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으로 제조한 막걸리는 언제부터 만들어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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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그것이 궁금하다(1)

 

입국으로 제조한 막걸리는 언제부터 만들어 먹었나?

 

 

처음 우리 술을 공부할 때 과학적인 양조기술을 배우고 난 후 자연스럽게 우리 술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많은 자료가 없어서 인터넷 또는 기존에 나온 기사들을 위주로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고 그것이 사실로 알고 있던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정보들이 많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조금은 더 깊게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졌으면 했었다. 이번호를 시작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우리 술 그것이 궁금하다」라는 제목으로 하나의 주제를 통해 우리 술의 대한 고민을 다 같이 해보았으면 한다. 첫 회로 항상 의견이 분분한 ‘입국(粒麴)’을 주제를 다루어 보려 한다.

입국을 모르는 분들이 있을듯해서 간단히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증자된 곡물에 당화효소생산 곰팡이를 배양한 것으로 일본식 명칭은 고오지(koji)로 약․탁주용 입국(粒麴)은 백국균(白麴菌)이라는 Asp. luchuensis(구명칭 Asp. kawachii) 등을 증자한 쌀, 밀가루 가루에 배양한 것으로 이것은 약․탁주 발효과정 중 전분의 당화, 향미 부여와 잡균의 오염방지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식품과학기술대사전, 2008.4.10. 광일문화사 참조)

이러한 입국에 있어 많은 분들이 문제시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입국이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일본 균이라는 것과 우리 전통주의 명맥을 끊기 위해 ‘입국’이라는 일본식 주조 과정으로 막걸리를 만들어 내어 우리 술에서 누룩을 이용한 제조법이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자료를 찾아보면 위의 내용은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에서 술 생산량 통계가 처음으로 보고된 때가 1913년이며 이때의 일본 주세행정은 세원확보가 목적이었기에 탁약주의 제조법은 전통방식 원형을 유지 했다. 이때 조선탁주(밀 누룩만 사용)의 생산량은 194,660kL(87.7%), 소주 15,253kL(6.6%), 조선약주는 4,780kL(2.2%)로 대다수의 술 소비가 막걸리였으며 1933년에도 조선탁주 1,554,619kL(72.5%), 소주 381,817kL

사진은 ‘조은술 세종’의 경기호 대표가 입국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17.8%), 조선약주는 179,350kL(8.3%)로 막걸리의 점유율은 감소했지만 전체적인 주류 생산량은 증가되었다. 일반적으로 해방직후(1945) 일시적으로 탁약주에 일본식 입국(흩임 누룩)을 허용했으나 즉시 금지하였으며 1949년 주세법 개정에서도 탁주원료는 곡류와 누룩으로 규정하고 입국은 소주와 청중에만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주세법에 의해 입국을 이용한 막걸리를 만들 수가 없었고 만들었다면 법을 어긴 것이다. 이후 1962년 주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탁주 제조시 누룩을 10%이상 사용하게 하였으며 이때부터 탁주에 입국사용이 가능해졌다. 이후 1963년 누룩사용량 규제를 폐지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입국 막걸리를 마시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막걸리에 사용된 입국은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에 의해 강제로 사용되었다가 보다는 우리스스로 여러 가지 주변 환경 및 원인에 원해서 사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누룩에서 입국으로 교체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주세법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막걸리가 어떠한 상황이었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위에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면 일제에 의해서 우리의 누룩 문화가 사라졌다기보다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입국 방식의 제조법이 존재하고 있다가 누룩과 입국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대량 생산방식의 편의성과 소비자들의 기호도의 변화 등 다양한 문제에 의해 제조방식이 누룩에서 입국으로 교체가 된 게 아닐까 추측해 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입국 막걸리에 대한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현재 사용하는 일본에서 도입되었다 고하는 입국 균주에 대해서도 다음에 논의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세수 확보 차원에 따라 기업화된 양조장을 만들기 위해 주세법을 시행하고 이에 우리의 가양주 문화나 집에서 만드는 누룩이 없어지고 상품화된 누룩이 생겨난 것들처럼 전체적인 우리 술이 억압받은 흐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공론화 해보려 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한 문제이다.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가 만들고 그리고 마시는 막걸리가 다른 외부에 압력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변화된 게 아닌 우리 스스로가 여러 이유로 변형시키고 발전시켜서 만들어온 막걸리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의 막걸리를 배척하기 보다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연구하고 우리 술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역사가 정확해져야지만 다양한 정보가 많아지고 현재 술에 있어서 스토리텔링이나 술에 문화를 입히는 작업도 가능해 지리라 생각한다.

※ 개인적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잘못된 자료를 통한 오류가 있을 수도 있기에 다른 자료가 있거나 다른 의견이 있는 분들은 koreasool2@gmail.com으로 의견을 주시면 다 같이 토의 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거나 정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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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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