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쓸데없는 경쟁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경쟁의 시작이다. 정자(精子) 간 경쟁을 시작으로 인간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경쟁하다가 죽어간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사랑의 결실인 아기가 태어난다. 난자(卵子)를 향해 헤엄쳐가는 수억 마리의 정자의 모습이 상징하듯 여기에도 치열한 경쟁이 동반되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양쪽에서 경쟁에 승리한 단 하나의 ‘승자’들이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수억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난자에 1등으로 도착한 정자가 아닌 2등으로 온 정자가 난자와 결합해 결국에는 2등이 1등이 된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는 배치된다.
이유는 이렇다. 가장 먼저 도착한 1등 정자는 난자를 싸고 있는 난구세포를 없애야 해서 그에 온 힘을 쏟느라 탈진해버린다. 그래서 정작 난구 안쪽의 투명대를 통과해 난자와 만나는 행운은 2등 그룹의 정자가 갖게 된다는 것. 그렇게 정자를 받아들이면 난자는 그 즉시 투명대를 두껍게 만들어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2등이 1등이 되는 순간이다.
인간사가 이럴진대 아등바등 살아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평생을 설렁설렁 살아간다. 이들은 철저하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신봉하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삼시세끼 입에 풀칠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사람한테 돈 벌어오라고 채근을 한들 재벌이 되겠는가. 재벌은 하늘이 내려준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대부유천(大富由天) 즉, 큰 부자는 하늘에 달렸다는 뜻이다.
유명 가수들의 노랫말에도 유독 ‘공수래공수거’의 뜻이 담긴 말이 많다.
나훈아가 부른 공(空)에서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태진아도 ‘공수래공수거’에서 “너나 나나 빈손인 걸 공수래공수거 살다 보면 알게 되지…”라고 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라틴어로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운명애(運命愛)라고도 칭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신의 근본 사유라고 인정한 영원회귀 사상의 마지막 ‘결론’이 아모르파티다.
요즘 목욕탕이라면 어딘가 촌티 나는 말 같지만 필자는 사우나보다 이 말에 정감이 간다. 평생 목욕탕을 다니지만 난 아직 여탕엘 가보지 못해 그 쪽 사정은 모른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열탕이나 사우나탕에서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 나갈 때까지 버티는 나만의 경쟁을 한다. 생각하면 참으로 쓰잘 데 없는 경쟁이다.
뿐인가, 버스를 타고 간다. 다음에 내려야 하는데 “누가 벨을 누르겠지”하고 기다린다. 아무도 안 눌러서 어쩔 수 없이 벨을 누른다. 그런데 정류장에 도착하니 여러 명이 내린다. 괜히 졌다는 생각이 든다.
남학생 시절 수학 여행길에 한적한 산기슭에서 소피(所避)를 보면서 누구의 오줌발이 센가를 내기 한다. 나이 먹어가니 그 또한 그리운 추억 일뿐이지만….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런 잠재된 경쟁의식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경제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 되었는지 모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급하게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대통령 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각 당의 후보는 1명뿐이다.
국민의 힘에서는 후보자를 뽑기 위해 몇 차례 경선을 치렀다. 김문수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등극하자 갑자기 한덕수 전 총리가 “그 자리는 내 것”이라며 달려들어 숟가락을 얻는다.
그러면 여태껏 경선을 치른 후보들은 뭐가 되는가. 설사 여론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해도 민초들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바둑 황제로 불리는 조훈현이 한 인터뷰에서 -최근의 정치 난맥은 어떻게 보셨나? 라고 묻자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없더라. 칼만 휘두르려는 사람이 넘쳐 나더라.”고 했다.
6월 3일이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선거 날이다. 칼만 휘두르려고 하는 후보보다는 국민을 사랑하고 국가를 부흥시킬 후보에게 한 표 던져야 한다. 이게 진짜 경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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