 보다는 적당히 마시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 것이다. 와인이 우리 인생에 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신의 선물”이 되려면 적당량을 마셔야 한다.
◇ 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소믈리에 코스: 25년 03월 11일(화) 오후 7시 개강,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오후 10시, 주 1회, 15주, 수강료 150만 원
▴포르투갈, 스페인 남부 와이너리 문화 탐방:25년 6월 14일(토)-23일(월) 8박 10일, 문의는 장봉인 실장 010-6484-0258 “한국와인협회 와인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