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철의 취중진담
올해의 끝에서
이렇게 또 한 해가 간다. 시간 참 빠르다. 빨리 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일이기도 한데 말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니 송년회도 많다. 누구나 그렇듯 이맘때면 가까운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미안한 사람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며 이렇게 저렇게 한잔하게 된다.
늙어가는 필자 역시 술보다 사람이 그리운 건지, 한세상 지나온 세월이 안타까운 것인지, 선후배와 친구들을 일으키고 부축하면서 낮술이 흐르고, 아니면 저녁 술이 오가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모여 앉으면 홀연 수십 년을 뒤로 후진해서 옛날을 상기하기도 하고 묵직한 여운이 남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대목에서 한잔 또 한잔…
인생은 인연으로 모이고, 한잔의 정으로 따뜻하며,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흩어진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오면 뜨겁게 끌어안고, 가면 태연하게 놓는 것인 것 같다. 삶의 어느 순간들도 그렇다. 사람은 큰 욕심에서 행복을 잃고, 너무 바쁘면 건강을 잃고, 의심하면 신뢰를 잃고, 따지면 우정을 잃는다. 그리고 시간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그래서 내공으로 포용하며 살아야 한다.
한편으론 헛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어떤 사람은 생활이 궁핍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쾌활하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왜냐하면, 생활 방식이 각기 다르고,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도 본인의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기쁨과 슬픔이 있는지 통찰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고, 슬프다. 이 또한 술 마실 핑계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그 중심과 언저리에서 고뇌하고 앓아내는 눈물겨운 일들은 늘 넘치지만, 인생과 행복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가 저마다 마음을 돌아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날이 가장 좋은 날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상태의 생활법이 가장 좋은 것이다.
어쩌면 올해는 참으로 극적인 날들과 동시에 어려운 세상이었다. 비상계엄으로 인한 내란 정국에 서민의 삶은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다. 시간을 직선적으로 보지 않지만, 다행히 새 정부 출범 후 전반적인 국가 시스템이 복원돼 가고 있다. 시시비비 가리는 것에 지쳐서 모든 생각을 닫아버리고 싶을 때가 많지만, 정치·경제적 혼란이 사라지고 그저 선량한 서민들의 평범한 하루의 삶과 일상이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지기를 소원한다.
세상이 요동치고 세상사가 뭐라 해도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른다. 굴곡 없이 한세상 지나가기가 어렵다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늙어가고 또 한 해가 지나간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알겠다. 그러니 쉴 때는 쉬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또 밤을 새워 술 마시지 말고, 우리가 모두 한 줄기 빛이 되어 자신의 세월을 부드럽게 대하는 삶이면 좋겠다.
혹자는 말한다. 오는 것을 알고,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해야 비로소 가는 길을 알 수 있다고. 또 어떤 술꾼은 이르기를 팔 할의 생애를 술로 물들였지만, 어느 날 진정으로 지상의 일 한 오라기 없이 술 한잔하자고 청할 친구 하나 없을 때가 올 거라는 진심을 말한다. 뭉클해지는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모든 것은 때가 있다’라고 한 거다. 바람이 지나가고 꿈에서 깨어나고 나그넷길을 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도 다 그렇다. 하지만 가장 좋은 시기는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웃게 할 이유를 찾으며 자신의 길을 갈 때라는 생각이다.
우리 삶에 수만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해도, 정말 서글픈 일은 항상 곁에 머물 줄 알았건만 떠나버린 친구들의 그리움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양노흥 건설교통신문 대표도 가슴과 어깨를 짓누른다. 이미 먼 곳으로 간 이름들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흔히 우리가 의리만 지키고 살아도 밥은 먹고 산다고 연말에 우리에게 곁을 내준 사람들이 새삼 고맙다.
오늘도 술 한잔해야겠다. 말인즉슨 저 자신에게도 한잔 따라 줘야겠다. 그냥 한 해 잘 버텼다고 사무치게 한 잔 주고 싶다. 대개 한 해가 저무는 이즈음에는 뭔가 정리를 하고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일의 끝뿐 아니라 다음날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힘겨운 시절, 독자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제정신으로 버텼을까? 올 한해 응원해주시고 곁에서 힘 되어 주신 독자 여러분들, 온 마음으로 축복하고 감사와 사랑을! (임재철 편집위원)
*김원하 발행인의 교통사고로 인해 이 번호 취중진담은 임재철 편집위원이 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