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61)

그 근처에는 오래된 숲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직 한 번도 도끼에 의하여 그 신성이 더럽혀진 일이 없었던 곳이었다. 그 가운데는 무성한 관목이 두텁게 덮인 동굴이 하나 있었다. 그 동굴의 지붕은 아치형을 이루었고, 그 밑에서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동굴 속에는 무서운 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볏이 돋친 머리와 금빛으로 빛나는 비늘을 지니고 있었다. 눈은 불처럼 빛나고, 몸은 독액으로 부풀고, 세 개의 혀를 끊임없이 날름거리며 세 줄로 된 이빨을 보였다.
제주로 사용하기 위해 물을 길러 온 사람들이 샘에 물병을 담가 병 속으로 물이 들어가는 소리가 나자, 온몸에 광채가 찬란한 뱀은 동굴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무서운 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손에서 물병을 떨어뜨리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사지를 벌벌 떨었다. 뱀은 비늘 돋친 몸뚱이를 도사리고 머리를 가장 키가 큰 나무보다도 높이 쳐들었다. 물을 구하러 간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싸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달아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뱀은 느닷없이 어떤 자는 그의 독이빨로 물어뜯어 죽이고, 어떤 자는 몸으로 감아 죽이고, 어떤 자는 독을 풍기는 숨을 내쉬어 죽여 버렸다.
카드모스는 정오까지 숲속으로 물을 구하러 간 부하들을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는 겉옷은 사자의 가죽이었으며, 손에는 투창 외에 긴 창을 가지고 있었다. 또 가슴 속에는 창보다 더 좋은 무기인 대담한 심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숲속으로 들어가니 부하들의 시체가 즐비하고 뱀은 턱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부르짖었다. “오, 충실한 나의 부하들이여, 나는 너희들의 원수를 갚든지, 내 자신 너희들의 뒤를 따라 죽든지 하겠다.”고 하면서 단말마(斷末摩)의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카드모스는 큰 돌을 들어 힘껏 뱀을 향해서 던졌다. 이와 같은 큰 돌을 던지면 요새의 성벽도 진동하였을 것이나, 뱀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그래서 카드모스는 투창을 던졌다. 이번에는 먼젓번보다는 효과를 나타냈다. 창이 뱀의 비늘을 뚫고 내장까지 관통하였기 때문이었다. 아픔에 못 견디어 길길이 날뛰면서 뱀은 상처를 보려고 머리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입으로 창을 빼려고 하였으나, 창이 부러지며 살촉이 살 속을 쑤시었다. 목이 노여움에 부풀고 피거품이 턱을 덮고 콧구멍에서 내뿜는 독기가 공중에 흩어졌다. 때로는 몸을 원형으로 비틀기도 하고, 때로는 자빠진 나무둥치같이 지면에 펴기도 했다.
뱀이 카드모스에게 다가오자, 그는 그 앞에 서서 뒷걸음질을 치며 뱀의 크게 벌린 턱을 향하여 창을 겨누었다. 뱀은 창을 향하여 달려들어 그 창끝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카드모스는 기회를 보아, 뱀이 머리를 뒤에 있는 나무둥치로 젖히는 순간 창을 던지니 뱀의 몸뚱이는 창에 꿰여 나무에 매달렸다. 뱀이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날뛸 때 그의 몸무게는 나무를 휘어뜨렸다.
이렇게 카드모스가 뱀을 정복하고, 그 곁에서 그 굉장히 큰 몸뚱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소리가 들려왔는데, 어디서 들려오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확실한 그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뱀의 이를 빼서 대지에다 뿌리라고 했다. 그는 신성성이 깃들인 그 말을 어길 수 없어 시킨 대로 했다. 땅에서 고랑을 파고, 이를 뿌렸다. 이를 다 뿌리자마자 흙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창끝이 여러 개 지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엔 깃털을 끄덕거리면서 투구가 나타났다. 그 다음에는 사람의 어깨와 가슴과 무기를 든 사지가 나타나고, 마침내 무장을 한 무사들이 나타났다.
카드모스는 깜짝 놀라 새로운 적에 대비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우리들의 내란에 간섭하지 마십시오.”하고 말하면서, 그 무사는 땅에서 태어난 그의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다. 그러는 그 자신도 또 다른 무사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다른 무사도 네 번째 무사의 손에 의해 죽었다. 이같이 온 무리가 서로 싸워 부상을 입고 쓰러져 남은 것은 다섯 명뿐이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무기를 내던지며 말했다. “형제들아, 우리 모두 평화롭게 살자꾸나.” 하면서 동의를 구했다. 이들 다섯 명은 카드모스와 협력하여 마을을 세우고 그 이름을 ‘테바이’라고 명명했다.
딸 세멜레와 이노(Ino) 및 손자 악타이온(Actaeon)과 펜테우스는 모두 불행한 죽음을 당하였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는 테바이가 싫어져 그곳을 떠나 엔켈리아 인의 나라로 이주하였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환대하고 카드모스를 그들의 왕으로 삼았다. 그러나 자손들의 불행은 아직도 그들의 마음을 침울하게 하였다. 어느 날 카드모스는 부르짖었다. “뱀의 생명이 그렇게도 신들에게 귀중한 것이라면, 나도 뱀이었더라면 좋았을걸….” 이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르모니아는 그것을 보고 자기도 남편과 같은 운명을 받도록 하여 달라고 신들에게 기도하였다. 그러자 둘이 다 뱀이 되었다. 그들은 숲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들의 전신을 생각하고서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헤치지도 않았다.
<Cadmus> <Cadmus and Harmonia(1877)/ Evelyn De Morgan>
하르모니아의 목걸이
조화의 ‘하모니(harmony)’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하르모니아(Harmonia)’ 여신에서 유래한다.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전쟁의 신 아레스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딸이다. 아프로디테가 몰래 아레스와 사랑을 나누다가 남편인 대장장이 신 헤파이트스에게 들통 나게 된다. 헤파이스토스는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둔 탓에 항상 배우자의 외도를 감수해야 했다.
하르모니아가 자라자 제우스는 도시국가 테베를 건설한 카드모스와 짝 지어주었다. 하르모니아와 카드모스가 결혼하던 날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목걸이를 하르모니아에게 선물한다.
하르모니아가 결혼식 날 받았던 선물인 이 목걸이는 그 주인에게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선물했지만, 또한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카드모스는 헤파이스토스 또는 에우로페(Europe)에게 받았던 목걸이를 하르모니아에게 주었다. 다른 전승에서 이 목걸이는 아프로디테 또는 아테나가 하르모니아에게 준 것이라고도 전한다.
하르모니아와 카드모스가 뱀으로 변한 후 목걸이는 하르모니아의 딸인 세멜레에게 갔는데, 세멜레는 헤라에게 속아 제우스에게 본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가 본모습의 뜨거운 벼락에 견디지 못하고 타 죽고 만다. 몇 세대가 지난 후 목걸이는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Iocaste)의 소유가 되었다. 이오카스테는 남편 라이오스(Laius)가 죽은 후 오이디푸스가 아들인 줄도 모르고 그와 결혼하였고, 사실이 밝혀지자 자살하였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의 눈을 찔렀다. 이를 ‘이오카스테 콤플렉스(Iocaste complex)’라고 한다.
그 후 목걸이는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아들 폴리네이케스(Polyneíkes)에게 갔다. 에테오클레스(Eteocles)와의 왕위 다툼에서 아르고스의 왕인 아드라스토스(Adrastos)의 사위가 된 폴리네이케스는 동생인 에테오클라스(Eteocles)가 왕위를 주지 않자 장인인 아드라스토스의 도움을 받아 테베와 전쟁을 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이때 테베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유명한 장군들이 있다.
테베의 성에는 총 7개의 문이 있었는데, 각각의 문을 공략하기 위해 아르고스에서는 7명의 장수를 준비한다. 이들이 그 유명한 ‘테베공략 7장군(Seven Against Thebes)’이다. 이 들은 각각 아드라스토스(Adrastos)의 사위인 티데우스(Tydeus)와 카파네우스(Capaneus)를 비롯하여 에테오클로스(Eteocles)·히포메돈(Hippomedon)·파르테노파이오스(Parthenopeus)·암피아라오스(Amphiaraus)·폴리네이케스(Polynices)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아드라스토스가 총사령관으로서 일곱 장군의 일원이었다고도 전해진다.
이때 예언자였던 암피아라오스Amphiaraos는 전쟁에 참여하면 질 것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언하고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폴리네이케스가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를 그의 아내인 에리필레(Eriphyle)에게 주었는데, 그녀의 남편인 암피아라오스를 테베 원정을 돕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에리필레는 남편에게 전쟁 참가를 종용하였고, 전쟁에 나간 암피아라오스가 죽자 아들인 알크마이온(Alkmaion)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에리필레를 살해했다.
그 후 알크마이온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어머니를 죽였기 때문에 정신착란을 일으켜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에 쫓기면서 방랑을 계속한다. 그는 프소피스 왕 페게우스(Phegeus)를 찾아가 아르시노에(Arsinoe)를 아내로 맞았으나, 어머니를 살해한 죄를 씻을 길이 없어 그로 인하여 나라는 굶주림에 빠지게 되었다. 알크마이온은 죄를 용서받았음에도 광기가 낫지 않자 신탁(神託)에 물어보았고, 어머니를 죽였을 때 햇빛이 닿지 않은 새로운 땅으로 가서 살라는 응답을 받았다. 이에 알크마이온은 아르시노에를 떠나 그리스 서부의 아켈로스 강 하구로 옮겨갔다.
알크마이온은 아켈로스 강의 신의 딸 칼리로에(Kallirroe)와 결혼했는데, 칼리로에는 아르시노에가 가진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와 결혼 예복을 탐냈다. 이에 알크마이온은 프소피스로 가서 자신의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목걸이와 결혼 예복을 델포이 신전에 바쳐야 한다고 페게우스를 속였다. 페게우스는 이 말을 믿고 목걸이와 결혼 예복을 내주었는데, 알크마이온의 부하가 페게우스에게 그 사실을 폭로하였다. 성난 페게우스는 프로노오스와 아게노르를 시켜 알크마이온을 죽였다.
이때 칼리로에는 알크마이온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 암포테로스(Amphoteros)와 아카르난을 두었는데, 남편의 복수를 위하여 제우스에게 어린 두 아들이 빨리 자라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제우스가 기도를 들어 주어 암포테로스와 아카르난은 갑자기 성인이 되었고, 페게우스 부부와 두 아들은 이들에게 살해당하였다.
결국 하르모니아의 목걸이는 페게오스의 아들 프로노우스와 아게노르에게 갔다가, 마지막으로 알크마이온의 아들 암포테로스와 아카르난에게 주어졌다. 두 형제는 더 이상의 재앙을 막기 위해 이것을 델포이의 아테나 신전에 바쳤다. 후에 포키스의 폭군 파일로스가 이것을 훔쳐내어 그의 정부에게 선물했는데, 그녀가 목걸이를 착용한 후 그녀의 아들은 광기에 휩싸여 집에 불을 놓았다. 파일로스의 정부와 보물들은 불에 타버렸고, 이 이야기 후에 ‘하르모니아의 목걸이’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없다.
2) 세멜레(Semele):세멜레는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이다. 제우스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여인이 있었으니, 인간 세계에 사는 아름다운 여자 세멜레였다. 그녀는 테베시를 창설한 테베의 왕 카드모스의 딸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공주였다. 강에서 목욕하고 있는 세멜레를 발견하고 제우스는 에우리페와 닮은 세멜레를 만난다. 제우스가 밤마다 세멜레의 집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눈치 빠른 헤라가 모를 리 없었다. 세멜레가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된 헤라는 또다시 강한 질투심에 휩싸였고, 세멜레를 처치 해버리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헤라는 머리가 하얗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로 변신해 세멜레의 집을 찾았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지팡이를 잡은 헤라의 모습은 영락없이 세멜레의 유모와 닮아 있었다. 유모로 가장한 헤라는 어렵지 않게 세멜레의 집에 들어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아가씨, 댁에 오는 남자가 정말 제우스 신 일까요?
요즘엔 많은 남자가 어여쁜 처녀를 꼬여내기 위해 신 행세를 한답니다.
그 사람이 자기 입으로 제우스라고 했다고 곧이곧대로 믿지 마세요.
아가씨가 욕심나서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오늘밤 한번 확인해보는 건 어때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말이에요.
꼬임에 넘어간 세멜레는 제우스가 찾아오자 소원을 들어달라고 청했다. 제우스는 “어떤 소원이든지 말해 보거라. 스틱스강을 걸고 소원을 들어주지”라고 답했다. 세멜레가 최고의 신 제우스의 본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제우스는 뒤늦게 후회했다. 인간인 세멜레는 제우스가 뿜어내는 엄청난 광휘와 열기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고, 스틱스강을 걸고 한 맹세는 제아무리 제우스라도 함부로 깰 수 없었다. 제우스가 어쩔 수 없이 번개와 벼락을 동반하고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자, 세멜레는 그 앞에서 까맣게 불에 타 죽었다.
슬픔을 머금고 제우스는 세멜레가 완전히 재로 변하기 전에 배 속에서 아직 형상을 갖추지 못한 아기를 꺼냈다. 그러고는 자신의 허벅다리 속에 넣고 실로 기운 뒤 달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인데, 제우스의 몸속에서도 자랐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어머니가 둘인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두 번째 탄생된 것이다.


그런 그는 태생부터 예사롭지 않다. 바로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났던 것! 제우스는 아내인 헤라 몰래 홀로 아테나를 머리에서 탄생시키더니, 급기야는 허벅지에서 디오니소스를 낳기에 이른다. 남자의 상징은 허벅지라고 하더니, 남성의 허벅지는 여성의 자궁 혹은 유방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홀로 낳은 아이 아테나가 아빠 딸로서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것에 비하면, 디오니소스는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세멜레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된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