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김영란법, 草家三間은 태우지 마라
세상엔 온통 김영란 법만 있는 것 같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경영란법이 어쩌고저쩌고 한다. 언론에서도 매일같이 이 법과 관련된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제자가 스승한테 캔 커피 하나를 건넨 것을 보고 이를 신고 한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학생은 물론 학부모도 모처럼만에 신나게 뛰고 달릴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때문에 학생을 둔 학부모는 허물없이 선생님들이랑 김밥도 나눠먹곤 했는데 이런 것도 김영란 법에 걸린다 하여 학생은 학생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따로 따로 식사를 하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사진을 보면서 뭔가 씁쓸하다.
전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씨가 제3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2012년 제한 한 법이라 하여 ‘김영란법’이라 불리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오랜 진통 끝에 2015년 3월 27일 제정된 법안이다.
법의 골자는 공직사회의 기강 확립을 위해서 이 같은 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막상 지난 9월28일부터 이 법이 시행에 들어가자 이 법을 관장해야 국민권익위원회도 갈팡질팡한다.
모르긴 해도 당시 김 위원장이 이 법을 제정하자고 했을 때는 커피 한잔, 김밥 한 줄도 오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야 말로 공직사회가 부정 청탁으로 말미암아 부폐해가는 것을 척결하여 밝고 신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였을 것이다.
김영란 위원장도 이 법이 시행되면 화훼농가가 피폐해지고, 고급식당이 문을 닫아 실업자가 양산되고, 사제지간에 막걸리는 고사하고 커피 한잔 제대로 나누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은 했을까?
이 같은 문제점을 알고도 법 제정을 밀어붙였다면 이는 어느 한쪽만 생각 한 우를 범한 처사였다고 본다. 이 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잠자지 못하고 한숨을 쉬고 있는지 아는가.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칸을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농촌 초가집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빈대나 벼룩 같은 해충들은 정말 역겹다. 한번 물리면 가렵고 아프다. 그런데 잘 잡히지 않는다. 지금처럼 방역 시스템이 갖춰진 것도 아니고 약도 없던 시절 빈대에 물려서 화가 난 사람이 어디 너 한번 죽어보라고 초가집에 불러 질러버렸다.
훨훨 타는 저 불길 속에 빈대가 타 죽을 것이라 좋아라. 하는 것도 잠시. 되돌아보면 자기 집이 없어진 것을 알고는 어찌 했을까.
근본적으로 김영란 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힘없는 백성들은 이런 법이라도 만들어서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을 막을 수만 있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그런데 앞뒤 가리지 않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규정을 만들어 국민들을 옥죄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이 법이 시행 되면서 개선될 여지는 많겠지만 일부 부폐 된 공직자들의 기강을 바로 잡으려다가 애꿎은 서민들에게 불통이 튀지는 말아야 한다.
한국을 여행했거나 한국에서 얼마라도 살다가 간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인상을 말할 때 정(情)이 많다는 것을 첫째로 꼽는다. 논두랑 밭두렁에서 새참을 들 때 모르는 객이라도 지나면 막걸리 한 잔 하고 가라며 권 하는 것, 때 거리가 없는 이웃에 넌지시 쌀 됫박이라도 건네주는 것이 우리의 정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것도 따져가며 권해야 될 판이다. 상대가 공직자인지 혹 신문 기자인지, 아니면 학교 선생님은 아닌지 등을 따져야 하는 야박함이 생겨 우리의 정은 사라지고 있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은 색종이로 접은 것만 된다. 아니다 생 카네이션도 괜찮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법에 걸리지 않을까. 이런 작은 것까지 규제를 하다보면 빈대는 잡지 못하고 초가삼간만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