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류정책 기행기(上)
조성기(아우르연구소 공동대표/경제학박사)
“일본 주류정책의 목표가 뭔가요?”
“알코올 의존증을 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는 술장사를 물장사라고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일본은 다르다. 술제조자, 술판매자들을 우대한다. 장인이라 생각한다. ‘정말 그런가?’하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사실이다. 직접 국세청, 주류제조자, 도매업자나 시민단체에 탐문해 보면, “그렇다”고 응답한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특히 술 관련 정책사항은 외관상 비슷하나 속은 다른 점이 많다.
또 물어본다. “혹시 정책자금이나 인력채용에서 술 장사라고 해서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 “없어요, 특별히 주류업자이기 때문에 배제되거나 차별대우를 받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혹시 실제로 우대 받은 적은 없습니까?”하고 물었다. “있어요, 지역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해 중소기업에 우대할 때 주류업이 포함되는 적이 오히려 있었어요.”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정책자금이나 외국인고용 등에서 서비스업이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업이 중요해 진 시대가 이미 오래전에 지났는데도 과거 제조업 성장위주의 법체제가 그대로 인 데가 많다. 자본이나 인력상 우대는 꿈꾸기 어렵고, 다른 업종과 주류업종은 별도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달랐다.
그만큼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우리는 다른 점이 많다. 주류산업만 해도 그렇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유산도 있고, 우리의 주세법이 그 시대에 시작되었기 때문인지 주류산업과 주류정책에 관한 한 일본과 우리는 유사성이 많다. 그런데 겉은 같지만 속이 다른 점이 많다. 그래서 일본을 보자면 다른 많은 사회과학의 분석이 그렇듯이 겉과 속을 같이 봐야 한다. 겉만 보면 내막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일본에 술 장인도 많고 술 종류도 많다. 음식과 술의 궁합도 다양하다. 그러니 양조나 문학 전공자들, 술 동호인들이 일본에 술기행을 자주 갈 수 밖에 없다. 백제 때 수수보리가 술을 일본에 전파 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술을 잘 발전 시켰다. 술 전문가들은 그 양조장들이나 식당들을 주로 방문한다.
나는 소위 산업과 경제, 정책 전공자이니 ‘술정책 기행’을 간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방문하는 곳이 다르다. 주로 대장성이나 경제산업성 등 관청들이 몰려있는 가스미가세끼(霞が関)다. 별로 멋을 찾을 수 없고 술을 마실 수도 없는 곳이다. 재미가 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과 술에 대한 정책토의를 하면 새록새록 우리의 정책상황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에는 자주 갔었다. 하지만 현직 은퇴한 후엔 자주 갈 수 없었다. 지난 달 초에 최근 6년 만에 다시 동경(東京)의 정부기구나 주류정책관련 기관들을 찾았다. 정책기행으로 주로 방문하는 곳은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후생성, 시민단체 ASK 등 이다. 한번은 농업성에 방문을 요청했더니 “주류정책에 관한 한 여기 오지 마세요” 하고 거절 했다. 일본정부기구들은 외부의 방문요청이 타당하면 거절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예외적 상황이었다.
거절의 이유는 나중에 국세청에서 제대로 듣게 된다. 농업성은 우리나라의 농식품부다. 주류제조용 농산물 생산을 관장하지만 술의 정책적 문제는 역시 국세청이 관장하며, 자신들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관청들이 ‘일하는 방식’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즉, 일본 국세청이 주류산업의 전체정책을 총괄하는 곳이다. 10년 전 쯤에 후생성에 가서 물은 적이 있다. “일본의 알코올건강정책 기조는 무엇입니까?” 그곳에서도 놀라운 답변을 들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후생성은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인 데도, 그들의 대 답은 “술에 관한 한 주관기구가 국세청이니 거기서 물으세요.” 라고 했다.
우리 보건복지부에 가서 주류정책을 물으면 과연 그런 답변을 할까? 그럴 리 없다. 일본 농업성도 후생성도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국세청
결국 정책기행의 첫 번째 장소는 항상 국세청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건물입구에서 방문증을 받은 후 기다리니 담당자가 내려왔다. 그는 나를 5층의 회의실로 안내한다. 회의실에는 항상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그들의 해외연구자에 대한 예의다.
자리에 앉아 수인사를 나눈 후 다짜고짜 주세과 과장에게 물었다. 다른 부처에서 경험한 현상을 두고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나요?”하고 물어보았다. 답변은 명쾌했다. 딱 이렇게 답했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용어를 선택하기가 좀 뭐한데요. 일본의 정부부처 간에는 업무를 두고 ‘나와바리(縄張り)’가 있어요.”라고 했다. 바로 나와바리 문제였다.
일본 공무원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직무범위’란 절대 다른 기구에서 범할 수 없는 성역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성역을 지키고 확장하려는 근성을 야쿠닌곤조(役人根性)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세청이 아닌 다른 부처에서 주류정책의 근간을 설명 듣고자 하는 행위는 일본의 상황을 이해 못하는 처사가 된다.
다시 물었다. “일본 주류정책의 목표가 뭔가요?”
인터넷 자료에도 다 적혀있고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고서를 읽으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뻔 한 대답을 기대하며 다시 물은 것이다. 하지만 대답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알코올 의존증을 관리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하군요. 정부 공식 자료에는 ‘주류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국세청이 일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그 아래에는 주류업의 경영기반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혀 있어요. 그리고 양조 기술의 연구개발, 주류품질 안정성의 확보, 주류관련 자원의 유효한 이용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적혀있어요.”라고 따졌다.
그들의 표정은 무덤덤하고 명쾌했다.
“물론 그것은 주세법에서 말하는 국세청의 사명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책목표를 알코올의존증의 축소에 두고 있어요”라는 것이었다.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더니 정책마저 그렇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코올의존증에 관심을 가진다면 안전문제는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의문이 또 들었다. “경제규제 보다 사회, 환경, 안전관리가 중요해 지는 시대인데요? 일본의 안전관리는 어떻게 되냐고 묻자 주류의 면허, 유통관리 뿐 아니라 안전과 품질관리도 국세청 감정관실에서 담당합니다.”라고 했다.
더욱이 “주류품질과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양조기술 연구나 개발은 주류총합연구소에서 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식품의약안전처’에서 별도로 다루고 있는 것을 일본은 국세청에서 종합 관리하는 것이었다.
내친 김에 면허제도에 대해서도 물었다.
“특히 ‘전주류도매업(全酒類都賣業)’에 대해 소위 TO제도를 유독 실시하고 있는 이유가 뭔가요? 한국과는 같지만 구마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상황입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고, 더 이상 토를 달기 어렵게 단호했다.
“술 문제이니까요. 술은 의존성을 가진 물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의 발전을 위해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하고, 업계의 시장경쟁을 유인하지만 통제와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기본적 입장입니다. 그 기본적 수단이 면허제도입니다.”라는 것이었다.
규제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더 왈가왈부 하지 말라는 눈치였다.
우리나라의 국세청에 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면 그렇게 단호하게 입장표명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닥치자 주류면허 규제를 풀고, 가급적 관련된 다른 장벽들도 허무는 것이 바직하지 않은가?” 라는 방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위기관리 경험 이후 자유화를 향한 민원이 그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는 국세청의 규제가 심해 산업발전이 어렵다고 외부의 민원이 거듭되자 2000년 이후 하나 둘 씩 주류관련 규제를 풀어가고 있었지 않았던가.
일본의 국세청은 우리와 달랐다. 주류규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입장을 가지고 푸는 것과 확고한 입장 없이 시류에 편승해서 푸는 정책관리 방식은 다르다.
일본 정부는 도매업의 TO제도도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정책관을 유지하는 가운데 면허유형의 다양화, 혁신적 업체의 예외적 면허인정, 시장의 면허획득 편리성 충족 등의 노력을 꾸준히 하며 시장변화를 유인하고 있었다. 원칙은 원칙, 변화는 변화라는 입장인 것이다. 제도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 느릿느릿 꾸준히 변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198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밀어 닥친 자유화의 물결에 일본 국세청은 반대하는 입장에 분명히 서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일본도 산업전반이 자유화 되었습니다. 특히 주류소매가 자유화 되었지요. 평성(平成)10년에 주류소매면허를 대폭 완화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라고 답했다.
평성 10년이면 서기 1998년이다. 일본정부와 인터뷰 할 때 가장 곤란한 것이 머릿속으로 서기력으로 환산하면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소매규제완화에는 별 문제가 없었냐고 물었다.
“규제완화는 시장에 어려움을 줍니다. 그래서 평성 15년에 주류소매업 경영개선을 위한 긴급조치법을 시행했다.”는 것이었다. 내심 또 놀랐다. 주류면허를 대상으로 ‘긴급조치법’이 있었다니 말이다.
‘주류 긴급조치법과 관련된 자료를 달라’고 했다.
회의 도중 한 사람이 재빨리 일어나 옆 사무실에 가서 자료를 가져왔다. 긴급조치 지역을 지정하고 그 지역의 세무서장이 긴급조정지역의 신규면허를 불허하거나 타 지역의 소매업체가 이전 해 오지 못하도록 했다는 내용이었다. 주류산업의 안정화를 위해 정말 ‘긴급조치법’을 발동한 자료가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했고 통과 되었다.
‘과연 우리 같았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면서도 도매업의 면허제도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 ‘전주류도매업’에는 면허수제한제도를 유지했다.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국세청의 노력은 그제나 이제나 지속되고 있었다.
일본 국세청이 그렇다고 해서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쟁이 집단은 아니었다. 제도를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사회변화에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며 적응하여 시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소위 효율적 변화를 유도해 나가면서 조정(Tuning)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떠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마지막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바쁘신데 이렇게 긴 시간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주세과장보좌는 다시 정성껏 대응한다. “너무 재미있는 주제로 대화를 해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국가 간의 정책대화자리는 서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한다.
“일본에서는 전통주(傳統酒)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아. 한국에서는 전통주라고 하는군요. 일본에서는 국주(國酒)라고 합니다.”
“예, 국주의 진흥을 위해 일본 국세청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국주진흥은 국세청이 총괄합니다. 소위 쿨재팬(Cool Japan)이라는 기치를 걸고 국주의 수출환경을 종합적으로 정비하기로 했어요. 평성25년 1월에 일본경제를 살리기 위한 긴급경제대책의 일환으로 내각에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국주의 수출촉진회의는 국세청 차원이 아니라 내각차원에서 진행됩니다. 국제적 이벤트를 하고요, 각국의 일본 대사관에서 만찬 주는 국주를 사용하도록 합니다.”라고 했다.
주류업계와의 소통도 적극적이다. 공직자들과 주류업단체의 담당자들이 모여 의견교환을 하고 함께 노력한다. 물론 회의는 주관하지 않지만 국세청이 국주 진흥의 중심이 있다고 한다.
일본은 주류정책의 소관내용이 우리와 달랐다. 우리나라가 국세청, 농식품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 분권화된 체제라면 일본은 국세청에 집중하고 있었다.
산업진흥을 위해 정책적 권한을 나누어 갖는 것과 집중하는 것 중 어떤 쪽이 효율적일까? 그 질문을 머리에 담고 국세청을 떠났다.
더욱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인터뷰에 응했던 과장보좌는 맨 아래층까지 내려와서 내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의 눈에 내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소위 90도 절을 거듭하는 것이었다. 국세청에서 놀랄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도 정중하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다시 보면, 그는 또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것이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나도 90도 까지는 아니지만 고개를 숙여 거듭 답례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