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수제맥주 시와 오목대 그리고 경기전을 세상에 내놓다


유상우의 에세이

 

전주 수제맥주 시와 오목대 그리고 경기전을 세상에 내놓다

 

거품처럼 번지는 수묵, 남천과 밀 맥주

 

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고인이 되신 남천 송수남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2006년 초여름 종로구 가회동의 한정식 집이었다. 그곳은 조선왕조궁중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 한정식집의 운영을 돕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한정식 집에 남천선생의 그림을 전시할 일이 생겨 졸지에 큐레이터가 된 나는 수십 점의 꽃그림들을 벽과 방마다 걸어 제꼈다. 식당의 벽은 곧 남천선생의 꽃그림으로 온통 환했다.

그 후로 7년 만에 전주에서 남천선생님을 다시 뵈었다. 남천(南天)이라는 호처럼 고향 전주로 돌아오신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몇 차례 선생님과 술자리도 가졌다. 다리가 불편한 그분을 위해 계단 난간에 밧줄을 매어도 놓았다.

선생님은 친구인 시인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좋아하셨다. 스마트폰에서 찾은 그 시를 읽어드렸던 봄밤이 아름다웠다.

선생은 늘 호가든 이라는 밀 맥주를 드셨다.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내가 만든 맛난 밀 맥주를 선생께 꼭 맛보이리라 다짐했었다.

그 무렵 금강이라는 밀 품종으로 한창 밀 맥주를 만들어 보고 있는 중이었다. 결과는 늘 실패였다. 그 후 단백질 함량이 낮은 고소라는 품종을 어렵사리 구해서 간신히 밀 맥주 형태를 만들어냈지만 이미 남천선생은 세상을 뜨신 후였다.

 

대구를 더위로 찜 쪄 먹는 전주

여름철이면 대구는 높은 수은주로 일기예보에 늘 빠지지 않는 도시이다. 대구와 함께 최근 몇 년간 여름철 더위로 쌍벽을 이루는 도시가 전주다. 여름철 전주의 온도 급상승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일 큰 것은 농경지의 도시화일 것이다. 현재 전주 최고의 번화가가 된 서신동, 삼천동, 평화동, 효자동 등은 불과 20년 전에는 전부 미나리 깡이거나 논이었다. 도시를 식히던 이곳의 논과 밭들이 전부 아파트와 상가로 바뀌며 전주는 극심한 고온에 땀을 흘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농경지에서 도심으로 바뀐 이 지역마다 유명막걸리 골목이 생겨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시원한 휴식을 준다는 점이다.

또한 대구는 치맥축제를 열고 전주는 가맥축제를 열어 뜨거운 열기를 맥주로 달래려는지도 모른다.

전주의 이러한 열악한 농업환경에서도 2014년에 젊은 전주의 농민을 만나 맥주보리를 계약 재배하여 올해 그 보리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록 까맣게 태운 보리와 효모, 호프 등은 수입품을 쓰고 있지만, 원료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맥주보리 등은 전량 전주産을 사용하여 맥주를 만든다.

그리하여 올 겨울, 전주의 밀과 보리와 물 그리고 바람의 숨결을 엮은 오목대, 경기전,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오목대와 경기전은 전주의 보리를 대부분 사용했으며, 짙은 색과 풍미를 위해 수입산 보리 10% 미만을 사용했다.

시는 남천선생을 추억하며 만든 밀 맥주로 효모와 호프를 뺀 밀과 보리는 전부 전주가 고향이다.

 

인연은 보리밭을 건너는 바람

전주는 풍남문을 경계에 두고 경기전과 오목대에서 조선의 혼을 볼 수 있다.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전동성당이 19세기 전북지역의 천주교 신도들의 염원을 모아 세워졌다.

그리고 풍남문을 조금만 벗어나면 동학의 장두였던 김개남장군과 천주교도들의 순교 지였던 초록바위가 있다.

이렇듯 전주한옥마을과 그 주위에서 근현대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맥주에서도 느낄 수 있게 성당길이나 청포장수 등의 이름을 단 맥주를 더 연구하고 싶다.

전주한옥마을이라는 느림의 공간으로 전주는 슬로시티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슬로시티를 술에서 구현하고자 술로시티를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

이제 맥주 3종을 세상에 내놓는다.

인연은 밀과 보리밭을 건너는 바람과 같다. 누구든 전주에 올 때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려야 한다.

부디 인연 닿는 대로 세상과 더불어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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