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9)

<델피 아폴론 신전>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9)

 

남태우 교수

‘디오니소스적 세계’는 바로 이러한 ‘개별화의 원리’가 파괴되면서부터 나타난다. 아폴론이 고통의 현실을 영원하고 조화로운 진리성, 완전성으로 극복하려고 하지만, 디오니소스는 그 현실의 원초적 공간으로 달려간다. ‘주신 찬가’에서 말하는 마취적 음료에 의해 사람들은 흥분과 격정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원초적이며 근원적이고 동력적인 생명력을 지닌 인간들의 세계이다.

고통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자연과 화해의 제전을 펼치게 된다는 것으로 디오니소스적 도취는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에 있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많다. 인간의 육체에서 생겨나오는 감정과 열정과 욕망을 통해 부단한 변화 속에서 스스로를 창조하고 생성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원불변의 세계, 피안의 세계, 신의 세계에 대한 부정이다.

<델피 아폴론 신전>
<버가모 디오니소스 신전>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젊은 시절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1872)이란 빼어난 저서에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비교하면서, 디오니소스의 대칭적 혹은 균형적 역할에 주목하였다. 그에 따르면 아폴론의 미와 중용은 감춰진 고통 위에 근거한 것이며, 이를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디오니소스라 주장한다. 따라서 “아폴론은 디오니소스 없이는 살 수 없으며”, 디오니소스의 무절제는 “고통에서 탄생한 진실, 모순, 기쁨이 자연의 심장에서 솟아오르는 언어로 말하는 것처럼 드러난다”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니체는 ‘낮과 아폴론’을, ‘밤과 디오니소스’를 비유했다. 아폴론이 ‘이성’을 수호하는 존재인 데 비해, 디오니소스는 매우 ‘감정적’이고, 도취되었으며, 광기를 지니고 있다. 자연을 환희로 가득 채우는 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도취 속에서 디오니소스적인 흥분에 빠지게 되고, 흥분이 고조되면서 자기 망각 속으로 사라져 가게 된다. 디오니소스 제식을 통해 피와 와인은 서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요한은 디오니소스와 예수를 연관지었으며, 니체도 찢겨 죽은 디오니소스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비교할 수 있었다.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아폴론적 인간인 조각가의 예술과 디오니소스의 예술인 비조형적 음악예술이 그 기원과 목적에서 크게 대립하고 있다는 우리 인식은 그들의 두 예술 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에 결부되어 있다. 두 개의 몹시 상이한 충동은 대체로 공공연히 대립된 채 서로서로 보다 힘찬 재탄생을 유발하며 공존해 나간다.

그렇게 ‘예술’이라는 공통의 단어만이 외견상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는 그 대립적 충동의 투쟁은 지속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리스적 ‘의지’의 어떤 형이상학적인 기적을 통하여 그들은 결혼하여 나타나고, 이 결혼 속에서 디오니소스적이기도 하고 아폴론적이기도 한 아티카(Attica, 고대 그리스 아테네 지역) 비극이 형성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영향을 받은 니체에게 삶이란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리자면 현실의 삶이란 삶이 불가능한 질서가 없는 혼돈의 세계인 맹목적 의지의 세계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진리를 알기 위한 것이었고, 진리를 알게 되면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우울한 철학이었다. 그러나 니체에게 있어 철학이란 진리를 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 하는 것으로, 진리를 알았더라도 다시 진리를 잊고 돌아서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행한 이들이 바로 그리스인으로 니체는 이를 ‘그리스인의 명랑성’이라고 말한다. 그리스인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양가성을 알고 있는 것과, 생이 충만하게 하는 기술인 예술을 알고 있었기에 위대하다. 이러한 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비극’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은 명백히 쇼펜하우어의 ‘의지(Wille)’와 ‘표상(Vorstellung)’에 대응한다. 세계의 본질인 맹목적 의지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면, 그 의지가 드러나는 표상은 아폴론적인 것이다.

이를 그리스 비극으로 보자면 그것은 언어와 음악으로 언어는 아폴론적인 것으로 연극(각본)이라고 보면 간단하다. 음악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그리스 비극의 공연에는 언제나 합창단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이 그리스 비극의 두 번째 축이다. 니체는 여기서 음악, 곧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이고, 그 본질을 예술로 성립시켜주는 아폴론적 형식이 연극이라고 말한다.

생의 진실은 살 수가 없는 영역, 혼돈의 세계, 자연의 세계이다. 또한 생이란 사이렌의 노래처럼 따라가면 돌아올 수 없으나(자기존재성 상실), 엄청난 도취의 힘이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흐름이 있고, 끊임없는 모순이 있고, 엄청난 도취력이 있는 자연이란 음악과 유사하다. 그러나 춤과 노래의 세계가 그것을 재현하고 있다면 이미 거기서 심미적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찌를 때, 프로메테우스가 간을 쪼일 때, 즉 살 수가 없는 생이 현신할 때, 합창단이 노래를 시작한다. 즉 음악이 있다. 음악의 기원은 자연에 있을지 모르지만, 음악 정신의 기원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있다.

간단히 말해 오이디푸스와 소포클래스의 구분이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지적능력에 도취되어 스스로 몰락해가는, 인간의 지성이 극에 달했을 때 몰락하는 존재라면, 소포클래스는 이러한 오이디푸스를 무대로 올려 그 세계를 관객에게 보여주며,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고 돌아서 이야기해주는 존재이다. 즉 아폴론적인 것은 혼돈의 세계를 드라마로 만들어주는 존재. 혼돈의 요소들을 구성하여 연결해주는 존재이다.

관객들은 몰락하는 오이디푸스를 보며 몰락의 끝에 코러스의 음악을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카타르시스는 황홀함, 해방감, 여기서 관객들은 생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가상을 맛본다. 참혹한 혼돈의 삶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힘(Dionysos 적인 것)과 그것을 이야기로 구성해 보여주는 힘(아폴론적인 것)을 통해 살만한 삶인 아폴론적 가상으로 변화한다. 그리스인은 이것을 알고 있었고 이것이 그리스인의 현명함이자 그리스인의 우아한 명랑성이다.

 

디오니소스의 탄생과 그 의미는 물론 니체에 의해 확대해석 되고 있지만, 그 가치성은 지대하다. 니체가 디오니소스에게서 신화적인 개념, 즉 도취와 광기의 광포한 신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 상통한다. 디오니소스는 늘 그 자신 속에 구원의 희망을 간직한 생동적이며 도래하는 신인 것이다. 니체에게 ‘비극적-디오니소스적 사유’는 세계와 삶의 미학적 정당화 이론에 기여한다. 미학적 정당화란, 삶이란 어떠한 ‘경악과 모순’ 에도 불구하고 “파괴할 수 없이 강력하며 즐거운”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삶의 본질은 학문을 통해서 정당화될 수 없고 고통과 모순을 그 본질로 하는 예술에서만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비극적-디오니소스적 사유’가 니체의 초기 미학에만 국한되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 비판, 언어철학 그리고 관점주의 속에 구현되며, 나아가 니체 철학의 핵심적 개념인 ‘힘에 의지’,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생성의 무죄’, ‘창조의 놀이’, ‘니힐리즘’ 그리고 ‘운명에 대한 사랑’ 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니체 전체 사상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해석은 결코 무리한 시도가 아니라고 본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비극적 상태’에서 가장 고조된 파토스로 스스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이전의 철학적 전통에서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바를 언급한다.

니체의 디오니소스 해석과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의 디오니소스 해석을 비교해보는 것 역시 흥미로운 작업일 수 있다. 종교학자 엘리아데에게 디오니소스의 광란적인 체험은 신적인 빙의(憑依)로 밖에는 설명할 수없는 생명력과 우주적 힘의 합일을 드러낸다. 신자들은 디오니소스 신이 당한 수난에 참여하여 그것을 다시 체험함으로써 신과 일체화된다. 니체에게도 디오니소스의 체험은 박해와 저항 그리고 재생의 힘을 상징하며 디오니소스의 찢어짐과 고통 그리고 재생의 과정 자체가 우주론적 현상으로 확대 해석되지만 중요한 것은 니체에게는 그러한 디오니소스의 삶과 죽음이 끊임없는 생성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탄생과 성장과정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생명력과 불같은 열정을 지닌 다분히 불안전하고 인간적인 특성을 지닌 신이 디오니소스이며, 이는 인간 중심과 존중의 사상인 고대 휴머니즘이 싹튼 그리스의 사회적 환경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인간은 신들과 달라 질서와 조화 속에서만 살 수 없는 것이다.

우주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부조화와 파격, 재창조를 위한 파괴와 같이 끊임없는 자극과 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디오니소스는 의미심장하게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다. 더불어 와인은 인간의 지적능력과 정신을 고양시켜 주고, 삶에 기쁨과 환희를 주는 세속적인 의미도 부여받게 된다. 또한 신과 인간이 함께 마시고, 신과 인간의 교감을 가능케 해주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대립적인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탄생과 성장을 둘러싼 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아폴론은 올림포스의 12주신 가운데서 제우스 다음으로 숭앙받는 지위에 있었다. 그는 태양의 신이자 예술의 신이었는데 또한 예언과 궁수의 신이었다. 또한 빛나는, 찬란한 이라는 뜻을 가진 포이브스 아폴론(Phoebus Apollon)이라 불렸다. 아폴론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특별한 숭배는 공상적이고 모호하며 형태 없는 것과 반대되는 지적이고 단호하고, 특정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편애를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된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원래는 12주신 가운데 들지도 못하다가 나중에야 주신들 가운데 그 역할이 가장 미미한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Hestia) 대신 12주신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술의 신이자 황홀경과 공포의 신, 야성의 신이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둘 다 제우스의 서자였다. 하지만 아폴론의 어머니 레토는 비록 정실은 아니었으나 여신이었고,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아폴론은 태어날 때부터 뭇 신들의 사랑을 받은 유복한 신이었고 디오니소스는 너무나 기구한 이력을 지녀서 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인 듯 한 느낌을 주는 불행한 신이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헤라의 질투 때문에 출생이 순탄치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제우스가 레토(Reto)를 가까이 해 아이를 갖게 한 사실을 안 헤라는 온 그리스 땅에다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렸다. 태양 아래 드러나 있는 땅이면 어느 땅이든 레토에게 출산할 장소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만일 명령을 어기면 단숨에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리라는 처벌 조항까지 달았다. 레토는 몸 풀 자리를 구해서 그리스와 에게해의 수많은 섬들을 다 헤매 돌아다녔다.

더욱이 레토는 쌍둥이를 배고 있었다. 하지만 헤라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어떤 땅도 레토의 간청을 들어 주지 않았다. 출산이 임박한 레토가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곳은 바로 델레스(Delos) 섬(떠올라 보인 섬)이었다.

 

이 섬에 델로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사연이 있어서였다. 레토를 범한 제우스는 그 뒤에 레토의 동생인 아스테리아(Asteria)까지 넘보았다. 아스테리아는 언니 레토가 그랬던 것처럼 메추라기로 변해 도망쳤으나 제우스 역시 그때처럼 독수리로 변해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제우스가 사라진 뒤에야 바다 밑에서 떠올라 섬이 되었다. 아스테리아도 헤라의 명령이 무섭기는 매일반이었으나 피를 나눈 자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레토를 받아들었다.

머리맡에서 제우스의 어머니인 레아, 이치의 여신 테미스를 비롯하여 여러 올림포스 종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토는 아프게 밤낮을 진통했다. 하지만 아기는 나오지 않았다. 헤라가 해산의 수호여신인 에일레이티아(Eileithyia)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레토를 끔찍한 고통에서 구한 것은 테미스 여신이었다. 테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파도로 델레스 섬을 가려 달라고 부탁했다.

파도로 델레스 섬을 가림으로써 태양 아래 드러나 있는 땅이면 어느 땅이든 출산 장소를 제공하지 말라는 헤라의 명령을 교묘히 피한 것이었다. 이윽고 레토가 쌍둥이를 낳았으니 바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였다. 이 쌍둥이가 태어나자 여신들은 다투어 손뼉을 쳤고 대지는 벙긋 웃었다고 한다.

제우스는 자식들을 무사히 낳게 해 준 은공에 답하느라 그때까지 뿌리도 없이 바다 위에 덜렁 떠 있던 델로스 섬을 바다 바닥에 단단히 동여매 주었다. 그리고 아폴론에게는 백조가 끄는 전차를 선물로 주었다. 아폴론은 태어나자마자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제게 악기를 주세요, 제우스의 영광을 노래하렵니다. 제게 활을 주세요, 어머니 레토의 한을 풀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아폴론은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활을 둘러메고 파르나소스 산으로 달려가 헤라의 사주를 받고 레토를 괴롭혀 왔던 거대한 뱀 피톤을 쏘아 죽였다.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델포이 신전을 맡기고 피톤의 아내였던 암 뱀 피티아(Pythia)를 인간으로 탄생시켜 아폴론의 신관 노릇을 하게 했다. 이후로 델포이 신전에는 아폴론의 예언과 신탁을 듣거나 죄 사함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태양을 다스리고 궁술과 예언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아폴론은 뭇 신과 인간들의 아낌없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퓌톤을 죽인 벌로 잠시 인간 세상으로 유배당하고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일에 얽혀 두 번이나 똑같은 벌을 받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일 뿐 벌이랄 게 없었다.

 

비극, 즉 영어 ‘tragedy’의 어원은 그리스어 ‘tragoigia’이다. ‘양(trago)의 노래(dia)’라는 뜻이다. 양이 어떻게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며, 또 양들이 부르는 노래가 어떻게 비극이 되었을까. 기원전 5세기경부터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1년에 두 번 모든 시민이 참가하는 축제가 벌어졌다. 축제의 이름은 ‘디오니시아(Dionysia)’였고 그 중에서도 봄이 시작되는 3월 그믐에 열리는 대 디오니시아 때는 여러 가지 놀이와 함께 비극 경연이 벌어졌다. 초창기에는 둥글게 다져놓은 흙바닥이 극장 구실을 했다. 지금으로 치면 무대에 해당하는 그 둥근 마당을 ‘오케스트라’라고 했고, 오케스트라 북쪽에는 나무로 된 좌석이 있었으며 남쪽엔 배우들이 쓰는 천막이 있었다.

지금의 분장실이다. 오케스트라 남쪽엔 배우가, 북쪽엔 합창단이 탈을 썼다. 맨 얼굴로는 지붕도 없는 넓은 마당에서 관객들에게 감정의 움직임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합창단의 지휘자격인 배우가 선창을 하거나 대사를 하면 50명의 합창단이 구애 대답하는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런데 그 합창단이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양신 사티로스(Satyros)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티로스는 머리엔 뿔이 돋아있고,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인반수의 신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비극의 형식이 그 이전부터 행해지고 있던 디오니소스 교도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곤 했는데 사티로스 모양의 탈을 쓴 사람들이 반드시 행렬의 앞에 서서 노래를 선창하였다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가 고향 테베로 돌아올 때 사티로스들이 그 뒤를 따랐다고 한다. 디오니소스가 산과 들에서 살았고 또 식물 생육의 신이니만큼 숲과 들에서 사는 목양신 사티로스는 디오니소스와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의가 그리스가 도시국가로 발전한 후에 축제 행사로 정착되었고, 그 후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날의 연극이 된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대다수의 비극의 가지고 있는 이야기 구조, 즉 질서의 혼란, 주인공의 고난과 죽음, 질서의 회복이라는 틀이 디오니소스의 죽음과 재생의 과정, 나아가서는 겨울에 죽은 생명이 봄에 부활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비극 공연의 초창기엔 합창단을 빼고는 배우가 한 사람만 등장하였기 때문에 탈과 못을 갈아입어 가며 한 명이 몇 사람의 역할을 맏거나 또는 두세 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며 한 사람 역할ㄹ을 맡았다. 또 배우와 합창단이 주고받는 말과 노래 가운데서 합창단 즉 양들의 노래가 극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차츰 그 비중이 축소되었고 나중엔 합창단이 아예 사라지게 됨으로써 오늘날의 연극과 같은 형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디오니시아 때 열렸던 비극 경연에서 연거푸 1등 상을 받음으로써 유명해진 작가들이 우리가 아는 3대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테스 같은 사람들이다. 아이스킬로스는 배우의 수를 둘로 늘리고 합창단의 역할을 줄여 대화가 극의 중심이 되게 했고, 소포클레스는 다시 배우 수를 셋으로 늘리고 무대에 배경 장치를 도입함으로써 극의 형식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아가멤논(Agamemnon)>, <오이디푸스 대왕 (Oidípous túrannos)>, <메디아(Media)>등 3대 비극작가들의 대표작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 시대의 비극은 주로 고대의 신화나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내용을 따온 것들이었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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