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맛 품평의 알레고리(上)
예부터 술맛 품평 법으로 ‘명주삼절(銘酒三絶)’이라고 하여 술의 ‘향(香)’과 ‘맛(味)’과 ‘색(色)’을 두고 술을 평가했다. 이는 술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발효에 의해 생성된 순수한 물질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분야이든 문화와 예술의 본질이 그러하듯이 술도 오랜 시일에 걸쳐 자연적인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향기와 맛, 아름다운 색깔을 간직하게 되고, 그 조화로움 역시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할 것이다. 술이 천성적으로 지녀야 할 우아한 향기와 깊고 그윽한 맛, 맑고 깨끗하며 순수한 색깔도 우연히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재료의 선택과 전처리, 위생적이고 철저한 가공공정을 거치되, 무엇보다 장인의 온갖 정성이 녹아든 결정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거 가양주 문화가 발달했던 조선시대의 술을 빚는 전문 장인으로 ‘주인(酒人)’과 ‘대모(大母)’가 있었다. ‘주인(酒人)’은 고려시대부터 한말까지 궁궐의 양온서(良溫署)나 사옹원(司饔院)에 예속되어 있던 전문직 관료이면서 술 빚는 일을 관장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호칭이고, ‘대모(大母)’는 반가(班家)와 부유층, 객주(客主)에서 유모(乳母)나 침모(針母), 찬모(饌母)와 같이 전문적인 직능을 담당하는 기능인으로, 주인집의 가양주(家釀酒)와 접대주를 빚는 일이 그 소임인 전문직 여성을 가리킨다.
이들은 다 같이 아래에 사람을 여럿 두고 직접적으로 술 방문을 비롯하여 술을 빚는 일을 수행하면서 재료나 그릇, 도구 등을 관리 감독하는 일이 주 업무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능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보다 술맛을 감정하는 일로, 술 방문에 따른 술의 향기나 맛, 술 빛깔, 알코올 도수의 정도를 평가하였다. 부와 명예는커녕 사회적 인정도 신분보장도 받지 못했던 초라한 직분이었지만, 우리 전통주가 갖춰야 할 향기와 맛의 감정에 관해서는 뛰어난 삭별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방문에 따른 술의 빛깔이나 향기, 맛과 알코올 도수 등에 대한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빚어 둔 술맛을 보고, 주재료의 가공이나 열처리 방법이 정상적이고 순서대로 이뤄졌는지, 심지어 술을 빚던 당시 그 사람의 감정이나 몸 상태가 어떠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술을 빚었는지도 가늠했다고 하니, 소위 ‘귀신’ 소리를 들을 법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술을 감정할 때 빚은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늠한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이는 술은 빚는 사람의 성격이나 감정과 심리상태에 따라 술의 맛과 향기가 달라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한다면 술을 빚는 사람은 좋은 재료를 선택할 수 있는 높은 안목 외에도 오랜 경험과 엄정한 공정, 지속적인 관리뿐 아니라 빚을 때의 태도와 자세, 마음가짐까지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술의 천국 중국에서도 술맛을 감정하는 데 기발한 방법이 많았다. 진(晉) 나라 환공(桓公)은 술맛을 품평하는 주부(主簿)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주기가 머리끝에 이르는가, 볼만 덥히는가, 목, 가슴, 배꼽, 국부, 무릎, 발끝, 손끝까지 이르는 가로 ‘81품’으로 가릴 줄 알았다 한다. 또한 그가 맛이 좋은 술을 ‘청주종사(靑州從事)’라 하고, 맛이 나쁜 술을 ‘평원독우(平原督郵)’라고 했다. 평원독우의 ‘郵’를 ‘憂’로 바꾸면 ‘근심 없이하는 벼슬’이란 뜻이며, ‘청주종사’의 ‘淸州’를 ‘淸酒’로 바꾸면 ‘술 마시는 것을 일삼아 한다’의 뜻이 된다.
양(梁, 502~557)나라 문제(文帝)는 술을 잘 감별하기로 소문난 임금님이었다. 서역인 고창국(高昌國)에서 사신을 보내어 포도주를 진상하자 이를 마셔보고는 ‘이 도주의 포도는 7할은 어디 산(産)이고, 3할은 어디 산이며, 빚은 곳은 어느 골짜기요, 알맞게 익는 데 닷새가 모자란다.’라고 꼭 알아맞히어 사신을 벌렁 나자빠지게 했다 한다. 당나라 때 주선이라는 석유명(石裕明)은 자신의 머리를 술에 감아 그 윤기며 촉감이며 느낌으로 그 술을 ‘12품’으로 품평하고 어느 땅의 물, 어느 고을 곡자(麯子)로 빚었다는 것까지 알아 맞혔다 한다. 북송 때의 시인으로 유명한 소동파(蘇東坡)는 손끝으로 술맛이 베어 나왔다고 한다. 그는 술을 마시고 시흥(詩興)이 돌면 시를 썼는데 그 시에서 풍기는 시취로 술맛을 품평했다 하니 참 멋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맥주를 물처럼 마신 독일에서는 맥주 맛 감정의 역사 또한 유구하다. 이미 13세기 후반부터 각 도시마다 맥주 감정관을 임명하여 술맛을 감정케 했다는데 방법이 이색적이다. 세 명으로 구성된 감정관은 반드시 사슴 가죽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맥주를 흥건히 부어 놓은 나무벤치 위에 앉는다. 그렇게 앉아서 색이며 맛이며 향을 감정하는데, 아무리 마시고 지껄여도 좋지만 엉덩이만은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3시간을 버틴 끝에 하나, 둘, 셋! 하며 똑같이 일어선다. 이때 사슴 가죽 바지가 맥주에 녹아 붙어 엉덩이가 잘 떨어지지 않으면 발효가 잘 된 거라 하여 그 맥주는 합격이다. 마시면서 입으로 술맛을 감정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술맛을 감정했던 것이다.
술을 담근 후 술이 숙성되어 갈 때가 다가오면 술을 빚는 책임을 지고 있는 주부는 조바심이 인다. 과연 제대로 잘 되었을까, 혹시나 잘못되지나 않았을까 하여 몹시 불안하다. 그래서 술이 다 되었는지 감식을 해보고 만일 잘못 되었으면 응급처방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문이 큰집에서는 술맛 감별에 뛰어난 ‘대모(大母)’라는 상징적 존재가 대를 물렸었다. 술맛으로 그 집안의 길흉을 가늠했기에 술 빚는 정성, 술 빚는 날을 감독하였으며 따라서 누적된 체험으로 술맛을 보고 술 담은 사람의 속 심정까지 알아맞혔다 한다. 술이 다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성냥불을 켜 보아서 판단하였다. 발효가 진행 중이면 발효 중에 생기는 탄산가스 때문에 불이 꺼지고, 발효가 다 끝나면 탄산가스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성냥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숙성이 되면 용수를 박고 술을 떠낸다. 또 한 가지는 술독을 두드려 보고 술의 맛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소리가 맑고 길게 울리면 좋은 술이 되고 소리가 탁하고 짧으면 좋지 않다고 한다. 또한 소리가 조금도 울리지 않을 때는 술이 익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술독을 감식해 본 결과 술이 익었을 때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익지 않았을 경우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임원십육지(林園經濟志)>의 <치주불비법(治酒不沸法)>이나 <산림경제(山林經濟)>의 <구주불비법(救酒不沸法)>에서는 술을 담근 후 온도 조절을 잘못하여 술이 익지 않을 때는 항아리 중앙 부분에 양질의 술을 부으면 곧 익는다고 하였다.
술이 다 되어 술을 떠내기 위하여 용수를 박아 두었는데도 술이 제대로 괴지 않으면 남편이 첩을 얻은 것으로 해석했다. 술이 괴지 않으면 남편의 외도 때문에 부정을 타는 원인으로 생각하여 남편에게 숨은 첩을 대라고 투정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용수의 모양이나 용수를 박는 행위, 그리고 용수에 술이 괴는 현상을 성행위에 비유한 데서 생겨난 속설로 보인다. 여성실학자이자 서유구의 형수인 빙허각 이 씨가 아녀자를 위해 엮은 일종의 여성생활백과 <규합총서(閨閤叢書)>(1809)에서는 이러한 때에 그 동네에서 좋은 술을 얻어다가 조금씩 부으면 술이 즉시 괸다고 하였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중앙대학교(교수)▸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과 박사▸2011.07~2013.07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2009.07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2007.06~2009.06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2004.01~2006.12 한국정보관리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