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나만큼은

이 하나만큼은

이 화 선(사단법인 우리술문화원장)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공허한 구호나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공감한지 이미 오래다. 문제는 현실을 제대로 보고 올바른 대안을 찾아 어떻게 실천하는가이다. 물론 경제 문제는 단순한 정책 하나로 해결될 수도 없거니와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다 만족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 하나만으로도 한 나라의 평안함과 위태로움이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이 하나만으로도 한 나라의 여유로움과 궁핍함이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이 하나만으로도 한 나라의 문화가 융성하고 퇴보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어떠하겠는가?

 

평안함과 위태로움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자리를 들여다볼 때 그 존립 기반이 안전한가, 위협받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았을 때 가슴에 쿵! 하고 오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상고시대부터 벼를 재배해 밥을 지어먹고, 떡을 쪄먹고, 술을 빚어 마셔왔던 우리의 DNA가 불과 반세기 남짓한 서구화된 입맛 때문에 돌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중장기 쌀 수급대책으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100배에 이르는 3만㏊(300㎢) 논을 없애겠다고 하니 아연해질 따름이다. 이는 손발에 동상이 걸리고 혈관이 막혔다고 잘라내는 일과 같다.

 

과거 일본에서도 1931년 경 한국과 대만으로부터 쌀이 들어와 수급이 넘치게 되자 숯을 만들까, 심지어는 바다에 버릴까 등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 일본 정부는 논을 없앴던 것이 아니라 농림성에 미곡이용연구소를 신설해 식량 이외에 쌀을 이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게 했는데, 이 연구소는 후에 농림성 산하 식량연구소로 간판을 바꾸었고, 이후 거꾸로 쌀 부족시대가 오자 또 다른 역할을 다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은 벼 재배 면적의 15% 가량이 술을 만들기 위한 양조용 쌀을 재배하는 곳이다. 중요한 것은 국산 쌀을 사용했다하더라도 첨가물이나 이것저것 대충 섞어 만든 싸구려 먹는 알코올이 아니라, 정말 국주(國酒)로 대접받을 만한 제대로 만든 술이 나오도록 애썼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술이 또, 이름만 들어도 아! 하는 서양의 수많은 명주들이 단순히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기호식품으로만 알아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술의 재료가 되는 곡물이나 과일 생산을 위한 농업의 발전, 술을 만들기 위한 기기설비 등과 같은 하드웨어, 발효미생물학 분야의 발전, 저장과 숙성을 위한 연구개발, 상품화를 위한 용기 등 산업디자인 분야, 콘텐츠 집적을 위한 문헌조사와 연구에 따르는 인문학 분야 등 관련 산업의 발전 또한 헤아리기 힘들다. 이를 통해 기대하는 가장 큰 효과는 일자리 창출이다. 한 나라의 여유로움과 궁핍함은 사람들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할만한 생활이 가능하게 하는 일자리에 달려 있다. 서양 와인이 농업과 관광업을 이끌고, 일본 사케가 식량자급률을 받쳐주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다시금 기본으로 돌아가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이 되는 이 하나를 안 해봤으니 말이다.

 

신화가 만들어진 이래 술은 인간이 향유하는 모든 문화예술에 녹아 삶을 풍부하게 하며 여정을 함께 해왔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음료’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술은 그림, 시가, 음악, 영화 등 예술분야와 더불어 무한히 융성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인식에 따라 무한히 퇴보하여 세상에서 가장 저급한 문화 속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물만 마시며 산다고 생각하면 그곳이 천국이라도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이 하나만으로도 문화가 융성하여 삶이 풍족할 수 있다면, 이 하나라만으로도 삶이 여유롭고 평안해질 수 있다면, 새해에는 이 하나만큼은 제대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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