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아줌마의 전통주 입문기 3편
계속 생각합니다.
단절된 세월 속에서 잊혀진 우리의 술을….
어떻게 세상에 알려야 하나….
흙속에 묻혀있는 보석은 그냥 구슬일 뿐이고 꺼내어 실에 꿰어야 보석이 되는 것처럼 아무리 우리 술 전통주가 빼어나다고 해도 사람들 속에 들어가 같이 어우러짐이 있어야 그들이 느낄 수 있고 그래야 보석이라고 느껴지는 것이지 그냥 먼발치에서 나 여기 있어 하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습니다.
누구라도 꼭 보듬고 같이 부대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막걸리 집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가 손님들, 그 중에서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은 술이 있다고 하면 다들 관심을 가집니다.
특히 좋은 술, 우리 전통주가 있다고 하면 급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에게 우리 술을 알리고, 맛보이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이 끝나면 실행….
여러 달 동안 발품을 판 끝에 용산 집에서 가까운 이수역 4거리 부근에 월세 부담이 작은 조그만 매장을 마련했습니다.
그 곳에서 내 생각이 맞는지에 대한 실험 겸 실행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사무실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점심에는 밥을 팔고 저녁에는 부침개와 막걸리를 팔면서 기회가 닿는 대로 우리 술을 선보이고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최일선에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장사는 잘되었습니다.
점심 장사도, 저녁 막걸리 장사도….
사실 제 전이 맛있거든요.
이수역 ‘미담빈대떡’에 가면 주인장이 빚는 전통주도 맛볼 수 있고 우리 술 전통주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고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왔다간 젊은 손님들이 본인의 블로그나 카페에 올려주기 시작하였고 그 것을 보고 찾아오는 전통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지금도 이수역 ‘미담빈대떡’을 치면 기록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술 전통주를 맛본 손님들의 반응은 놀라왔습니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재미진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 술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 자신감이란 험한 세상에 내놓아도 충분히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그래서 저는 작은 규모에 옹기로 소량 생산할 수 있는 지역특산주인 농민주 허가를 내었습니다.
양평에서 관광농원을 운영하는 사촌오빠가 있어서 그 건물 중 일부를 빌려 허가를 내고 항아리 30개로 2012년 10월에 시작을 했습니다.
그해 겨울 열심히 술을 빚었습니다.
다행히 술은 잘 나왔습니다.
이젠 제대로 팔아야겠지요.
이수역의 ‘미담빈대떡’은 우리 술 전통주를 품위를 갖추고 알리기엔 너무 소박한 면이 있어 좀 더 나은 매장을 찾아야할 것 같았습니다.
우리 술을 우리음식과 더불어 격식을 갖춘 한상 차림으로 내어놓고 싶어서 ‘우리 술 우리음식 협동조합’이란 전통주와 전통우리음식으로 안주 한상을 차리는 한식주점을 내기위한 협동조합입니다.
자본금 1억3천만 원으로 11사람이 조합원이 되어 방배동에 40평짜리 ‘우리 술 우리음식 협동조합 미담’을 2013년 6월 5일 개장했습니다.
계획했던 것을 또 이룬 것 같았습니다.
우리 술 전통주를 제대로 팔기 위해서는 술의 품격에 맞는 안주와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일본의 사케, 와인 등도 각자의 개성에 맞는 분위기와 안주가 있는 매장을 운영하는데 우리 술은 그런 면에서 많이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술에 맞는 안주와 분위기 그리고 우리 술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곳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손님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외국 손님들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좋은 술이 있었냐며 놀랍다고 했습니다.
손님들은 술도 좋고 안주도 좋지만 우리 술의 이야기를 해주면 진심으로 들어주었고 공감해주고 가슴아파했습니다.
아! 이런 것이 어우러짐이구나 싶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항상 열심히 살았지만 매장을 운영하는 그 시간도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새벽에 양조장 갔다가(일주일에 두어 번이지만) 오후에 매장에 나가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고, 양조장 안가는 날이면 오후 일찍 나가 시장보고….
술을 파는 것도 좋았지만 많은 이들과 우리 술 전통주를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바램이 꽃피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