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화는 술로 푸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 사회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술꾼의 핑계는 100가지, 기분 좋다고 한잔, 나쁘다고 한잔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신과 전문의인 이시형 박사는 화를 술로 풀다간 자칫 평생을 후회할 일도 저지를 수 있어 어떠한 경우에도 홧술은 안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화나는 일이 너무 많다. TV를 보고 있으면 당장 쫓아가서 한대 때려주고 싶을 때가 너무 많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런 몹쓸 짓을 저질렀을까 하는 범죄자로부터 밥그릇 싸움을 그야말로 밥 먹듯 해대는 국회의원 양반들(국민들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얼굴만 쳐다봐도 화가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의식 있는 사람들은 왜놈들에게 빼앗긴 산하에 억눌린 감정을 어디다 풀 수 없어 허구한 날 술로 화를 풀어냈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1921년 발표된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마지막 대목이다. 동경 유학을 갔다 온 남편이 일은 하지 않고 매일 술이 만취돼 들어온다. 그는 “이 사회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며 당시 부조리한 현실을 개탄한다. 그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를 답답해하며,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이때 절망한 아내가 중얼거린 혼잣말이다.지금은 일제 강점기도 아니요, 군사 독제 정권도 아니다. 시퍼런 대낮에 대통령한테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마구 해대도 누구 하나 잡아가지 않는 세상이다.
약한 자가 강한 척 하려면 제일 강한 자에게 돌을 던진다. 그래서 강한 자가 상대 해주면 자기는 강한 자와 한판 붙어 상대적으로 유명세도 타고 강자가 된다는 천박한 상식을 써 먹는 정치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난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 할 때 극성스럽게 반대를 일삼았던 정치가들, 훗날 대통령까지 지낸 그분들이 “그 때는 내 생각이 모자랐다.”며 사과라도 한 번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며 시위를 일삼던 양반들 지금은 무얼 먹고 사실까. 수입이 많아 비싼 한우만 드시고 계셔서 광우병은 걱정 안하고 계신가. 촟불시위에 유모차까지 끌고 나오게 한 그 사람들 생각만 하면 화가 난다.
삼일고가도로를 철거할 때도 그랬고,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때도 얼굴 내밀며 정부를 비판하고, 막가파식 데모를 일삼고 있는 그 얼굴만 보면 정말로 화가 난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부자면 일은 안하고 여기 저기 시위만 하고 다녀도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화가 난다. 누군가 뒷돈을 대주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마누라가 잔소리 해댄다고 마시는 술은 홧술이 아니다. 애교 술이다. 회사의 상사로부터 야단맞았다며 동료 불러 내 상사를 안주삼아 마시는 술도 홧술은 아니다. 이 술은 분풀이 술이니까.
요즘은 자동차 시대다. 운전을 하다보면 난폭운전, 보고운전을 일삼는 일도 많고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사고를 내는 경우도 많다.
이 처럼 화는 순간적으로 일어나 이성을 잃게 되는데 이런 경우 화난다고 술을 마시면 화는 더욱 증폭돼서 더 큰 사고를 칠 수 있기 때문에 화를 술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쁘고 신나는 일이 많아야 한잔 할 수 있을 텐데 내년에는 그런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년에 총선을 치르면서 정말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이 당선되어서 국회의사당이 웃음꽃으로 가득 찼으면 한다. 여기 저기 잔치 벌리고, 축배의 잔을 높이 들 수 있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독자제현과 함께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