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憤怒조절이 안 됩니까
어느 술자리든 시작은 화기애애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살아 보자고 시작한 술자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시끄럽고, 개중에는 가슴에 품었던 화를 토해내는 사람들 때문에 기분을 잡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술자리다.
한두 잔 술잔이 오가면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술자리에서 절대 금기라고 하는 정치얘기, 돈 자랑, 종교얘기가 흘러나오다 보면 삶의 지혜를 듣거나 사랑이나 문학 같은 소리는 낄 자리를 잃고 방황한다.
최근 돌아가는 정치판 이야기가 스멀스멀 새어나오면 정치편향에 따라 모새의 기적처럼 두 패로 갈라지기 십상이다. 중용이 설 자리는 사라진지 오래다. 특히 최근에는 더욱 그렇다. 오직 흑이냐 백이냐지 회색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회색분자(灰色分子)를 좋지 않게 보는 것은 흑백논리(黑白論理)가 지나치기 때문인데 따지고 보면 회색은 중용(中庸)이다. 스님들의 법복이 잿빛은 중용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야야! 술맛 떨어지게 그 딴 소리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셔”하며 술잔을 권하면서 “야 그런데 어떻게 될 것 같아…”
절대로 정치 이야기는 하지말자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실상은 정치 이야기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쩐 일인가. 인간의 본능이 다 그렇지 않은가. 야동 보는 것을 죄악시하는 판사들도 젊은 날 봤다는 증거(?) 때문에 최근 곤혹을 치르는 모양이다.
술자리에서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지만 술자리를 파할 만큼 분위기를 잡치는 사람들은 분노(憤怒)조절장애자들이다.
분노조절장애자들은 말 그대로 분노를 통제하거나 조절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인 행동이나 언행을 보이는 질환을 말한다. 평소에는 예의도 바르고 남을 배려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모범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분노는 본능적인 감정이 순간적으로 말 또는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며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분노조절 문제는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러다가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내서 주변 사람들이 당황하게 만든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흥분돼서 위아래도 몰라보고 난리를 친다. 심해지면 주위의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밥상을 뒤 엎어버리기도 한다. 이들은 남한테 화가 나기보다 내 스스로한테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벌이는 일이 많은데 이런 분노조절장애자들을 정신건강의학에서는 ‘간헐적 폭발장애’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즘은 스트레스가 쌓이는 사람들이 많아서인가 주변에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진 것 같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사랑으로써 눈 노를 이기고 선으로써 악을 이겨라 베풂으로써 인색함을 이기고 진실로써 거짓을 이겨라” 법구경(法句經)에 나오는 말이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가 분노조절장애자임을 알고 있다면 가급적 술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요즘 세태를 보고 평범한 사람들도 분노를 이기지 못해 돌발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안타깝다.
모처럼 친구들과 갖는 술자리는 격식 같은 것 집어치우고 편하게 말도 놓고 야자하며 마실 수 있지만 개중에는 알코올 중독자처럼 폭주하는 친구들도 있어 분위를 해친다. 적당히 마시고 일어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끝장을 보려고 한다. 이런 부류가운데 대개는 자기가 술 살 때가 아닌 공술자리거나 남이 사는 술자리일 때가 대부분이다. 술자리 매너치고는 꽝이다.
술도 음식이다. 음식도 과식하면 체하거나 소화불량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술도 적당히 마셔야지 과음을 일삼으면 결국엔 술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조지훈 시인은 ‘술은 인정이라’는 글에서 “제 돈 써가면서 제 술 안 먹는다고 화내는 것이 술뿐”이라고 했지만 술을 장기간 마셔본 필자는 자신의 주량보다 약간 적게(70% 정도) 마시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나이 들어 알게 되었다. 계영배(戒盈杯)가 있다면 이 잔으로 마셔도 좋지 않을까.
김원하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