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테이스팅 조건의 재정립: 온도와 잔의 중요성

얼음에 담겨 있는 와인들 @픽사베이

 

이대형 연구원의 우리 술 바로 보기(214)

 

전통주 테이스팅 조건의 재정립: 온도와 잔의 중요성

 

 

인간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취한다는 환각 작용을 통해 신과의 연결고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뚜렷한 치료 수단이 없던 시대에는 약으로도 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술은 특정한 목적을 위한 도구에서 벗어나, 그 자체를 즐기는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의 술 문화는 술 그 자체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 왔다. 이러한 축적의 결과가 와인의 테이스팅, 서빙 방법, 음식과의 페어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와인 테이스팅 순서 @쳇GPT 생성 이미지

주류 테이스팅 중 가장 체계화되어 있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것은 와인 테이스팅이다. 와인 테이스팅은 인간의 눈, 코, 입, 귀, 촉감 등 오감을 활용해 와인을 느끼고, 그 품질과 맛을 평가, 분석해 타인에게 묘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테이스팅 순서도 대체로 통일되어 있다. 먼저 눈으로 술의 상태를 확인하며 색과 외관을 관찰한다. 이후 시음 잔을 가볍게 흔들어(swirling) 코에 대고 올라오는 향을 맡는다. 한 모금 입에 넣어 입안 전체로 펼쳐 맛을 본 뒤, 마지막으로 내뱉으며 후미를 확인한다. 이러한 와인 테이스팅 순서가 여러 주류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모든 주류의 테이스팅이 이와 비슷한 절차를 따른다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와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테이스팅 조건들이 매우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음 글라스는 ISO 인증(3591:1977 규격)을 받은 국제 규정 글라스를 사용한다. 와인의 색상을 관찰할 때는 흰 종이나 흰색 벽을 배경으로 활용한다. 이 외에도 중요한 요소가 시음 온도다. 와인은 스타일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스파클링와인은 6~8도, 화이트·로제 와인은 7~13도, 레드 와인은 13~18도가 적정 시음 온도로 알려져 있다. 물론 와이너리에서는 제품의 향과 맛을 최적으로 느끼게 하려고 별도의 온도를 제시하기도 한다. 전통주 역시 와인의 테이스팅 방식을 참고해 활용하고 있다. 다만 탁주의 경우 술지게미의 양에 따라 목 넘김 등의 평가가 조금 달라질 뿐, 대부분 테이스팅 방식은 유사하다.

국제표준화기구는 시음용 와인 잔

이러한 테이스팅 조건들이 모여서 소비자에게 최적의 와인 향과 맛을 전달하려 한다. 자연스럽게 술의 향과 맛을 잘 즐길 수 있는 술 온도나 잔의 형태에 관한 연구도 함께 발전했다. 그러나 이런 와인의 음용 온도와 잔 연구가 전통주에는 충분히 접목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조인들조차 자신의 술이 몇 도에서, 어떤 잔에 마셨을 때 최고의 향과 맛을 내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아쉬움은 이번 우리 술 대축제에서 여러 양조장 부스를 다니며 직접 느낀 점이다.

 

이번 우리 술 대축제에서 가장 크게 느낀 문제는 술의 시음 온도였다. 일부 부스에서는 냉장 쇼케이스에서 꺼낸 술을 얼음물에 넣어 지나치게 낮은 온도로 시음시키고 있었다. 부스에서는 “향이 풍부하니 잘 느껴보라”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시음은 4도 정도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온도에서 과연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최근 막걸리와 약주도 적당한 상온에서 마시면 향과 맛이 더 잘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최소 10~15도 정도는 되어야 향의 확산과 입안의 질감이 훨씬 좋아진다. 소주도 향을 강조하고 싶다면 15도 전후가 적당하다. 물론 일부 술은 저온 시음이 오히려 맛을 살리는 경우가 있어, 이런 술은 낮은 온도로 제공해도 무방하다. 전통주의 테이스팅 조건 역시 와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많은 양조장이 전통주의 테이스팅 온도를 지나치게 낮은 범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생산자들이 술이 5~10도 또는 그 이하에서 마셔야 맛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얼음에 담겨 있는 와인들 @픽사베이

물론 어떤 술은 5~10도에서 마셔야 시원한 느낌을 살릴 수 있어 온도를 낮게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이러한 온도 설정은 과거부터 마셔오던 맥주와 소주의 낮은 음용 온도에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맥주와 소주는 다른 나라에 비교해 더 낮은 온도를 권한다. 일부에서는 냉장된 맥주를 냉동고에 넣어 차갑게 만든 맥주잔에 따라 마시거나, 희석식 소주를 아예 냉동고에 보관해 판매하기도 한다. 이는 향으로 마시는 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맥주는 목 넘김의 시원함을 위해, 소주는 알코올 향과 쓴맛을 줄이기 위해 낮은 온도가 선호되었다.

 

온도는 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우리가 향을 느끼는 것은 음식에 포함된 향 분자가 코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주류는 온도가 너무 낮으면 알코올과 향 분자가 충분히 휘발되지 않아 향을 잘 느끼지 못한다. 반대로 온도가 너무 높으면 향이 빠르게 휘발되어 제대로 감지할 수 없다. 따라서 각 술이 가진 향을 가장 잘 느끼기 위해서는 그 술만의 적정 온도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대축제에서 시음한 술 중 상당수는 지나치게 낮은 온도로 제공되어 본래 향을 충분히 느끼기 어려웠다. 얼음물 대신 단순히 얼음 위에 병을 올려두는 정도만 해도 향을 느끼기 좋았을 것이다.

 

얼음 위에 있는 전통주 @쳇GPT 생성 이미지

다음은 술잔의 문제다. 전통주 업계는 여전히 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과거에 비해 좋은 술이 많아졌지만 이를 제대로 즐길 만한 잔의 선택지는 부족하다. 특히 박람회에서는 잔 문제가 더욱 뚜렷하다. 이번 대축제에서는 아주 작은 플라스틱 잔이 많이 사용됐다. 가격이 높은 전통주나 소주를 시음시키면서 큰 종이 잔을 쓰기에는 술의 양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작은 잔은 술의 향과 맛을 섬세하게 느끼기 어렵게 한다. 대부분 한 번에 입에 넣고 넘기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충분한 테이스팅이 아니다. 대축제에서도 와인잔과 같이 향과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잔 형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세척 시설 마련, 시음 방식의 일부 유료화 혹은 쿠폰제 도입 등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작은 용량의 시음용 잔

이번 우리술 대축제를 보며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젊은 층의 전통주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해박한 지식이었다. 이들에게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한 음료가 아니라 즐기기 위한 음료로 자리 잡고 있다. 양조장은 젊은 소비자들이 전통주를 더 풍부하게 즐길 방법을 온도와 잔을 통해서도 알려줘야 한다. 무엇보다 양조장은 자사 제품의 향과 맛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온도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와인은 모든 제품이 같은 온도에서 시음 되지 않는다. 우리 전통주 역시 이제는 술마다 고유한 테이스팅 온도를 설정하고 자기 술의 맛과 향의 꼼꼼하게 살릴 때이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한국술 연구를 하는 연구원

농산물 소비와 한국술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하는 농업 연구사. 전통주 연구로 2015년 과학기술 진흥유공자 대통령 상 및 20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등을 수상 했다. 개발한 술들이 대통령상(산양삼 막걸리), 우리 술 품평회 대상 (허니와인, 산양삼 약주) 등을 수상했으며 다양한 매체에 한국술 발전을 위한 칼럼을 쓰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로

www.koreasool.net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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