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주, 전통을 지키는 술인가 잊혀지는 유산인가

이대형 연구원의 우리 술 바로보기(210)

 

민속주, 전통을 지키는 술인가 잊혀지는 유산인가

 

매년 국세청은 전년도 술과 관련된 다양한 통계를 ‘국세통계연보’(https://tasis.nts.go.kr/)를 통해 발표한다. 올해도 ‘2024년 국세통계연보’ 중 주세 항목에서 민속주와 지역특산주의 출고 현황이 공개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전체 주류 통계가 함께 발표되어야 전통주의 현재 위치나 시장 상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지만, 우선 현재 공개된 국세통계연보를 바탕으로 민속주와 지역특산주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현재 전통주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주류부문의 국가무형유산(과거 무형문화재) 또는 시·도 무형유산 보유자가 만든 술이다. 국가무형유산으로는 문배주, 면천 두견주, 경주 교동법주 등이 있으며, 지방무형유산에는 서울의 삼해주, 송절주, 향온주, 경기도의 남한산성소주, 계명주, 옥로주 등 각 지역에 다양한 술들이 지정되어 있다.

현재까지 국가 및 지방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주는 2025년 기준 34종이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중 주류 부문에 해당하는 이들이 만든 술로, 안동소주, 이강주 등을 포함해 25명(2025년 기준)이 지정되어 있다. 마지막으로는 농민 또는 농업회사법인이 자가 생산한 농산물이나 인근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해 만든 술로, 이를 지역특산주라 부른다. 이 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약 800개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무형유산과 식품명인이 만든 술은 통칭해 ‘민속주’라 하며, 전통주는 민속주(무형유산+식품명인)와 지역특산주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민속주 주류별 지역별 출고 현황 @국세통계연보

2024년 전통주(민속주+지역특산주) 출고량은 2023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로 예상되는 것은 지난해 경기 침체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지역특산주의 생산량은 2023년 22,033kL에서 2024년 21,635kL로 1.81% 감소하였다. 일반적으로는 생산량이 감소하더라도 출고 금액은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올해는 예외적으로 2023년 137,626백만 원에서 2024년 127,702백만 원으로 7.21% 감소하였다. 이처럼 출고 금액이 크게 줄어든 주요 원인은 증류식 소주와 일반 증류주의 출고량 감소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역특산주 내에서 막걸리와 약주는 다소 증가했지만, 소주의 감소 폭이 커 전체 출고량과 출고 금액 모두 감소세를 나타냈다.

전통주(민속주+지역특산주)의 출고량과 출고 금액 변화 @이대형

 

다음으로, 민속주로 분류되는 무형유산 보유자 또는 식품명인이 제조한 술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민속주의 생산량은 2023년 1,369kL에서 2024년 1,343kL로 1.94% 감소하였고, 출고 금액 역시 2023년 9,905백만 원에서 2024년 9,658백만 원으로 2.49% 줄어들었다. 통계상으로 보면, 지역특산주와 비교했을 때 생산량 감소 폭은 유사하지만, 출고 금액의 감소 폭은 상대적으로 작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속주가 전통주의 정통성과 상징성을 대표하지만, 시장 내 점유율은 여전히 낮다. 2024년 기준으로 전체 전통주 출고량 중 민속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5.8%, 출고 금액 기준으로는 7.0%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민속주의 출고량과 출고 금액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2,255kL이던 출고량은 2024년 1,343kL로 40.4%나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 출고 금액도 19.5% 줄어들었다.

 

2024년 전통주 전체 출고량은 감소했지만, 최근 소비 흐름을 보면 젊은 층이 찾는 전통주는 대부분 지역특산주에 속한다. 통계에서도 확인되듯 전통주 소비의 성장은 지역특산주가 주도하고 있으며, 민속주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반 소비자 인식 속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에 가장 부합하는 술은 민속주일 것이다. 무형유산 제도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고유의 술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가양주 형태로 전승되던 술들을 발굴하여 같은 해 첫 지정을 하였다.

식품명인 제도는 1994년부터 시행되었으며, 전통 식품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최소 20년 이상의 제조 경력을 가진 자에게 부여된다. 반면 지역특산주는 1993년 농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시작된 제도로, 양조장 설립 역사가 짧은 편이다. 이러한 제도의 성격을 고려하면 문화성과 역사성 측면에서 민속주가 전통주라는 이름에 더 가까운 셈이다. 그럼에도 민속주의 소비가 줄어드는 현실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민속주의 소비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3개 민속주 제조기술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 기상 @동아일보(1986년 11월 5일자)

민속주 소비 감소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현대 소비자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맛, 향, 도수, 디자인 등 다양한 요소에서 드러난다. 민속주는 지정 당시에는 우수한 품질과 소비자의 기호에 부합했을지 모르나, 현재에는 소비자의 기호를 못 따라가고 있다.

무형유산은 ‘문화재’로서 보존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정 당시 제조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며, 상업화에 어려움이 따른다. 식품명인도 약간의 자율성은 있으나, 제도적 취지상 제조 방식의 변화는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민속주가 많지 않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일부 무형유산 양조장은 생계 문제로 폐업하거나, 문화재로서의 명맥조차 끊기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

 

그럼에도 일부 양조장은 도수 조정, 병 디자인 개선, 라벨 세련화 등을 통해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민속주 면허 제도의 본래 목적은 ‘문화유산 보존’ 또는 ‘전통 식품 계승’에 있다. 그러나 소비되지 않는 술을 계속 보존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현재 민속주 면허를 보유한 양조장은 예를 들어 약주 면허가 있어도 동일 면허로 다른 약주를 생산하는 것이 어렵다. 이에 따라 일부 민속주 업체는 별도로 지역특산주 면허를 취득하여, 민속주로는 기존 술을 생산하고, 현대적인 술은 지역특산주로 제조하고 있다. 이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제는 민속주 면허의 본래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기호에 맞춘 술을 일정 부분 생산할 수 있도록, 제도적 유연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민속주 면허 내에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거나, 보완적인 면허 제도를 통해 생산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민속주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방향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현재 무형유산은 국가유산청(과거 문화재청), 식품명인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각각 관리하고 있으며, 주류 제조 및 위생은 국세청과 식약처가 관여한다. 이처럼 관리 주체가 이원화되어 있는 점도 문제다. 특히 국가유산청이 관할하는 무형유산의 경우, 현대적 생산과 소비를 가능케 할 수 있는 개선 방안에 대한보다 적극적인 제도 개선과 논의가 필요하다.

급변하는 시대에 과거 방식으로 만든 술이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지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하면서도 전통을 살릴 수 있는 민속주를 만들어야 할 시기다. 소비자가 찾지 않는 민속주는 전승이 단절되어 결국 박물관 영상 속 기록으로만 남을 수 있다. 시대 변화에 맞춘,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민속주를 만들어야 할 때다.

전국의 주류 관련 무형유산, 식품명인 지도 @더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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