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술 마시게 하는 사회 만들지 마라
지금 사회는 현진건이 ‘술 권하는 사회’도 아니건만 술을 마시게 한다. 사회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다. 멀쩡한 사람도 마치 조현병(調鉉病, schizophrenia)환자 같은 증세가 되어 간다. 도통 신나게 하는 일이 없어서 그런 같다. 삼복더위에 에어컨 하나 제대로 틀수 없도록 전기료 누진제를 만들어 놓고 서민들을 겁주고 있다. 전기료를 깎아준다고 선심을 쓴다지만 시원치 않다. 그러다 보니 가마솥더위에도 자연히 술을 찾게 된다. 이 때문에 갖가지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1921년 11월 개벽(開闢)지에 현진건(玄鎭健, 1900.8.9~1943.4.25)이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할 때는 일제의 탄압 밑에서 많은 애국적 지성들이 어쩔 수 없는 절망으로 인하여 술을 벗 삼게 되고 주정꾼으로 전락하여 ‘술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비통해 하고 있다.
그렇지만 요즘은 총칼 들고 누군가 억압해서가 아니라 힘깨나 쓰는 권력가들이나 돈밖에 모르는 재벌이란 사람들이 그 놈의 돈 때문에 형제간 또는 부자간 핏대 올리며 싸움질 하는 꼴이 정말 보기 싫다. 그래서 마신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권력가들 중에는 처갓집이 부자들도 많다. 일반 서민들은 상상도 못하는 재산을 가진 집안의 딸들을 용케도 아내로 맞이하여 떵떵거리고 살다가 망신살이 뻗혀 풍전등화 꼴이 되었다. 현직 검사장이란 사람이 구속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지나가는 개도 웃을 판이다. 돈 때문이다.
돈이란 벌기도 힘들지만 쓰기도 힘든 것인데 많은 이들이 땀 흘려 벌려고 하기 보단 그저 쉽게 버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휴지를 주워서 근근이 살아가는 할머니가 있었다. 이런 할머니를 못 마땅하게 여기던 어느 주부가 있었다. 곰살굽게 대하면 혹여 무리한 요구나 하지 않을까 생각해 일부러 쌀쌀맞게 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바로 그 휴지를 줍는 할머니가 아닌가. 의아하게 할머니를 쳐다보니 할머니 손에는 만 원짜리 한 장이 들려 있었다. 할머니가 “휴지를 정리 하다 보니 상자 안에서 이 돈이 나왔어요, 아마 이 댁 상자 같아서 가지고 왔다”며 만원을 건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삶이야말로 백합처럼 곱고 향기가 나는 삶이 아닌가.
주식 대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그런 삶이 아니다. 머리 좋아 장원급제 하여 승승장구로 출셋길을 달리고 있지만 어느 구석에선 쉰내가 물씬 풍겨 나온다. 금방이라도 시궁창에 버려질 것 같은 느낌이다.
백합꽃처럼 향기 나는 삶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코끝이 찡할 정도로 절절한 애잔함이 솟다가 그 놈의 권력가들의 얘기가 나오면 울화가 치민다.
황희 정승 같은 인물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쳐도 최소한 자기 직분대로 살아가려는 그런 공직자가 많아지길 바랄뿐이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꽃은 열흘 붉은 것이 없고, 권력은 10년 넘지 못한다는 뜻은 권력을 잡았을 때 진정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근본적으로 끊기 위해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시끌버끌하다. 이 법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국민들 감정은 권력을 쥔 사람들이 국민을 상대로 정책을 쥐락펴락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공직자 든 아니면 그와 비슷한 금력을 가진 자든 국민의 정서에 맞게 행실을 하라는 깊은 뜻이 내포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일찍이 노자가 상성약수(上善弱手) 사상을 주장 한 것은 바로 이런 세태를 예견한 것은 아닌지 모른다. 권력을 쥔 자들, 국민들이 껌 씹어서 재 벌된 사람들 날씨도 더운데 국민들 열 받지 않게 청량감 있는 소식좀 전해주길 바란다. 열 받아 술 먹지 않게 말이다.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