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60)

‘비극’은 육체적으로 제한된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탄생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 제한된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탄생했다.
<비극의 탄생>의 여러 주제문 중의 하나인 “인간이 비자연적인 방법을 써서 자연에 저항해서 승리하지 않는 것 말고, 인간이 자연으로 하여금 그 비밀을 털어놓도록 강요할 방법이 달리 있는가!”가 말하는 바와 같다. 그리스인들이 비자연적 방법인 [그리스] 비극을 통해 자연의 잔혹성-잔인성에 저항해서 승리하려고 한 것처럼 니체가 <비극의 탄생>을 통해 자연의 잔인성-잔혹성에 저항해서 승리하려고 했다.
비극은 인간이 ‘존재’(하이데거)와 접촉하는, 혹은 ‘존재의 근원’(니체)과 접촉하는 사건일지 그 자체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용어로서, 카타르시스 미학 1차적 부분을 말해야 할 때 그것은 연민과 공포에 관해서이다. 카타르시스 미학 2차적 부분을 말해야 할 때 그것은 물론 연민과 공포의 배설에 관해서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비극론을 플라톤의 하늘-형이상학과 다른, 아리스토텔레스의 땅-형이상학, 그 ‘단호한 형이상학’에 부응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니체 용어로 말하면 디오니소스적 배설, 그리고 아폴론적 배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에 형이상학이 없을 리 없다. 일상을 영위하는데 장애가 되는 격정들을 배설시켜 일상을 제대로 영위하게 하는 것, 이 또한 형이상학이라면 형이상학이리라.
아폴론적 배설 중의 하나가 연민과 공포라는 방식으로 ‘비극적-영웅적’ 주인공과 동일화과정을 거침으로써 관극자 자신의 절대적 힘을 상기시키는 것이다─형이상학이다. ‘아폴론적인 것’의 주안점은 대사가 아니라 장면에 있다. 무대-형상-의상-동작-대사 등의 조형성이다. 물론 아폴론적인 것에서 음악성 또한 배제되지 않는다. 대사의 억양-템포-박자 등이 음악성과 관계한다. 신(神)과 영웅 세계의 비현실성, 그 가상의 세계가 그 ‘가상으로서 현존’을 시인(是認)시킨다. 있는 것인가-없는 것인가, 꿈인가-생시인가, 형이상학이다.
아폴론적 배설 또한 존재자가 처한 자연의 잔혹성의 배설이다. ‘생-로-병-사’의 현존을 생-로-병-사의 잔잔한 멜로디로 시인시킨다. 디오니소스적 배설이 그리스비극의 본래적 배설이다. 합창-디티람보스가 그 거대한 실존으로, 그 거대한 합창-율동-기악 등으로, 디티람보스 합창단과 관객의 뒤섞임으로, 실존의 잔혹성을 뱉게 한다.
생-로-병-사의 현존을 생-로-병-사의 광포한 멜로디로 시인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 비극론 중 카타르시스론의 2차적 부분인 ‘격정의 배설’을 니체의 ‘미적 현상에 의한 현존 시인(是認)’(“세계 현존은 오로지 미적 현상에 의해 정당화 된다”)과 유사관계가 아닌, 유비관계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차이는 잔잔함과 광포함의 차이이다. 그리스 비극의 형이상학은 아폴론적 형이상학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디오니소스적 형이상학이다.
디오니소스적 도취에 의한 자기 망각이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현존의 부조리’를 덮어쓰는 방식이다. 모든 개체-삶의 ‘생성과 소멸의 고통’을 전면적으로 시인하는 방식이다. 자기망각의 다른 말이 망아적(忘我的) 합일이다. 니체 어조: ‘망아적 합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겠는가.’
개체 몰락을 ‘[아름다운] 변용’으로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개체 몰락을 그 폭발적 방종(Kränkung)이 야기하는 경악(Betroffenheit)으로서 보여준다.─디오니소스적 도취에 의한 자기망각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변용은 비극의 두 번째 구성단계로서, 아폴론적 아름다운 가상 속, 주인공 형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개별자가 합창단 무리 맞은편에서 합창단무리에 의한 디오니소스적 해체, 그 해체에 저항하는 시도를 한다. 아폴론적 꿈-예술은 꿈이 말하는바 무엇보다도 조형예술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인식에는 종교가 없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온갖 대답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 비극은 철학적 인간학의 보고이다. 셰익스피어 비극은 비극이지만 비극 일반의 ㅡ 니체 관점에 근거해서 말하면 ㅡ 비극적 초월이 없다. 물론 햄릿-천재에서 비극적 초월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비극의 형이상학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비극적 초월이 의미하는 것은 ‘패배하면서 승리한다.’이다. 자연과 신에 대해 패배하면서 승리하는 것이다, 적확하게 말하면 ‘패배하면서 승리하는 것처럼’ 승리하는 것이다. 자연과 신은 그 승리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니체식의 비극적 초월을 야스퍼스식(式)으로 말하면 ‘가장 볼품없는 구원’이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작품을 생산하는 것은 비극성에 대한 환영적 직관력이 아니라, ‘철학적 경향’이다. 철학적 경향이라는 말 대신에 철학적 직관능력을 말하는 게 좋겠다. 철학적 직관능력은 존재의 심연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이러한 철학적 직관 능력이 청동기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있었다. 그들의 그 철학적 능력을 기반으로 해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제례’를 만들었다. 기원전 6세기 이후에 디오니소스 제례와 전혀 다른 형태로서 피타고라스식 제례가 출범했다. 물론 피타고라스 제례에도 형이상학이 있다.
이상의 디오니소스의 신화가 구체적으로 니체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선 이 신화는 디오니소스의 독특한 존재방식을 전해준다. 그는 비록 그리스의 신중의 하나이지만 그의 태생은 하늘의 신과 대지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이것은 이미 디오니소스의 역설적인 이중성을 암시한다.
하늘로 상징되는 불사의 존재 그리고 땅으로 상징되는 사멸하는 존재간의 모순적인 화해가 디오니소스인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바로 인간 실존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니체에게서 인간 실존의 근원적 이중성은 고통의 원인이지만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는 창조성의 샘이 된다.
두 번째는 디오니소스가 ‘이방의 신’이라는 사실에서 니체의 주목을 끌었다. 디오니소스는 소아시아에서 유래한 신이고, 그리스의 올림포스 신들과는 그 출생을 달리한다. 그의 속성은 끊임없는 이동과 변신이다.
이것은 유럽 중심주의, 이성 중심주의, 기독교 중심주의 등의 일체의 중심주의
(Fundamentalismus)가 표방하는 영원성과 부동의 일자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한다. “가능하면 덜 앉아 있도록 하라. 야외에서 그리고 자유로운 활동에서 잉태되지 않은 그 어떤 사상도 신뢰하지 마라.(……)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 신성한 정신에 위반되는 진정한 죄악이다.” “단지 돌아다니며 사유하는 것만이 가치를 가진다.”
셋째, 디오니소스는 신체성(Leiblichkeit)을 상징한다. 그에게서 본능, 감정, 충동, 광기, 몸 등은 부정적이거나 소극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성, 정신, 영혼, 사유 등이 오히려 그러한 것들의 부정적 또는 소극적 표현물이다. 디오니소스에게서 기존의 가치들은 전도된다. “자아는 전적으로 몸이며 그 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영혼은 단지 몸에 있는 그 어떤 것의 한 단어일 뿐이다. 몸은 큰 이성이며, 한 감각의 다양성이며, 전쟁이고 평화이며 짐승의 무리이고 그 목자이다. 너의 몸의 공작도구가 너의 작은 이성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바의 것은 너의 큰 이성의 하나의 작은 공작도구 이자 장난감이다.”
넷째, 디오니소스는 박해와 저항 그리고 재생의 힘을 상징한다. 디오니소스는 다양한 현현(Epiphanie)의 통로를 갖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특히 물, 포도주, 어린나무의 싹, 피 그리고 정액등과 밀접한 관계 속에 나타난다. 특히 포도나무의 어린싹과 그것의 성장과 결실 그리고 포도주로의 변화는 삶과 죽음의 변화로 그리고 종국적인 그것의 통일, 순환을 상징한다. 이것을 니체는 디오니소스의 찢어짐과 고통 그리고 재생의 과정을 우주론적 현상으로 확대해석한다. “이러한 갈기갈기 찢어짐은, 즉 본질적인 디오니소스적인 고통은 공기, 물, 대지 그리고 불로의 전환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디오니소스에게 삶과 죽음은 끊임없는 생성의 한 과정일 뿐이다.
다섯째, 디오니소스에게서 고통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우리는 니체가 ‘슈메르츠(Schmerz)’라는 지극히 부정적 의미가 아닌 ‘라이덴(Leiden)’을 디오니소스에게 접합시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 다 ‘고통’으로 번역됨 직한 단어이지만, 후자에게는 고통이 단순히 부정적 의미를 넘어 기쁨 혹은 즐거움으로 변용될 수있는 가능성을 기본적으로 함축한다. 니체가 사용한 열정이라는 독일어는 ‘라이덴샤프트(Leidenschaft)’이다. 이 말은 ‘고통(Leiden)’에서 나온 말이다.
디오니소스 신화의 내용이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과 외형적 유사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니체가 디오니소스를 십자가에 못 박힌 자와 대척점에 두는 것은 바로 고통에 대한 양자의 근본적인 태도의 차이에 기인한다. 전자에게 고통은 피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인다. 그와는 달리 디오니소스의 고통은 바로 지금 이곳(Jezt und Hier)의 삶을 긍정하는 징표이다. 고통 없는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이 아비규환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디오니소스적인 삶의 자세이다. 니체에게서 디오니소스는 안티크리스트의 상징이다. “나를 이해하는가?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여섯째, 디오니소스가 갖는 파괴와 창조의 유희적 성격과 비형이상학적 비도덕적 성격은 니체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것은 니체가 힘의 의지와 영겁회귀를 이야기할 때 디오니소스를 자주 언급하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암시한다. “이러한 영원히 스스로를 창조하면서 영원히 스스로를 파괴해야만 하는 나의 디오니소스적 세계, 이 나의 선과 악의 피안, 저러한 원환의 행운에 놓여있는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은 갖지 않고, 저 원환이 자신에 대해 갖는 좋은 의지가 아닌 다른 의지는 결여되어 있는 세계 – 너희들은 이 세계에 대한 이름을 원하는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으로 서구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이분법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가장 이질적인 두 신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은 감정과 논리, 본능과 이성, 도취와 각성을 상징한다. 이 대립하는 신들을 각각 자연과 문명에 대응시키면 사유가 상당히 풍부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분법적 대응을 다시 여성과 남성에 대입하면 이야기는 논쟁으로 번지게 된다.
미국의 여성 인문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이며 독설가인 캐밀 파야(Camille Paglia)가 쓴 <성의 페르소나(Sexual Personae: The Androgyne in Literature and Art)>(1974)는 서구 문화의 역사를 바로 이 3중의 이분법으로, 다시 말해 ‘디오니소스=자연=여성’ 대 ‘아폴론=문명=남성’의 대립으로 이해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도발적이고 직설적이고 야유 섞인 문장들은 이 책이 논쟁을 자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여성 학자가 같은 여성들의 해방운동인 페미니즘에 던지는 비판은 신랄하기까지 하다.
촘촘한 글씨를 꽉 채워 900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은 그 두께만큼이나 야심만만한 저작이다. 지은이는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1900)을 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과 <황금가지: 비교종교학 연구(The Golden Bough: A Study in Comparative Religion)>(1890)를 쓴 사회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1941)의 문화인류학을 종합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 3중의 이분법을 방법론적 키로 삼아 원시시대부터 고대 이집트를 거쳐 19세기까지 서구의 문화, 특히 문학과 예술의 역사를 항해한다. 그의 항해는 이 책에 이어 20세기 문화예술을 다루는 제2권으로 이어진다. 그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초에 자연이 있었다.” 이 말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유대-기독교적 관념을 뒤엎은 것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유대 기독교는 이 ‘말씀(logos)’, 곧 강력한 남성적 권위로 자연의 힘을 억누르고 말살하려 했지만, 결코 패배시키지 못했다. 자연이라는 이교적 힘은 ‘억압된 것은 귀환한다’는 무의식의 원칙에 따라 모든 문화적 억압 장치를 뚫고 출몰했다. 최초의 대지모인 가이아를 염두고 기술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서양 “합리주의의 아버지”라거나 “이성중심주의의 원조”, “관념론의 창시자”, “서양 형이상학의 원조” 등으로 칭하면서 주로 부정적인 시선을 던진다. 특히 니체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서 저들 고대 그리스의 철인들은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론적 인간의 형”, “이론적 낙주의자의 원형”, “디오니소스의 적대자”, “비극의 죽음”, “디오니소스 비극의 해체”, 고대 그리스 비극의 “무덤 파는 인부” 등은 니체에 의해 소크라테스에게 주어진 이름들이다. 자신의 철학을 “뒤집은 플라톤주의”라고 선언한 니체는 플라톤에게도 위의 소크라테스에게 부여한 혐의를 덮어운다.
과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서 디오니소스인 것의 존재는 미미할 따름인가? 플라톤의 대화록 <파이드로스>에서 광기의 테마와 <심포지온>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존재를 중심으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서 디오니소스인 것이 강력하게 부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디오니소스의 적대자”라거나 “디오니소스 비극의 해체”라는 명목으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가해진 비난은 그러나 그들 철학의 복합성과 다각도성을 읽지 못한 결과인 것으 로 밝혀진다.
주신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들의 리스트
본 항목에서는 주신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들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 리스트를 전개시켰다. 주신 디오니소스의 삶과 부활의 연속선상에서 영향을 미친 친인척간의 신들을 분석하는 것이 이 장의 목적이다. 이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계보를 이해하는 데 지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카드모스(Kadmos); 디오니소스를 7달만 품고, 불행하게 죽은 그의 어머니 세멜레의 부친이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카드모스는 페니키아의 알파벳을 그리스에 최초로 들여온 문명전달자이다. 제우스에게 납치된 동생 에우로페(Europe)를 찾던 카드모스가 도중에 동생 찾기를 그만두고 도시를 세우는데, 이것이 위대한 도시국가 테베 (Thebes)이다.
카드모스는 아레스(Ares)와 아프로디테(Aphrodite) 사이에서 태어난 하르모니아(Harmonia)를 아내로 맞는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합은 인간 남자와 여신이 부부로 맺어진 최초의 결혼이었다. 이 결혼에서 선물로 주어진 이른바 ‘하르모니아 목걸이’는 하르모니아가 결혼식 날 받았던 선물인 목걸이로 그 주인에게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선물했지만, 또한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목걸이는 훗날 전쟁과 모험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이것은 고독한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us)는 자기가 만든 아름다운 목걸이와 혼례복을 만들어 신부에게 선사한 것이다. 이 목걸이를 ‘하르모니아 목걸이’라고 하는데 이 목걸이를 맨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주술적 신비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목걸이와 혼례복 때문에 테베 왕가가 한동안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예 아프로디테가 바람을 피워서 전쟁의 신 아레스(Ares)의 자식인 하르모니아를 낳은 것을 알고 저주를 걸어서 목걸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헤파이스토스의 저주가 걸려 있어서 그 목걸이의 소유자는 대대로 불행해졌다는 이야기이다.
하르모니아가 결혼식 날 받았던 선물인 목걸이는 그 주인에게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선물했지만, 또한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카드모스는 헤파이스토스 또는 에우로페에게 받았던 목걸이를 하르모니아에게 주었다. 다른 전승에서 이 목걸이는 아프로디테 또는 아테나가 하르모니아에게 준 것이라고도 한다.
신들은 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올림포스를 떠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불행한 운명이 카드모스 일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카드모스가 죽인 뱀은 실은 전쟁의 신 아레스(Ares)에게 바쳐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서 아들 폴리도로스(Polydoros)와 네 명의 딸들 고귀한 여자 아가우에(Agaue), 영감을 주는 여자 또는 자신의 생각을 가진 아우토노에(Autonoe), 물거품의 흰 여신 이노(Ino), 인간의 여인이 낳은 유일한 신 디오니소스 어머니 세멜레(Semele)가 태어난다. 카드모스는 아가우에(Agaue, 고귀한 여자)의 아들 펜테우스(Pentheus)에게 왕좌를 물려주고 여러 나라를 방랑하다 뱀이 된다. 이런 관계로 카드모스는 디오니소스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식에 참가하여 제우스의 아들이었던 이아시온(Iasion)을 만났다. 데메테르는 그와 크레네의 휴경지에서 정을 통했다. 어느 날 제우스는 황소로 변신하여 페니키아의 왕 아게노르(Agenor)의 딸인 에우로페(Europe)를 납치해 갔다. 이에 페니키아의 왕 아게노르(Agenor)는 아들 카드모스에게 그의 누이를 찾아오도록 명령하고, 만약 찾지 못하면 들이지 않겠다고 무서운 명을 내렸다. 아게노르는 딸에게는 자애로운 아비지였지만, 아들에게는 냉혹한 아비지였다.
카드모스는 사방으로 오랫동안 그의 누이를 찾아보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유피테르(Jupiter)의 책략을 꿰뚫어 볼 자가 당시 세상에는 없었으니, 카드모스가 온 세상을 돌아다닌 것은 당연했다. 유피테르가 크레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없었다. 임무를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갈 수도 없고 해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아폴론에게 신탁하여 상의했다. 신탁은 그에게 ‘들에서 암소를 한 마리 발견하거든 어디든지 그 소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라. 그리고 소가 발을 멈춘 곳에 마을을 세워 ‘테바이(Thêbai)’라 명명하라’고 일러 주었다. ‘테바이’는 그리스의 고대 명칭이다.
카드모스가 신탁을 받은 카스탈리아(Castalia)의 동혈(同穴)로부터 나오자, 자기 앞을 천천히 걸어가는 어린 암소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카드모스는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 그리고 포이보스(Phoebus, 아폴론의 별칭)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암소는 계속 전진하여 케피소스(Cephisus)의 얕은 수로를 지나 파노페(Panope) 평야로 나왔다. 그곳에서 암소는 발을 멈추고는 공중을 향하여 넓은 이마를 들고 크게 울었다. 카드모스는 암소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몸을 굽히고는 미지의 대지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눈을 들어 주위의 산에 인사하고는 제우스에게 제물을 올리려고 부하들을 시켜 제주(祭酒)로 사용할 깨끗한 물(玄酒)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