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 애주가…, 세상의 가(家)들
임재철 칼럼니스트

우리는 주변에서 ‘가(家)’라는 접미사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을 많이 본다. 일반적으로 한자어로 ‘가(家)’라는 접미사는 전문가에게 붙이는 접미사이다. 쉽게 말해서 화가·문학가·소설가·음악가 등을 보면 모두가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작가(作家) 등 ‘가(家)’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면 일정한 경지에 이른 프로인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를 둘러싼 사려 깊고 매우 헌신적인 다수의 사회 실천가들, 사상가들, 예술가들, 사업가들이 있다. 전부 기록할 수는 없지만, 그 분야에서 수년에 걸친 전문 지식을 갖춤은 물론 성공을 거둔 이들로 대단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전문가가 아니면서 ‘가(家)’를 붙이는 경우도 보게 된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스스로 ‘정치가’라고 하지만 내면을 보면 아마추어만도 못한 이들이 스스로 ‘정치가’라고 하는 이도 많다.
그렇듯 여행 쪽에서도 어설픈 전문가와 여행작가들이 넘친다. 필자는 한 번도 스스로 어느 분야의, 특히 여행 쪽의 전문가나 작가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들이 그렇게 불러주거나 관련 강의 요청이 와도 손사래를 친다. 가끔 자칭 ‘여행가’라는 용어를 글에 쓰는 것조차도 오만하단 생각이다. 알면 알수록 ‘여행’이라는 세계가 너무나 넓고 깊기 때문이다.
한편, 특정 전문가라고 할 수 없지만, 술꾼들이 선호하는 애주가(愛酒家)가 거대한 물결로 다가온다. 대개 술을 많이, 자주 마시는 이가 애주가 일진대, 술을 즐기는 전문가라 해야 할까? 하늘의 모든 구름이 모두의 삶처럼 독특하듯 애주가도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과음하지 않고 좋은 일 또는 인연이 있을 때 술꾼으로 남아 있으면 애주가가 아닐까 싶다. 애주가들의 술자리 또한 앞으로도 건강하게 이어지면 좋겠다
찐 술꾼들의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심지어 술을 마시지 않고 서는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들도 다수다. 또 비행기 타고 멀리 날아가서 술을 음미하는 술꾼 친구들도 많다. 다행히도 필자는 보통의 여행자로서 음식과 술에 관심을 좀 가질 수 있었다. 그저 묵묵히 여행을 다니면서 그 나라와 도시들 만큼이나 새로운 음식과 술을 많이 먹게 되어 조금 경험이 쌓였다고 할까.

세상 술을 맛보지 않으면 그 속에 취할 수 없다는 속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얘기하라고 하면 그 지역 ‘술’이라고 믿고 있는 필자다. 여행과 삶, 시간의 경험에서나 일상에서 우리는 음식과 술자리를 하게 된다. 그런 만남과 인연에서 공감하는 포인트는 바로 ‘술’이라는 생각이다. 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요소로써 술 있는 곳에서 좋은 애주가의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주선(酒仙)으로 유명한 조지훈 시인께서 생전에 술을 마시는 술꾼 주도를 18단계로 나누어 놓은 것 같다. 우리 각자는 과연 어느 단계에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면서 기준 설정이 어려운 음주에서 나름대로 만인이 공감할 기준의 급수가 있다는 자체가 가슴을 파고든다. 그런데 세상의 수많은 영역, 어느 분야에서 건 수준의 단계 및 등급이 있다. 일례로 바둑 음악 골프 등은 객관적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는 대개 성 밖의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른다. 세상의 많은 분야에 끼치는 영향 있는 작가, 여행가, 전문가, 애주가들의 세계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바로 여기서 그들의 성숙한 세월의 경험과 삶에 깃든 가치를 받아들이고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이곳저곳에 무수한 발자국을 남기면서 각자의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과정임을 아는 것처럼 깊은 사유가 가득한 세상 전문가들의 내밀한 지혜를 읽고 수렴해야 한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각 분야의 창조자들과 곳곳에 숨어 있는 고수들과 전문가들의 정신이 함께 한다. 술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좋은 술은 시간과 지혜의 균형 속에 숨겨져 있다. 우리가 그에 관한 관심과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전문 작가가 아니고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중요한 것은 다르게 보는 법을 익혀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다.
(본지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