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權不十年이요 花無十日紅이라
어쩌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권력’이 평생 갈 것이란 착각에 빠지기 쉽다. 4년이나 5년이 지나면 그렇게 굵고 튼튼하던 권력이란 동아줄도 삭아서 한 낱 검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애써 모른 척 한다.
옛 사람들이 ‘權不十年이요 花無十日紅이라’란 말을 그냥 사용했겠는가. 아주 오래전부터 보아 하니 ‘부귀영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 깨달음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권력이라면 군웅(群雄)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 한, 조, 위, 초, 연, 제나라 등 여섯 나라를 잇달아 무너뜨리고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잡았던 권력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진시황은 자신의 권력이 자손만대를 이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덕이 삼황(三皇)보다 났고 공적은 오제(五帝)보다 높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칭호를 왕에서 황제(皇帝)로 바꾼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첫 황제이므로 시(始)자를 붙여 시황제(始皇帝)라 칭했다. 그 뿐인가 이사(李斯)를 시켜 천하제일의 명옥(名玉) 화씨지벽(和氏之壁)에 하늘에서 명을 받아 영원히 번창한다는 뜻으로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이라고 새긴 옥새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불로장생과 영원한 제국을 꿈꿨던 진시황은 천하통일 11년만인 기원전 210년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권불십년이 되고 만 것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사자성어가 생각 난 것은 어쩐 일인가.
속 좁은 국민의 가슴으로 느끼는 심정은 대통령을 비롯해서 여·야 정치인들이 좀 더 화끈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근대사에서 역대 대통령들이 친인척이나 자식들이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각종 비리를 저지르다가 감옥 가는 것을 반면교사삼아 박근혜 대통령은 남편이나 자식이 없는 관계로 말년에 깨끗하게 퇴임할 것이란 것이 온 국민들의 바람이었다.
오죽하면 동생들도 그렇게 예뻐하던 조카마저도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해서 지나치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 시절 이기붕(李起鵬) 부통령 못지않게 청와대 식구들은 물론 각 부처를 쥐락펴락 해온 인물이 만천하에 들어나 결국 대통령이 사과성명을 발표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순실인가 하는 여인이 어떻게 했으면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해야 하는 연설문을 먼저 들여다 볼 수 있었던가. 그동안 비선실세가 있다는 말들이 파다하게 퍼졌을 때 대통령은 “그런 것 없다”고 잘라 말해 왔고, 순진하기만 한 국민들은 그렇게 믿어왔다. 사과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배신감을 느낀 것은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만 천하에 들어난 대통령 연설문 유출만 있었겠는가. 최 씨의 부친이 가난했었다고 하는데 현재 최 씨의 재산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빌딩이 몇 채나 된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재산이 어떻게 축적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유병우 수석문제가 불거져나왔을 때 박 대통령이 읍참마속(泣斬馬謖) 심정으로 사표를 받았어도 사태가 여기까지 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와 생각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함을 탄식할 뿐이다.
조선시대 보우대사가 한 도승에게 “야 이놈아!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인데…뭐 어깨를 그리 우쭐대며! 폼 잡고 지랄이야 한심한 놈 같으니….”했다고 한다.
최순실인가 하는 여인의 앞날이나 우병우 수석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죄 지었으면 벌 받을 테고, 깨끗했다면 먼지 털고 일어나면 그뿐이다.
이번 문제를 보면 권력의 동아줄을 잡으면 돈을 쉽게 챙길 수 있다는 것이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결국엔 모두가 썩어서 냄새를 풍기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던 ‘구르미 그린 달빛’이란 드라마에서 영의정이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은 참수형(본인 스스로 자살)을 당하고 이기붕 부통령도 가족 모두가 자살하는 비극으로 끝났었다. 모두가 권불십년을 모르고 저지른 욕심의 결과다. 참으로 한심한 인간들이다.